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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은 그대로인데 약만 먹어도 되는 걸까

상황을 개선하지 못하고 약만 먹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조금 있다.


아니, 뻥이다.

아니, 약간 있다.

…있나?






두 달 전쯤 브런치에 번아웃에 대해 글을 썼는데 ‘지금 회사를 관두지 않는 이유’를 묻는 댓글이 달렸다. ‘멘탈이 다 털려서 판단을 못하고 끌려다니는 건지' 물어보는 말에 뭐라고 답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 결국 댓글을 달지 못했다. 판단력도 잃고 끌려다니는 상태라고 인정하는 건 왠지 자존심이 상했다. 그렇다고 퇴사를 미루는 논리적인 이유를 댈 수도 없었다.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응당 퇴사나 이직을 통해 살 길을 찾는 것이 당연해 보였다.


맞다. 나는 퇴사를 미루고 있다. 힘들다고 죽는소리를 하면서도 도저히 토할 것 같은 최후의 최후가 될 때까지 하루하루 버틴다. 왜냐면… 이제 취직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이유냐고? 나는 도저히 새로 다른 일을 시작할 기운이 없다. 회사 때려치운 후 내 계획이란 백수가 되는 것뿐이다. 백수는 돈이 많이 필요하다. 전세 대출 이자와 각종 공과금, 병원비 등등 누워서 숨만 쉬어도 돈이 매달 공중분해된다. 그러니 최종_최최종_진짜최종_마지막.jpg 퇴사 순간이 올 때까지는 버티면서 단돈 1만 원이라도 더 벌어서 퇴사해야 된다.


뭔가 순환하는 함정에 갇힌 것 같다. 지금 한참 달리는 자전거에서 뛰어내리면 그다음에 다른 자전거에 오르기 위해 더 큰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지금 자전거에 겨우 붙어있는 꼴이다. 그렇다면 ‘판단을 못하고 끌려다니’냐는 말이 사실은 정확한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게 필요한 건 에라 모르겠다 하며 점프를 할 결단력일지도.


아무튼 문제는 듀미록스 100mg이다. 지난 1~2년 간 변화 없이 복용 중인 마지막 우울증 약 한 알. 난 퇴사를 못하고, 똑같이 병원을 다니고, 같은 양의 약을 먹는다. 약을 빼지도 못하지만, 이만큼 버티는 데엔 또 약의 도움이 결정적인 듯하다. 근데… 이래도 되는 걸까? 아니면 약 먹는 것보다 중요한 건 얼른 탈출 버튼부터 누르는 것일까?






6주 전 새로운 약이 등장했다. 난 “회사에서 내내 팀장님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게 너무 힘들고, 그가 너무 말이 많다고 느껴지고, ‘진짜 그만 좀 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든다”라고 의사에게 털어놨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번아웃이라 음성 정보를 의미 정보로 치환하는 그 간단한 과정조차 할 에너지가 없기 때문에 피로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뭔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며 아리피졸 2mg을 추가했는데, 스트레스가 계속되는 상황이라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는 약(아리피졸)을 추가하면서 이후 우울증 약(듀미록스)을 빼는 걸 목표로 하겠다고 덧붙였다.


아리피졸의 효과? 너무 신기했다. 약이 추가되자 갑자기 인내심이라는 게 생겼다. 지옥의 수다쟁이 팀장님의 목소리가 오늘도 귓전을 때리는데 별로 짜증이 안 난다! 내용도 잘 들린다! 이거 뭐지? 나는 약의 효과에 대해 감탄하며 한결 친절한 리스너가 됐다. 사회생활 난이도가 갑자기 하향 조정됐다. 저 사람도 그렇게 짜증나는 사람은 아니었…


그런데… 그게 2주가 끝이었다. 끝나기만 한 게 아니라, 상황은 악화됐다. 말하는 걸 듣기 싫은 대상이 다수로 늘어난 것이다. (오 시발…)


사실 우리 부서엔 지옥에서 온 수다쟁이가 여러 명이다. 그동안 유독 팀장님에게 더 인내심을 잃은 것은 그가 나와 업무적으로 엮여 있고, 하루 9~13시간 꼼짝없이 붙어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약기운으로 잠시 장착했던 내 너그러움은 2주 만에 증발하고, 설상가상 난 이제 사무실의 모든 사람들이 하는 말이 너무 시끄럽고 버거운 상태가 되어버렸다.


