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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소로 Jun 15. 2023

0.1% 함께 합시다.



처음 브런치에 합격한 날 정말 행복해 심장이 벌렁벌렁 거리고 광대가 내려오지 않았다. 심지어 가족들이 모르는 집안 파티까지 소박하게 열렸다. 엄마가 기분이 좋으니까 작가로 가는 길은 쭉쭉 뻗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심사를 받던 3편의 글들은 쉽게 나온 건 아니지만 기쁨과 자신감으로 무장하면 일주일에 한편은 뚝딱 나올 거라 생각했다.



생각대로 글이 발행되었을까? 두세 달까지는 꾸준하게 발행일을 지키며 글을 썼다. 점점 하루 이틀 미루어지다가 몸이 힘들다 소재가 없다 할 말이 없다고 글쓰기보다 책이 우선이다 잔망스러운 생각에 이르렀다.







누가 원고료를 주고 뒤에서 마감일이 바싹 따라붙었다면 더 잘 썼을까? 감시자 없는 이 길은 외롭고 힘들었다. 평소 글쓰기를 즐겨하던 사람이 아니었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하다가도 작가가 되고 싶은 욕망은 놓을 수 없었다.




저 여자 또 손님 없는데 놀고 있네
세상 편해_



그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아서 내가 나를 평가하고 자로 재고 있었다. 그러다 무미건조한 마음을 치유한다는 목적으로 셀프처방을 내리면서 그날 기분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우습기도 하고 사소한 소재가 글이 되나 싶었지만 한번 쓰기 시작한 후로 입을 아니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어쩔 땐 일보다 글이 먼저가 되는 날이 있어서 당혹스러웠지만 의식에 흐름에 따라 노트북을 열고 타닥타닥 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욕먹을까 봐 카페에 손님이 없을 때 큰 테이블에 노트북을 펼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항상 여유롭고 우아한 작가의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짬이 날 때 후다닥 써야 하는데 그마저도 맥이 끊어지면 글에 맛이 안 난다.  저녁시간은 더욱 힘들어 아이들을 챙겨주다 기가 다 빨려서 자기 바빴다. 욕먹는 걸 선택하고 글을 쓰고 싶은 타이밍이 오면 아니 디저트를 만드는 시간이 아니면 어떻게 서든 그날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향해 돌진했다.




열, 스물, 서른, 마흔,


차곡차곡 글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미 많은 작가님들은 50편의 글을 넘겼고 100편을 향해가는데 조금만 더 쓰면 나도 1학기 50편도 달성하겠구나 부스터를 달고 전진하며 쓰다 보니 재미도 따라붙고 사람들의 응원도 흡수하며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50편이 가까워지자 매일매일 몇 편만 쓰면 되는지 생각이 자주 들었다. 행복해지리작가님이 불현듯 글쓰기 적금 잘하고 있냐고 물어보셨다.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 올라 올초 글을 1편 발행할 때마다 날 위한 보상으로 5,000원씩 적립해 100편이 되면 50만 원을 모아서 제주도 여행을 간다고 했었다. 통장 앱에 접속해서 봤더니 세상에나 2월 25일 이후 나에게 원고료를 지급하지 않았구나 내 글이 돈에 가치를 따지면 5000원이 안 되는 거 같긴 한데 시간과 노력은 보상해 주고 싶었다.




6월까지 50편을 쓸 수 있을까 나조차 불확실했는데 해냈다. 이 속도라면 12월까지 100편도 가능할 거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복잡했던 생각들로 글쓰기 적금이 뭐가 중요한가 다른걸 신경 써야지 했던 마음에 그럴 수도 있지 꼭 다른 것들이 완벽해야 가능한가로 마음이 돌아섰다.



전안나 작가님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천권을 읽었을 때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남편의 비웃음이 있었지만 몰래몰래 글을 쓰면서 책을 반드시 낼 거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첫 번째 책이 3만 부가 팔리며 0.1%만이 가능한 작가가 되었다.  총 3권의 책이 3만 부나 팔렸고 지금 꿈은 매년 1권에 책을 출판하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자랑으로 들리지 않고 할 수 있습니다! 계속 쓰세요라는 응원에 메시지로 다가왔다.


함께 합시다




솔직합시다
0.1% 작가 될 거다
인세 받아서 하고 싶은 거 한다고
같이 말하면 덜 부끄러워요.




일상 속 글쓰기는 매번 다른 속도와 회전수로 날아오는 테니스 공을 쳐내는 일과 비슷하다. 치기 편한 공을 골라내는 대신 '어떤 상황에서든 받아치자'는 마음은 '어떤 상황에서든 쓴다'는 마음과 같다.
살고 싶은 삶만 골라 살 수는 없으니까. 막상 마주하는 테니스 공은 예상보다 빨라 그 크기를 가늠할 여유가 없다. 땀이 주룩주룩 나면서 순식간에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공도, 글도, 삶도 후루룩 날아가버리기도 하지만, 여전히 잘하고 싶은 마음에 계속한다.


_글쓰기의 쓸모  손현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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