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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오 Oct 04. 2021

겨울 소리


겨울의 시작, 서늘한 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 음색을 반가워한다.


계절을 보고 싶어 문을 여니 음표 같은 고드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차가운 고드름을 하나 꺾으니 부서지는 소리 대신 악기의 음률이 들린다. 비명은 언제나 불협화음이지. 절벽의 헛디딘 허공처럼 바람은 온다. 실족한 다리마저 기어이 얼려 붙일 듯이 온다.  심장의 박동이 고조된다. 이 계절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겨울은 거만한 스타처럼 이 공연장으로 걸어온다. 그가 멈춰 선 무대 한가운데, 조명이 비추면 앉아있던 사람들이 공손히 일어선다. 우레 같은 박수 소리. 나는 겨울이 가져다 줄 감동적인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하나 둘 셀 수 있을 만큼 여리게 내리다 점점 격렬해지는 눈. 까슬한 눈송이에 나는 갑자기 걸귀라도 들린 듯 극심한 허기를 느낀다. 주머니 속 오래된 얼음을 한 주먹 꺼내어 팝콘처럼 으적으적 씹었다. 이제 겨울의 악장은 언 땅 속 갇혀있는 동물을 노래한다. 얼음 속 고대의 주인은 이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죽은 것이 아닌, 단지 얼어붙은 것 아닐까. 나도 무감해지고 싶었지만 죽고 싶던 건 아니었는데. 나는 그저 차가운 당신을 닮고 싶었던 것뿐이었는데. 오래된 전구의 빛처럼 음악은 멀어지고 두려움에서 돋아난 의심은 자꾸만 마음을 덥힌다. 뱃속에서 녹지도 않은 채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얼음이 느껴진다. 나는 더 차가워지기로 한다. 다시 귀를 열자 음악도 한겨울이다. 고조되는 선율 속에 이제 나는 전부 얼어붙어야 한다. 죽음 없이 박제되어 절대 녹지 않을 것이다. 오래의 더 오래전부터 겨울로 걸어 들어간 당신에게, 내게 차갑게 돌아서던 뒷모습처럼. 한때 상냥했던 두 눈을 찾으려 하염없이 쳐다만 보았던 당신의 까만 머리통을, 나는 깨버리고 싶었지. 왜 네 시선은 나에게 닿지 않는지. 나 이전의 다른 이들에게도 당신의 사랑은 이러했었는지. 나를 사랑하기나 했는지. 홀로 겪는 눈보라는 어디에서 왔는지. 소름 끼치던 음률이 서서히 잦아들고, 음악이 끝난 자리에는 얼음 기둥만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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