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높은 자존감은 허상이다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by 낮의 그늘


현대를 사는 이들 중 자존감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서점계에 등장한 이 단어는 베스트셀러 판을 온통 휘젓고 다녔고,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위세는 여전하다.



나는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싫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너의 사고방식이, 너의 부모가, 너의 환경이, 혹은 너의 모든 것이 잘못되었으며 그로 인해 너는 자존감이 낮다’고 일갈하는 책들이 싫었다. 게다가 이 도서들은 유행처럼 떼로 몰려들었다. 내게는 큰 위협이었다.


자신이 고립된 패배자임을 깨닫게 해 놓고서 ‘너 자신을 사랑하라’니, 가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다지도 형편없고 잿빛이고 엉망인 인간을 누가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절대적 수준의 낮은 자존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서점에 발길까지 끊은 나에게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는 어마어마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뇌 과학자가 쓴 심리학 책이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존감에 높거나 낮은 절대적 수치는 존재하지 않으며 처한 상황에 따라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말한다. 주장에 걸맞은 연구 사례들을 수없이 분석하면서, 온 힘을 다해 그의 주장이 진실임을 어필한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이런 사례들이 있으니 내가 하는 말 믿어도 돼. 넌 지금 충분히 괜찮아.
네가 보기에 그럭저럭 괜찮은 정도라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해.”



자존감이라는 숙제를 마주할 때마다 무기력함을 느끼던 나에게는 참으로 다정한 조언이었다.

그래. 그깟 자존감. 뭣이 중하단 말인가.






가끔 행복하게 웃는 자신을 발견하고 기묘한 자괴감에 빠진 적이 있는가?


우울증 환자라는 애가 이렇게 웃어도 되는 건가, 하는 죄책감은 지난 수년간 나의 동반자나 다름없었다. 웃음이 터질 때마다 마치 나의 우울은 가짜인듯한 기분이 나를 더욱 고독하게 만들었다.


행복할 수도 없었고, 불행할 수도 없었다. 자아는 갈 곳을 잃고 흔들렸다.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이 허구로 느껴졌다.



인간은 원래 복잡하지요. 우울해하면서 행복할 수 있고, 실패하면서 배울 수 있고, 관계를 지속하면서 독립할 수 있습니다. 아니어도 상관없지만요. 그러니 단일한 정체성을 손에 꼭 붙들고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종종거리지 마세요. 당신은 아직 당신을 모릅니다.


그래서 더욱 이 구절이 나를 위로했는지도 모른다.






당신, 우울증을 앓고 있는가.

우울이란 당신을 이루는 수많은 요소들 중 하나이고 내가 나이기 위해 반드시 우울하기만 할 필요는 없다. 역할에 취해 극을 시작하는 순간 더 최악의 순간이 다가온다는 것을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인지도.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는 감동이나 위로와는 한 발 떨어져 연구나 실험 결과로 냉정히 말한다. '아니어도 상관없지만요.' 하는 문구에서 느껴지듯이. 어쭙잖은 감동 글귀보다 현실의 조언이 필요한 당신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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