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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사 Mar 21. 2024

당신 마음을 양파라 칩시다

마음으로 짜장밥 만들어 먹을 때까지



초등학교 과학시간. 선생님이 영상을 틀어줬다. 당시 티비는 아주 구식으로 뒤통수가 빵빵했다. 칠판 옆에 그걸 보관하는 티비 보관함이 따로 있었다. 티비 보관함 문은 늘 닫혀있다가 선생님 허락하에만 열렸다. 선생님이 틀어준 영상엔 똑같은 양파 두 개가 나왔다. 비커에 담긴 양파 두 개에 각자 다른 팻말이 붙었다.

저에겐 좋은 말만 해주세요

저에겐 나쁜 말만 하세요


실험 참가자인 애들이 2주 동안 양파들에게 말을 걸었다. 좋은 말을 듣는 양파에게 다정하게 속삭였다. 넌 정말 멋져. 건강해보여. 맛있어보여(그게 양파 입장에서 칭찬이었을까?). 겉이 반짝거려. 나쁜 말을 듣는 양파에겐 다짜고짜 성을 냈다. 서슴없이 욕하기도 했다. 너 못생겼어. 못됐어. 나쁜 놈. 넌 얼마 안 가 죽을 거야. 그리고 실험이 끝날 때가 되니 좋은 말만 들은 양파는 파릇파릇 싹이 자라고 나쁜 말을 들은 양파는 썩어 죽었다는 결말이었다. 영상 말미에 선생님이 그랬다. 한낱 양파도 좋은 말 나쁜 말을 안단다. 그러니 말조심하자.


나는 가끔 생각한다. 선생님은 그 외에 좀 더 그럴싸한 교훈을 줄 수는 없었는지. 그 영상이 과학시간에 볼 만큼 진정 과학적인 실험었는지. 어쩌다 실험을 하기로 한 사람은 감자도 아니고 당근도 아니고 양파를 고른 건지.


이 실험의 유명세를 입어 그 뒤에 ‘물도 말을 알아듣는다’ 등의 내용을 실은 책도 나왔다. 물 마시기 전에 좋은 말 몇 번 해주고 마시면 건강에 좋다고도 했다. 몇 년 후에 양파 실험도 물 실험도 죄다 가짜라는 얘기가 떠돌았다. 나는 그닥 개의치 않았다. 나는 양파 실험이 마음에 들었다. 곱씹어볼수록 흥미로웠다. 그 실험을 다시 해보고 싶었다. 다만 양파가 아닌 다른 재료들로. 예를 들어…



여기 똑같은 양파 대신 똑같은 아이 둘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애들은 이제 예닐곱이나 됐을 거다. 걔네 둘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동일한 환경에서 동일한 경험을 하고 자라왔다. 그 애들 둘에게 각자 다른 팻말을 붙여보자.

저에겐 좋은 말만 해주세요

저에겐 나쁜 말만 하세요



그렇게 10년이 지났다고 치자. 이제 고등학교에 다닐 걔네 둘은 어떻게 될까? 좋은 말을 들은 걔의 삶은 진정 행복하고 심적으로 풍요로울 것이다. 잘하고 있어. 잘할 수 있어. 실수는 이겨내면 되는 거야. 멋져. 기특해. 넌 뭘 해도 잘될 거야. 그런 응원과 에너지를 받아온 걔가 자기 삶을 얼마나 사랑할지 상상만 해도 부러웠다. 반대로 나쁜 말만 들어온 걔의 삶이 얼마나 서글플지가 뻔했다. 넌 안돼. 네가 해봤자지. 너 같은 애들이 꼭 사고치더라. 멍청하기는. 그런 말만 들은 걔가 자존감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매번 스스로 의문을 품는 모습이 단박 떠올랐다. 자라며 듣는 말들이 (사회적인 성공과 부의 척도를 떠나) 걔네의 심상과 의지와 능력을 이렇게나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



이제 다시 우리의 실험 첫 장으로 돌아가서…



그 예닐곱이나 된 아이들이 나라고 가정해 보자.




나의 일곱 살을 떠올려보자. 두 명의 어린 나를 둘고 하나에겐 좋은 말만, 다른 하나에겐 나쁜 말만 한다고 생각해 보자. 어린 내가 어떻게 자랄지 뻔했다. 그럭저럭 이런 말 저런 말 다 듣고 살아온 내 삶도 어떤 순간 너무나 괴롭곤 했었다. 늘상 나쁜 말만 들었다면 그 순간이 얼마나 더 나빠질지 아득했다. 반면 좋은 말만 들은 내가 지금보다 얼마나 더 평온하고 행복할지 상상하면 현실의 내가 다 기뻤다. 시간을 돌려 그렇게 자랄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이렇게 실험 속에서 우리는 우리 주변을 탓할 수도 있다. 가족, 친구들이 내게 좀 더 좋은 말을 많이 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을 수 있다. 하지만 다시금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가장 많은 말을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리고 더 따져보면 우리에게 가장 나쁜 말을 많이 한 것도 우리 자신이다. 우린 종종 스스로 한계 짓고 단념한다. 우리의 실수에 누구보다 크게 한탄하고 비난한다. 잘 풀린 일은 요행이라 생각한다. 해보고 싶은 일엔 내가 지금 그런 걸 할 때가 아니거나 그럴 자격이 없다고 핑계댄다. 양파한테 넌 안돼, 넌 못해, 너는 문제가 있어, 하는 것과 똑같다. 우리 마음도 우리 말을 다 알아듣는다. 좋고 나쁜 에너지를 구별한다. 사람들이 늘상 강조하는 긍정적인 마인드는 다른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 좋은 말을 해주는 것부터 시작이다.


그러니 우리 마음을 그 어린 애라고 생각하고 좋은 말을 해주자. 할 수 있어. 잘하고 있어. 실수 별 거 아냐. 이러면서 배우는거지. 난 이럴 자격 있어. 좋아. 멋져. 그런 말들로 양파처럼 마음을 키워보자. 그 마음은 일 년만 지나도 온전하고 평온해질 수 있다. 쑥쑥 자란 양파처럼 푸릇푸릇 싹을 틔울 수 있다. 좋은 말만 해서 튼실히 잘 키운 양파는 언젠가 맛있는 요리가 되어줄 거다. 좋은 말로 잘 키운 마음으로는 평화로운 날들을 요리할 수 있을거다. 그게 또 다시 양분이 되어 나를 잘 키워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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