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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소로 Jun 01. 2023

내 발목을 잡아주던 남자

토일월 연휴가 시작되었다. 코로나로 떨어진 체력을 보충하고자 오매불망 기다렸던 휴일이다. 그것은 나에게 사치였던가 도서관 키즈카페 한번 시댁방문 친정방문을 이틀에 걸쳐 바싹 당겼더니 쉼은 고사하고 더 피곤만 쌓였다. 3일간 연휴는 쉼도 과제도 책도 읽어보지 못하고 휘리릭 퐁 사라졌다.





다시 돌아가는 평범한 일상이 시작되었다.

새벽 수영으로 정신을 바싹 차리고 아이들을 등원시킨 후 카페로 운전대를 돌렸다. 신호대기를 하며 기다리는 시간에도 어떤 제품부터 만들어야 텀 없이 시간을 사용할지 시뮬레이션해 본다. 주차를 하고 가게 문을 활짝 열었다. 180센티 미터나 되는 폴리안을 가게 밖으로 꺼내는 찰나에 평소와 다른 바닥을 발견했다.




오 마이 갓!! 출입문 앞쪽 타일이 박살이 나 있다.

카페는 우리 동네 주차 맛집인 핫플이다. 사거리 모퉁이라 주차하기 딱 좋고 가게 불만 꺼지면 아니지 장사하는 시간에도 지하철 빈자리에 궁둥이 밀기 스킬처럼 어떻게든 주차하려고 서로 싸우는 핫스폿이자, 해가지면 밤에도 조명이 때려주고 CCTV까지 24시간 돌아가니 거의 유료주차장 급이다.





일주일 전 주차 때문에 실랑이가 있었는데 일부러 깬 건가? 속상한 마음을 추스를 틈도 없이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치즈케이크 파운드 순으로 하나둘씩 만들고 있는데 친정엄마가 가게에 들렀다. 입구에 들어오자마자 깨진 타일을 보고 누가 이런 거냐며 나보다 더 화가 나 계셨다. 엄마는 평소에 나랑 결이 다르게 온화한 분이지만 가게에 화분을 훔쳐가고 쓰레기를 버리고 주차 문제에 스트레스받아하는 걸 지켜보다 타일까지 깨진 걸 보시더니 마음이 급발진하셨다.


"이따 석이(남동생) 오라고 해서 CCTV로 찾으라고 해야겠다"

"댔어. 뭘 찾아. 그냥 둬 어차피 튄 놈을 어떻게 잡아."

"아니 양심이 있어야지. 주정차 금지구역 꾸역꾸역 주차했으면 주차라도 똑바로 하고 파손을 했으면 고쳐야지 그냥 도망가니."





얼마 후 남동생이 도착했고 그간에 CCTV 영상 돌리기 신공으로 단박에 범인을 찾았다. 너무나 선명하게 찍힌 번호판과 영상 속 남자는 타일을 정면으로 때려 박았고 파편이 뚝 떨어지는 것까지 찍혔다. 본인 차를 한번 쓱 보더니 주차를 하고 유유히 사라졌다.



헛 그런데 차만 본다. 타일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차에 이상이 없자 그냥 스치듯 안녕이라? 이거 괘씸한데 충격이 있었는데 그냥 간다. 어차피 부서진 타일을 해결해야 하는 건 남편의 몫인데 남편에게 말해서 처리하게 만드는 게 맞는 건가? 당연히 깨지게 한 사람이 하는 게 당연하다.



112 신고를 했다. 경찰은 신속하게 와서 영상을 분석하고 차 번호와 시간 날짜를 적고 연락을 주겠다 말하고 가셨다. 예전에 나라면 이 일로 동네방네 전화를 돌리고 씩씩 거렸을 텐데 오전에 빵 만들기 체력 소진도 한 몫했지만 부릉부릉 화를 내봐야 1%도 달라질 게 없다는 깨달음과 신고했으니 됐어로 마무리가 되었다.





다음날 5시 20분 알람이 울린다.

