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혓바늘이 작아질 때쯤 다시 출근하였다

혓바닥과 물동이에 관한 단상

혓바늘은 나의 비공식 '피로도 측량계'였다. 피곤한 하루를 보냈거나 수면이 부족하면 다음 날 영락없이 혓바늘이 돋아났다.


10대 때와 20대엔 이 측량계를 다루기 아주 쉬웠다. 내가 피곤할 때 혓바늘은 정직하게 돋아 났고, 더 이상 졸리지 않을 때까지 종일 자고 나면 혓바늘은 사라졌다. 이 정직한 측량계를 잘 다루는 것은 묘한 쾌감을 주었다. 내가 어제 잘 쉬었구나 하는 것을 혓바늘의 퇴장으로 확인하는 느낌이었달까.


이제 밤을 꼴딱 새워도 하루만 푹 자면 다시 HP가 100으로 돌아오던 시기는 가버렸다. 고장 나서 완충이 안 되는 보조배터리처럼, 주말에 시체처럼 자도 내 HP는 80 이상 충전되지 않는다. 덩달아 내 비공식 측량계는 이해하기 힘든 방식으로 작동했다. 혓바늘은 아무 때나 돋아 났고, 푹 쉬어도 잘 사라지지 않았다. 진짜 고장 났나?


끝판왕을 만난 지는 몇 달 되었다. 여느 때처럼 꽤 피곤했던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갑자기 혀에 엑스라지(XL) 사이즈의 혓바늘이 돋아났고 그 이후로 몇 달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고 내내 고집스럽게 혓바닥에서 버티는 중이다. 크기도 너무 커서 놀라웠을뿐더러, 쉬는 날 내리 잠만 자는데 사라지지도 작아지지도 않는 희한한 고집스러움이 나를 몹시 당황시켰다. 충분히 잤다고 생각한 날이면 아침부터 혓바늘 크기를 가늠해보았지만 변화는 없었다. 차라리 혀에 여드름이 났다고 하면 믿을까. 그만큼 커서 나는 종종 이 살점이 그대로 떨어져 나가는 게 아닐까 염려스러웠다.


그렇게 몇 달을 같이 살아 이젠 내 혀의 일부였던 엑스라지 혓바늘이 갑자기 작아진 것은 어제였다. 단단히 열 받은 대왕 혓바늘을 달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휴일, 5일 이상의 휴일뿐이었다.


여태 못 쓰고 남은 연차를 12월 말까지 소진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상황이라는 것을 한 달 전인 11월 말에야 알게 되었다. 내년으로 이월 불가, 연차 보상비 없음. 올해는 한 달 남았는데 연차가 7일! 너무 쉬고 싶었던 나는 얼른 팀장님의 허락을 받아 주당 2~3일로 연차를 나눠 썼다. 마음 같아선 7일을 한꺼번에 붙여 주말까지 9일 내리 놀고 싶었지만 (왜 어른에겐 겨울방학이 없는가) 그랬다간 결국 휴가 중에 업무 연락을 받게 될 것 같아 그냥 나눠서 쓰기로 했다.


덕분에 지난주엔 이틀만 출근했고, 그전 주엔 사흘만 출근했다. 어쩌다 보니 항상 노래를 부르던 주 2일 근무제를 혼자 시행해버렸다. 우선 3일 출근한 주엔 주말까지 포함해 4일간 여행을 갔다. 여행을 가서도 요양에 가까운 일정으로 쉬엄쉬엄 놀았고 하루 8~9시간씩 꼬박 잤는데 왜 혓바늘이 사라지지 않는지 잠시 의문을 품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2일 출근 후 이번엔 5일간 집에서 놀고먹고 잤다. 5일째였던 어제, 혓바늘이 극적으로 작아졌다. 스몰(S) 사이즈 정도? 그래! 인류에겐 주 2일 근무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정치인들은 당장 주 2일제를 대령하지 않고 뭣들 하고 있는가?


겨우 혓바늘이 작아지고 있는 중인데 다시 월요일이 돌아왔다. 퇴근해서 돌아오니 어쩐지 스몰 사이즈였던 손님께서 다시 미디움만큼 분노를 키우는 느낌이다. 기분 탓인가. 지금 이만큼 작아진 혓바늘은 과연 다시 커질 것인가, 사라질 것인가? 


계속 혓바닥 이야기만 해댔는데 사실 물이 찰랑거리는 내 항아리, 즉 퇴사가 근접한 것만 같은 나의 상태도 근황은 사실 비슷하다. 조만간 넘칠 듯 찰랑거리던 항아리의 수위는 연차를 틈틈이 몰아 쓰는 동안 몇 mm쯤은 내려간 것이 느껴진다. 위기에는 정말 휴식, 오로지 휴식뿐이다. 하지만 5일의 휴식도 충분치 않아서 혓바늘의 분노가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처럼 항아리의 물은 아직도 위험 수위에서 출렁댄다.


학생 시절 잘 쉬었다는 묘한 쾌감을 남기며 자주 사라지곤 했던 나의 비공식 측량계는 이제 측량의 기능을 거의 잃은 듯하다. 움직임이 없는 풍향계는 풍향을 알려주지 못한다. 내 혓바닥에 질병이 있다면 진단명은 출근이다. 치료제는 오로지 휴식, 휴식, 장기 휴식, 장기휴가, 방학, 겨울방학, 여름방학, 퇴ㅅ...






(짤=니노미야) 니 마음이 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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