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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Aug 27. 2023

[소소한 일상, 나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02

첫 등산, 향적산

향적산은 충남 계룡시에 있는 곳이다. 우리 집에서 무상사라는 절 아래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향적산 치유의 숲을 지나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빠르게는 1시간이면 정상을 찍을 수 있는 곳이다.

정상에 국사봉 비석이 있는 해발 574m 정도 되는 높이의 산이지만, 동네 뒷산이라고 우습게 보고 올라가기엔 좀 힘든 산이였다.

(나에겐 말이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등산이란 걸 어릴 때 학교에서 강제로 갔던 거 외엔 다녀본 적 없는 내가 겁도 없이 무작정 올라간 첫 산.

첫 등산을 했던 이날은 완연한 여름은 아닌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경계의 애매한 날씨였다.

레깅스에 품이 큰 박스티를 입고, 새로 산 등산화를 신고 슬링백에 물을 두 병 챙겨 넣고,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젤리와 사탕, 보조배터리와 블루투스 이어폰을 챙겨서 출발했다.


향적산 치유의 숲으로 올라가는 길은 언덕길인데 이곳은 최근에 지인언니가 신청한 숲체험 프로그램을 하러 왔던 곳이었다.

그때는 그 언니와 가볍게 대화를 나누며 사부작사부작 올라갔던 터라 전혀 힘들지 않았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치유의 숲을 거쳐서 외진 곳에 있는 집 뒤편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첫 길에도 도착하기 전에 이미 숨이 헉하고 막혔다.


‘내가 이 정도로 체력이 약했나? 이 정도는 너무 심한데?‘ 하는 생각으로 등산로 입구에 들어서서 크게 심호흡을 하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출발부터 주야장천 오르막인 이곳,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는 곳 역시 쭉 오르막이었다.

지금이야 여러 번 다녀 버릇해서 익숙해져서 별거 아닌 이곳이 그때만 해도 왜 이리 힘들었던 건지..

초입에서 쭉 5~10분 정도 오르면 잠시 쉴 수 있는 정자와 운동기구, 비상약이 잠긴 통이 있는 휴식처가 나온다.


여기서 한참을 앉아서 숨을 돌리고 물을 마시면서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등산을 시작했다.

이번에도 오르막에 계단, 그러다 다시 평지길 같은 오르막, 오르막, 오르막, 평지길, 오르막에 계단..

흙길과, 돌들이 깔린 길들을 천천히 오르면서 숨이 턱턱 막히고, 가끔 핑 도는 어지러움에 잠시 바위에 걸터앉아서 가고.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나, 왜 사서 고생을 하지? 그냥 내려갈까?‘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었다.

이미 정상을 찍고 하산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고, 얼마 안 올라온 거 같은 게 이렇게 힘들게 올라온 게 아까워서 오기가 생겼다.

포기하기는 억울해서 이를 악물고 어기적어기적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고,

2시간이 다 된 시간이 돼서야 정상을 찍었다.


들고 온 가방을 휙 던져 버리고 털썩 주저앉아서 숨부터 고르는 게 먼저였다.

한참을 숨을 고르고 나니 그제야 부는 바람이 시원했고,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날은 날이 그리 화창한 날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주변을 둘러보기엔 나쁘지는 않았다.


막상 오르고 나니, 힘들게 고생하며 올라온 생각은 잠시뿐이었고, 트인 풍경을 눈에 담기 바빴다.

이 풍경을 사진으로 남겨서 아는 동생들과 지인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고 카메라를 켰는데 막상 카메라로는 눈에 보이는 것만큼 담기지 않아서 안타까웠다.

급한 데로 사진을 찍고, 인증사진을 찍고 가방에 넣어왔던 젤리를 씹어 먹으면서 내려오는데 내려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내려가고 있는 와중에 힘들게 정상을 향해 올라오는 사람들이 보였는데 내가 올라오던 그 표정과 너무 흡사한 모습으로 오르는 모습을 보니 동병상련의 아픔이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 나는 이미 다 올라갔다 왔다~ 이제 내려간다~‘ 하는 홀가운 마음으로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내려왔었다.

(너무 얄미운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르던 시간은 2시간이었지만, 내려오는 시간은 1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산을 하고 차에 도착해서 등산화를 벗어두고 답답한 양말까지 벗어던져놓으니 그제야 발에서 열감이 느껴졌다.


‘이 정도면 해볼 만하겠는데?’

힘들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느리게 오르더라도 내 첫 등산은 완등으로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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