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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니 Mar 06. 2018

당신의 빈자리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그 사람은 유전적으로도 정말 많은 부분(언니보다도 특히 나에게)을 나에게 주었다. 그리고 당신의 빈자리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유치원 때를 생각하면 난 내가 아빠가 없는 줄을 몰랐다. 아닌가. 아빠가 뭐인지를 몰랐던 건가? 아무튼 그랬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서야 친구들은 모두 아빠가 있다는 걸 알았다. 엄마와 할머니는 친구들에게 아빠는 출장을 갔다고 말하라고 했다. 물론 출장이 뭔지도 몰랐다. 이때부터 나의 내성적인 성격이 자라기 시작했다. 친구를 사귀기 시작할 때 난 늘 거짓말을 해야 했다. 가끔 친구들이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난 아빠가 있는 것처럼 지어내서 말을 하기도 했다. 친구들과 있을 때 난 아빠가 있는 아이인데 집에 오면 아빠는 없었다. 거짓말은 시작하긴 쉬웠는데 들키지 않으려는 일이 어려웠다.


 중, 고등학교를 가서는 정말 학기 초가 싫었다. 담임 선생님이 바뀔 때마다 난 특별히 상담을 하는 학생이었다. 당연히 아빠에 대해 물었다. 그때는 나도 아빠가 어릴 때 돌아가셨다는 것만 알았지 자세한 건 몰랐는데 선생님들은 늘 사연을 궁금해했다. 이런 상담 때마다 울었던 것 같은데 바보 같이 왜 울었는지 모르겠다. 사실 아빠가 없는 게 창피했다. 왜 아빠가 안 계시냐는 질문을 듣는 게 싫었는데 그건 내 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이었기 때문에 억울했다.


 그리고 누군가의 고백을 들을 때는 사연보다 고백하는 사람의 마음을 들어주길 바란다. 난 운 좋게도 그런 사람들을 만나 내 콤플렉스를 덜어내는 데 도움을 받았으니 말이다.


 대학교를 가고 처음 남자 친구를 사귀었을 때 난 처음으로 남에게 아빠의 부재를 알렸다. 그때 그 사람은 내게 '그래도 예쁘게 잘 자랐네, 내가 고맙다.'라고 말했다. 난 '아빠가 좋은 분이셨어.'라고 답했다. 그다음은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들이었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대학을 가서도 만나는 친구들과 그렇지 않은 친구들로 나뉘었다. 여전히 만남을 이어온 친구들과 있을 때 난 문득

 '난 실은 아빠가 없어. 어릴 때 돌아가셨어.' 하고 말했다.

 '그래? 나도 엄마 없어.'

 '난 둘 다 있는데 사이 안 좋아.'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물론 눈물이 많은 난 이미 울고 있었는데 친구들 반응들이 웃겨서 웃음이 터졌다.

 '왜 이렇게 쿨해?'

 '중요하냐. 네가 뭐가 있건 없건 난 이미 널 아는데.' 20대 초반 여자애들이 무겁고 진지하게 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고마운 마음이 컸다.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이야기했을 때도 내가 생각한 것과는 또 다른 반응이었다. 내가 '미리 말 안 해서 미안해'라는 말을 했더니 오히려 '왜 말하지 않았는지 알 거 같아'란 말을 했다. 또 다른 이해였다. 이 날 이후로는 조금은 콤플렉스를 덜었다.


 일단 굳이 숨기지 않게 된 데에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 삶에 좋은 사람이 많다는 것, 그러기까지 그 사람에게 물려받은 많은 면이 작용했다는 걸 알기에. 난 조금 더 그가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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