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기형도의 이 시를 모르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 쓴다, 는 것은 잃어버리고 난 뒤 기록을 한다는 뜻이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그것을 조금 다르게 느끼게 되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이야말로 그제야 글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그것은 틀린 답은 아니었다. 경계선 인격장애. 스스로의 병식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하나씩 늘어놓자면 사소한 것들이 점점 생활을 어렵게 만들었다. 친구를 만나고, 그 사람과 친해지면 일방적으로 집착을 하다가 그가 멀어지면 하늘이 무너져 내릴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보이지 않게 자해를 했고 나와 누군가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극도로 사랑하고 극도로 미워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증상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었지만 그때는 꼭 가고 싶은 고등학교가 있어 입시에 몰두했었고 그래서 이 병이 나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기억하기 싫은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생이 되었고, 내내 혼자 살던 나는 스스로를 컨트롤할 능력을 잃었다. 매일 술을 마시고 처방받은 약을 과다 복용하기까지 했다. 죽기 위한, 혹은 살기 위한 여러 방법들을 시도해보기도 했다. 그러다 이렇게 겨우 목숨을 부지하느니 차라리 모두 다 끝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결정하니 머릿속이 또렷해졌다. 오히려 생기가 돌았다.
그러나 죽으려고 시도하기 직전, 갑자기 내 방이 보였다. 겨우 나 하나 잘 공간을 제외하고 화석처럼 겹겹이 쌓인 쓰레기들. 나는 다 놓을 건데, 이제 다 포기했는데 왜 갑자기 더러운 방이 보였을까. 지금 시도가 성공하면 엄마가 나를 보러 오겠지. 그러면 이 방이 부끄러워서 어떡하나. 왁하고 눈물이 터졌다. 선 채로 꺽꺽대며 손끝까지 아프도록 울었다. 다시 의자 위에서 바닥으로 내려오며 하나하나 쌓아왔던 고통에 항복을 외치고 말았다.
"엄마, 나 병원에 입원시켜줘. 내가 나를 죽일 것 같아."
그 길로 바로 정신과 병원을 찾았다. 폐쇄병동에 입원하고, 퇴원을 반복하며 치료를 받았다. 아주 긴 시간이 흐르고, 이제는 화석 같은 아픔들을 오히려 살아내기 위한 디딤돌로 삼게 되었다. 그동안의 엉켜있던 기억들을 조금씩 녹여낼 것이다. 견딜 수 없던 고통을 쓴 사탕처럼 입안에서 굴려보려 한다. 삶을 잃고서야 쓰게 되었던 글을, 이제 살아지기 위해 나는 쓰네. 살아가기 위해 나는 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