수영 갈 준비를 하는데 나의 수영짝꿍은 오늘 컨디션 난조로 강습을 못 가겠노라 톡이 왔다. 수영 바구니와 한 몸이 되어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새벽 공기도 좋고 운동하기 딱 좋다며 주차장에 들어섰다.

주차장 자리도 여유롭고 좋구먼! 짝꿍 없이 오느라 시간이 오픈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해 주차장에 앉아 있는데 어디서 많이 보던 차가 들어온다.



은색 봉고차 52오 XXXX

베토벤 교향곡 운명이 울려 퍼진다. 

빰빰빰 빠~~~~~~ 빰빰빰 빠~~~~~~

CCTV 영상 속 그 차가 내 눈앞에 있다. 어쩌지 어쩌지... 일단 누군지 확인하자.



차 문이 열리고 내리는 사람은 초급반에서 같이 강습받는 아저씨였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지 항상 가족들이 강습을 받아서 참 보기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뜬금없이 내 가게 타일을 부시고 도망간 사람이라니 어안이 벙벙했다.




하... 한숨이 나온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잘 못은 저 아저씨가 했는데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나 자신이 황당했다. 곧이어 봉고차 옆으로 까만 승용차가 도착하고 부인과 딸이 내렸다. 아우 심란해.



내 발목을 잡아주던 남자



머릿속 번개와 함께 저번주 강습받던 날까지 떠올랐다. 초급반 2달 차 자유형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진도를 나간다며 킥판 1개당 2인이 사용한다고 둘씩 짝을 나눴다.

킥판 1개로 둘이서 뭘 한다는 거지? 어리둥절할 시간도 없이 짝을 나눴는데 혼합반 수업이라 짝꿍이 남남 여여가 아니라 줄 순서로 짝꿍을 나눴다.  

이번 시간은 배영 진도를 나간다며 물에 뜨는 적응을 하기 위해  한 사람은 킥판을 배 위에 올려 눕고 다른 한 사람은 상대방 발을 잡아서 물에 적응하도록 도와준다고 했다.



둘.. 넷.. 여섯.. 여덟.. 열.. 열두울

띠로리

어색한 아저씨와 나는 짝꿍이 되었다. 대화도 나눠본 적 없는 아저씨가 내발목을 잡고서 25미터를 밀고 갔고 반대편에서 돌아오는 25미터는 내가 아저씨 발목을 밀고 왔다. 멀뚱멀뚱 어떻게 수업이 끝났는지 어색한 시간이었다.

을 잡아주던 남자

내 발목을 잡아주던


새벽 5시 45분 쭈뼛쭈뼛 단란한 가족에게 다가섰다.

"저기... XX동 사세요..? "

"네 맞아요."

"저 거기 XXX카페 주인인데요. 비 오는 날 주차 하시면서 타일이 깨트리고 가셨더라고요. 누가 그랬는지 몰라서 제가 112에 신고했는데 아마 연락이 갈 거 같아서요. 모르시고 그런 거 같긴 한데.... "

"아! 그랬어요? 안 그래도 차 타이어가 찢어졌길래. 그런가 보다 했는데 타일수리하시고 영수증 주세요.

안 그래도 석이누나 아닌가 긴가 민가 했어요. 그땐 머리가 길었는데 짧아서 나도 못 알아보겠더라고 우리 딸이랑 석이랑 동창인데..."

"아 그래요. 일단 알겠습니다."



빼꼼, 안녕하세요.



그가 낯설지 않았다



어쩐지. CCTV속 남자가 낯설지 않았다. 어디서 본듯한데 한국사람 다 거기서 거기지 가볍게 넘겼고 평소 사람에게 관심 없는 내 기억력과 수영복으로 물속에서 만나다 옷 입고 만남은 달랐다고 말하고 싶다.

이 와중에 남동생과 동창이야기는 또 뭐람 타일 수리는 물 건너갔구나 싶다.

잠잠했던 일상에 소박한 글감하나 획득으로 마무리하련다. 이 몹쓸 눈썰미를 누굴 탓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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