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건 여전해
아빠에게 물려받은 것이 확실한 몇 가지가 있다.
먼저 난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다. 먹으면 얼굴이 빨개지고 코며 인중이며 땀이 난다. 진짜 어디 가서 처음 만나는 사람과 매운 음식을 먹게 되면 신경이 쓰여서 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아빠는 여름에 찬 물에 밥을 말아먹어도 땀을 흘렸다니까. 그걸 닮은 게 분명했다.
더불어 위가 약하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꼭 배탈이 난다. 말하면서도 웃긴 건. 난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
두 번째는 식욕이다. 인터넷도 페북도 없던 시대에도 아빠는 맛집 헌터였다. 데이트를 할 때에도 꼭 차도 못 들어가는 골목들과 가본 적 없는 도시로 밥을 먹으러 갔다. 엄마는 여전히 작고 지저분한 식당에서 밥 먹는 걸 제일 싫어하는 데 그래도 아빠는 해맑게 맛집이라며 밥을 먹는데 짜증이 나기도 귀엽기도 했다. 그리고 먹고 싶은 게 있는데 먹지 못하면 진짜로 병이 났다. 감기 같은 병.
나도 가끔 정말 뜬금없는 음식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남들도 이러는지 모르겠다. 나만 이런 건지.) 수제비나 화과자나 오이도 그렇고 무의식적으로 다양한 음식들이 떠올라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일주일 이상 못 먹었는데 계속 생각이 나면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눈에 띄게 집중력이 떨어진다.
내가 그러고 있는 걸 볼 때마다 엄마는 별걸 다 닮아서 그런다는 말을 하곤 했다.
또 한 가지, 엄살이다. 아빠는 엄살쟁이 었다. 언니가 검지와 중지 사이의 살이 찢어진 적이 있었다. 아빠는 그때 매일 같이 연고를 발라주고 살이 벌어질까 검지와 중지를 같이 동여매 주었다. 엄마가 이제 다 나은 것 같다고 해도 아빠는 상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때까지 밴드를 붙여주었다. 네다섯 살 아이는 밴드를 떼고도 한동안 검지와 중지를 떼지 못했다.
엄마는 그 이야길 하며 자기가 다친 것도 아니면서 연고를 붙일 때마다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다며 웃었다. 언니도 이 이야기를 하면 웃었다.
먼지라도 앉을 세라 호호. 햇살처럼 불어주던 입김.
언니의 마음은 그 따듯함을 못 잊어 여태 그를 그리는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