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니 Feb 22. 2018

물비누

항상 존재해서 없어질 줄 몰랐던 것


 누구나 집에 이런 물건이 있는 건 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주 어릴 적에 우리 집의 빈틈을 채우는 물건이 있었다. 찬장과 냉장고의 틈새, 천장과 장롱의 틈새에 항상 상자가 들어차 있었다. 상자에 들어 있던 것은 물비누였다. 정확히는 닥터 브로너스의 캐스틸 솝이다. 내가 알기론 아빠는 원래 무역 관련 일을 하셨었고, 우연히 알게 된 이 비누가 천연이 어쩌고, 성분이 어쩌고 하는 말을 듣고 수입을 결정하신 모양이었다. 유통은 전부 우리 집으로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알게 된 것은 내가 좀 컸을 때고 아주 아기 때부터 있었기 때문에 난 원래 이 비누에 대한 의문이 없었다. 캐스틸 솝 그런 건 다 모르겠고, 그냥 물비누였다. 하도 많아서 이모 네도 가져가고 삼촌 네도 가져가도 집에 한 가득이었다.


 우연히도 그 비누는 내가 20살이 되던 해에 집에 있던 비누가 모두 사라졌다. 그즈음 올리브 영에는 닥터 브로너스가 입점했고, 그 비누를 다시 사서 쓴 것은 아니었지만 그 비누를 누군가가 사서 쓴다고 생각하니 항상 신기했다. 한편으로는 좀 진작 잘 팔렸으면 우리 집이 부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가끔 친구와 함께 그 비누를 보면 난 뜬금없이 아빠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화장실 구석에 몰래 숨어있던 물비누를 한 통 찾아냈다. 그게 꼭 아빠 같고, 애틋해서 쓰지 못하겠고 그런 것도 없이 마침 바디워시가 떨어져 그 비누를 꺼내 썼다. 물론 예전처럼 아낌없이 쓰기엔 아까운 마음도 조금 들긴 했다. 내 성장기를 함께 했던 그 비누가 다른 가족들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지는 몰라도, 나에게는 가끔 그것이 아빠에 대한 어떤 것이었다. 항상 존재했던, 그래서 흔히 보게 된 지금은 더 반가운.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에 대해 생각하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