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주말이면 좋겠다
금요일은 오후 반나절이 무두절이었다. (무두절 = 두목 없는 날, 즉 직장 상사가 자리를 비운 날) 물론 출장을 가서 전화로 업무지시를 하는 상사도 있었고 반차를 쓰고도 카톡과 전화로 업무지시를 하는 상사도 있었다. 어쨌든 한 공간에 있기만 해도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두목들이 사무실에서 사라지니 개비스콘을 먹은 사람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급한 업무도 없어서 오후 내내 여유롭게 일하다 칼퇴를 했다. 저녁에는 친구를 만나서 놀았다.
토요일인 어제는 연극을 보러 갔다가 또 친구를 만나서 차를 마셨고 집에 돌아와 브런치에 글을 쓰느라 새벽까지 못 잤다.
일요일인 오늘, 늦잠 자고 일어나니 집은 폭탄 맞은 꼴이었다. 점심만 대충 먹고 카페에 나와 책을 읽고 아이패드에 낙서도 하고 놀았다. 지금 내 집에는 돌려야 할 빨래도, 청소한지 2주 지난 화장실도, 냉장고에서 썩어가는 음식들도, 어질러진 책상과 폭탄맞은 방바닥도 있는데 내 몸만 쏙 빠져나와서 농땡이를 치고 있으니 즐겁지만 점점 더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진다.
왜 항상 집이란 디폴트 값이 ‘엉망’일까? 치우면 적절한 엉망, 안 치우면 폭탄 맞은 곳이 된다. (이상하다 누가 어지르는 거지 나밖에 없는데… 나 말고 여기 누가 있나? 엔트로피…? 너였니?) 애초에 집안일의 성질이라는 것이 그런 것인데 나처럼 살림에 소질까지 없으면 살림 프로세스에 적응하느니 그냥 폭탄 맞은 집에 적응하게 된다
벌써 저녁 6시 반이다. 믿을 수 없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내가 던진 폭탄을 조금이라도 치울 것인가, 아님 폭탄을 끌어안고 다음 주 한 주를 더 통과할 것인가… 현명한 사람이라면 이제 집에 돌아가 화장실 청소 정도는 하지 않겠는가? 짜증나게 부지런한 곰팡이 놈들이 내 사정 봐주진 않으니까. 하지만 내게는 봐야 하는 유튜브도, 넷플릭스도, 트위터도, 브런치도, 해야 할 게임도 잔뜩 있는데…?
하 그래서 말인데 우리 다 같이 이틀 정도 출근하고 주말은 5일 쓰면 안 되는 걸까? 대선 공약에 주 4일제 나왔다던데 베짱이에겐 택도 없는 소리다. 주 2일만 일하고 싶다.
아니, 사실 아예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게 내 진심이다. 숨겨왔던 나의 수줍은 마음 모두 너에게 준다 나 죽을 때까지 아무 일도 안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