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아무것도 달성하지 못해도
나를 사랑할 수 있기를
내가 이 아름다운 문장을 마주친 것은 트위터(@tokyo_seoul_mom)에서였다. 그때의 나에게 정말 절실히 이 말이 필요했으므로, 나는 이 문장을 인쇄해서 다이어리에 붙여놓기까지 했었다.
얼마 전 글을 쓰다가 정확히 언제 정신건강의학과에 찾아갔는지 궁금해져서 2017년도 다이어리를 꺼냈다. 내 기억 속 그 해는 암흑기나 마찬가지였는데, 뜻밖에도 다이어리엔 어떤 다짐이나 인용구들이 많이 붙어있었다. 난 페르난두 페소아의 문장을 발췌해서 옮겨 놓기도 했고, 인터넷의 세계에서 마주친 어떤 글귀들을 붙여놓기도 했는데, 제일 앞장에는 조금 가혹하게도 '올해 안으로 결판을 보지 못하면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하리라'는 새해 다짐이 있어 나를 조금 슬프게 했다. 서서히 티 나지 않게 침잠해가던 시기에, 힘든 줄도 모르고 연초에 열심히 해보겠다며 붙인 말일 것이다.
반면에 '내 인생 아무것도 달성하지 못해도 나를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문장은 7월 이후에 붙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나는 11월에, 정신과에 찾아갔다. 병원에 가기 전, 아마 트윗의 홍수 속에서 만났을 그 문장이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그때 내가 나에게 가혹하게 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새해 다짐을 하며 내가 적은 '결판을 내겠다'는 것은 글쓰기에 대한 것이었다. 더 정확히는 매일 글을 쓰지 않으면 결국 난 평생 작가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였다. 졸업작품도 써야 하는데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으니 연초에 나를 채찍질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 당시의 나의 게으름에 대한 답답함도 사실 기억이 난다. 이런 말을 할 법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 못하면 평생 못할 것이라는 말은 그만큼 단호한 의지의 표명이면서 또 어떻게 보면 그저 저주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도 든다. 살아보니 그때가 아니면 영원히 안 된다는 건 맞기도 틀리기도 하다. 난 2017년에 결국 제대로 글도 쓰지 못했고(에휴), 정신과 약을 먹기 시작했고(여태 먹고 있으며), 그때 확정되지 못한 나의 진로와 미래는 2022년 현재에도 여전히 미확정 혼돈 상태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나는 계속 살고 있다. 여전히 어떤 작은 가능성들이 조금씩 남아있고, 나는 지금 내가 새로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하나 정도는 따로 알고 있다. 시간은 짧으면서도 길고, 한 해가 넘어간다고 하여 문이 닫히기만 하는 것은 아니며, 갈팡질팡 살아도 어쩌면 괜찮다.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든다.
그 당시의 새해엔 절박하게 배수진을 치는 심정이었겠으나 그때 난 이미 너무 우울해서 무엇도 하기 힘든 상태였을지 모르며, 스스로를 덜 고약하게 대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단호한 결심과 스스로에게 내리는 저주가 이렇게나 한 끗 차이라는 것도 이제야 새삼 느낀다.
저주를 하지 말자.
당시 11월에 내가 정신과 처방약을 먹기 시작하자 정신과를 불신하는 엄마는 나를 심리상담소에 데려갔다. 약 복용을 중단하고 상담으로 우울증을 해결하길 바랐던 엄마의 의도와는 달리, 결과적으로는 난 약도 계속 먹고 심리상담도 받았다. 상담 선생님이 알려준 것 중 가장 효과가 좋았던 것은 나에게 고생했다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 해엔 선생님이 알려준 대로 가슴에 손을 얹고 토닥이면서 고생했다 말해주면 그렇게 눈물이 나왔다.
"내 인생 아무것도 달성하지 못해도 나를 사랑할 수 있기를" 이 문장은 스스로에게 덜 고약하게 구는 삶의 방식을 요약한다.
잊고 있던 이 문장을 5년 만에 다시 곱씹는다. 무언가를 달성하지 못하고도 행복하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