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글자란 세상에 바짝 엎드렸을 때 나오는 법이라고,
나는 성질이 원체 비굴하지 못해서 '글' 이란 걸 쓰지 못한다.
읊는 것이 전부인 타자에게 사랑이 없는 것은 그 이유이고,
단순히 글자들의 해방을 야기하는 반란은
그저 몇 명의 뇌리에만 스쳐 지나갈 만큼 소심하다.
같은 맥락에서 사랑이란 존경에서 나오는 것이라
세상을 존경하지 않고서는 글이 나올 수 없다 나처럼
꽉 찬 생을 살고 있는 머릿속에서 나올 것은
투덜투덜 중얼중얼 잡소리와 투정뿐이 더 있으랴?
채워지고, 채워지고 싶은 건 한참을 비고
차마 채워지지 못할 것들은 초분마다 들어차는데
아 생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구나 깨달음에도 세상에 굴복하지 못하는 것은 또 사랑 없는 나의 권모술수 덕
그래서 나는 글을 쓰지 못하는가 보다
그래서 나는 감히 글을 사랑할 수 없고
글에게 있어서는
세상을 엿보기만 하는, 사랑받지 못하는
나는 잔꾀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