특히 모두가 한담을 나누는 점심시간이 최악이었다. 지옥의 수다쟁이 셋이 한 판 붙으면 서로의 말을 듣지도 않고 각자 하고 싶은 말을 떠들어댔고, 그 와중에 자기 말에 반응할 사람을 찾아 무의식적으로 나를 자꾸 쳐다보았는데 고문이 따로 없었다. 얼마 전부터 나는 밥만 먹고 빠져나와 혼자 산책을 가거나 아무도 없는 공간을 찾아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휴식을 취했다. 고장 난 수다쟁이들은 알아서 리액션 인형을 찾도록 놔둔 채.


지난주 병원에 갔을 때 드디어 이 상황을 의사에게 고자질할 수 있었다. 선생님이 요즘 의욕은 어떠냐고 물었다. 의욕이요? 청소하기도 싫고 이것도 저것도 하기 싫던데… 혹시 짜증이 좀 늘었나요? 네, 너무 다 짜증이 나요. 선생님은 모두의 말이 듣기 싫어진 것도 아리피졸의 정상적인 작용으로 추측했다. 아리피졸은 스트레스를 관리해주면서 의욕이 생기게 해주는 약인데 때론 그 의욕이 짜증의 형태로 나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나도 첫 2주 동안의 변화를 보면 약이 효과가 있는 듯하고, 원래 짜증이 나지만 짜증을 낼 기운이 없다가 의욕이 점점 올라오면서 짜증을 낼 의욕이 생긴 것 같다는 게 설명이었다.


‘짜증을 낼 의욕.’


사실 짜증도 낼 기운이 있어야 내는 법이다. 그 말대로라면 난 짜증을 낼 기운도 없던 상태에서 짜증이라도 낼 기운이 생긴 상태가 된 것이다. 그동안 짜증을 낼 의욕도 없었다니, 좀 슬펐다.


짜증 사건으로 깨달았다. 짜증을 내든, 화를 내든, 퇴사를 하든 뭐든 의욕은 있어야 그걸 한다는 걸. 자신이 의욕이 없는 상태라는 것도 모르고 의욕이 없는 중인 사람에게, 상황은 그대로 두고 약만 먹는다고 비난해봐야 뭐할까.


사실 ‘약만 계속 먹지 말고 상황을 바꿔봐야지’는 좀 더 사회에서 통용되는 생각에 가깝다. 내 생각은 ‘그래서 어쩌라고 상황은 계속 좆같은데 약은 먹어야지’에 가깝다. 그래서 난 죄책감이 드는 척은 하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사실 죄책감 같은 것 없는 듯.


원인은 그대로인데 약만 먹어도 되는 걸까 묻지 말자. 일단 나부터 살 길 찾고, 원인을 조만간 제거할 수 있기를 바라며.

약을 잘 챙겨 먹고 잠이나 일찍 자자.









추신:


의욕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깨달은 것인데, 내가 의욕이 생긴 증거는 사실 브런치에 있다. 난 지난달 말부터 미친놈처럼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 누가 정해준 마감도 없는데 퇴근하면 집에 달려와서 브런치를 열고 2~5일에 한 편씩 글을 올린다. 난 평생 이렇게 자발적으로 열심히 글을 써본 역사가 없는 사람이다… 아리피졸을 먹고 효과가 나오는 시기와도 맞는다.


없던 의욕이 생긴 것은 확실하네. 약 기운에 마구 휘갈기고 있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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