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과 시간의 상관관계
걱정하는 것 중 98%은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고 오직 2%만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말은 걱정의 무용성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졌겠지만 본투비 걱정인간인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만약 실제로 일어날 2%의 일이야 말로 정말 끔찍하고 암담한 일이라면 어째야 할까? 걱정의 특성은 꼬리물기다. 하나가 생기면 연달아 이어진다. 종국엔 기다랗게 꾀어진 체인 모양이 된다. 돌고 도는 걱정 속에서 우리는 빠져나갈 길이 없는 것만 같다.
내 걱정의 DNA가 엄마로부터 왔다는 것은 최근에 알았다. 엄마는 걱정이 많아 잠을 잘 못 드는 사람이었다. 이사한 집에는 제일 먼저 가스경보기를 달았다. 가스레인지에서 가스가 샐 것 같은 걱정이 자꾸만 든단다. 따로 사는 내 동생을 걱정하고 먼 길 운전하는 아빠를 걱정하고 해외에 나온 나를 걱정하는 엄마의 하루 속에 정체되는 시간이 많았다.
엄마를 닮은 나도 내일을 걱정하느라 잠 못 든다. 10년 후, 20년 후, 하다못해 존재할지 말지 모르는 60년 후의 일까지 걱정이 된다. 그런 일이 생기면, 이런 일이 생기면… 가능성이 아무리 낮은 일이라고 해도 내게 일어나면 100%의 가능성을 가진다고 생각하면 걱정 안 할 수가 없다. 나 역시 그런 시간으로 많은 시간을 버렸다.
MBTI라는 현대문물 덕분에 나의 NF 적 소양이 내 걱정에 감수성과 상상력을 더했음을 알아냈다. 어쩐지 뉴스 기사만 읽어도 무서운 일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거 같더라니. 이렇듯 걱정이 천성인 사람들은 단순히 ’걱정하지 말자‘라는 말보다 효용적인 말이 더 효과가 있다. 이를테면 내가 걱정할 시간 동안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 평생 50권은 더 읽을 수 있다는 것. 그 시간에 나가서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하면 죽기 전에 테니스 중급까지는 올라갈 거라는 것. 그 시간에 내가 어려서부터 배우고 싶어 하던 피아노를 배우면 몇 곡은 어설프게나마 칠 수 있게 될 거라는 것.
나의 걱정은 단순히 겨우 2%의 쓸모만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그 걱정은 100%로 나의 시간을 앗아간다.
그리고 때때로 그 이상으로 나의 에너지를 처지게 하고 괴롭게 한다. 그 시간과 에너지는 온전히 내가 행복하기 위해 쓸 수 있는 것들이었는데, 쓸모없는 것에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걱정을 그만하자고 할 게 아니라 그 시간을 아끼자고 해야 하는 게 맞다. 똑같은 공간에서 똑같이 머리를 싸매고 있어도 걱정할 바에는 명상하는 게 낫다. 마음의 바닥 깊숙한 곳을 빙빙 돌며 걱정하느니 집 바닥이나 한번 더 쓸고 닦는 게 났다. 그럼 적어도 당신은 그날 밤 깨끗한 집 안에서 잠들 것이다. 요행처럼 이어지는 걱정의 궤도 속에서 우울하게 잠드는 게 아니라.
더불어 내가 지금 걱정을 한다고 해서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 내가 겪을 괴로움과 슬픔과 스트레스가 줄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내가 걱정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슬플 것이다. 괴로울 것이다. 처참할 것이다. 지금 하는 걱정은 그중 아무것도 덜어주지 않는다. 차라리 지금 잘 먹고, 하고 싶은 걸 하고, 해야 할 일을 함으로써 혹시나 일어날 2%의 걱정에 훗날 잘 대비할 수 있는 나 자신을 준비하는 게 낫다.
내 걱정 중 98%는 일어나지 않는다. 실제로 일어나는 건 겨우 2%다. 돌이켜보면 내가 해왔던 그 많은 걱정 중 실체화된 건 그 정도도 안됐다. 그 2% 중 98%의 일은 내가 그럭저럭 이 꽉 깨물고 버티면 버틸만할 일일 거다. 내가 도저히 손 쓸 수 없을 정도의 일은 2%의 2% 일 것이다. 그 정도 확률에 내 시간과 에너지를 버리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이다. 그러니 걱정은 접어 두자. 습관처럼 기어 나오는 걱정을 무관심으로 대하자. 행복해지기에도 바쁜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