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경찰이 현관문을 쾅쾅 두드렸다. 내 조모가 나를 신고했다는 것이었다. 사유는 궁금하지 않았다. 나는 경찰이 묻는 말에만 차근히 대답했고 그들은 돌아갔다.
돌아갔다가 다시 되돌아와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만 조모님과 얘기하여 잘 푸시라고 첨언했다. 나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경찰관은 조모가 계속해서 신고를 반복하고 있고 자기들은 더 이상 받아주기 힘들다고 했다. '꼭 좀 부탁드립니다.'
멀어지는 발소리를 들으며 현관문에 머리를 쾅쾅 박았다. 죽어야만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
나는 그 사람과 인연을 끊은 지 몇 년이나 되었고 부모와 일가친척들 대부분은 그로 인해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 서로의 생사도 확인하지 못하고 사무치게 그리워만 한다. 연락처가 공유되는 순간 그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리움보다 더 크다. 명절은 쓸쓸하고 추억은 없다.
조모는 돈에 환장하는 사람이었다. 얘기를 듣자면 아주 옛날부터 그랬단다. 집에 들어온 식모가 돈을 훔쳤다고 악을 쓰며 집에서 내보내기도 했었고 빌려준 돈 때문에 아들 둘과 연을 끊기도 했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뺨을 때려가며 모든 유산을 두 아들에게 주지 않도록 재차 확인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부모는 없는 셈 치겠다고 했다.
한 번은 조모가 내게 500만 원을 요구한 적이 있었는데 일전에 내 등록금을 내 준 적이 있다나. 물론 개뻥이다. 살아생전 그녀로부터 금전적 도움을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도움을 줄만한 사람도 아니고.) 나는 그런 일은 없었다며 거절했다. 그 날 새벽 음성메시지 하나가 전송되었고 부랑자와 같은 목소리는 나를 벼락 맞아 뒤질 년이라고 불렀다.
조모의 추악한 본성을 마주할 때 나는 극심한 두려움에 시달린다. 어릴 때부터 조모와 닮았다는 말을 너무나 많이 들었기 때문인데, 고집을 부릴 때나 큰 소리로 내 의견을 말할 때 특히 그랬다.
그래서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거울을 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저것은 나의 미래다. 덜덜 떠는 손으로 드라이버를 찾아 손목을 찔렀을 때에는 오직 그렇게 되기 전에 죽어버리자는 생각뿐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런 충동은 종종 찾아온다. 결말이 뻔한 삼류 소설을 왜 끝까지 읽겠는가. 덮어버리는 게 낫다. 단지 죽을 용기가 모자랄 뿐, 아직 내가 죽을 만큼 괴롭지는 않구나 싶을 뿐. 생각이 밝아지는 날에는 내가 그녀와 같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헛된 일을 계속 하지만, 이제와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예전에 빚 독촉에 시달리던 때가 딱 이랬다. 끝없이 울리는 휴대폰, 현관문을 두드리는 거친 타격음, 메시지로 전송되는 저속한 욕설들, 아무렇게나 골라잡은 죄목으로 신고는 계속된다.
낯선 이의 방문은 당분간 계속되겠지. 내 고양이를 두고 온 것은 미안하지만 얇은 곳을 켜켜이 챙겨 입고 동네를 걷고 있다. 내 인생을 비관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좋은 생각을 하기 위해 하늘을 본다. 활짝 핀 벚꽃과 개나리와 철쭉을 본다. 그래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으면 벤치에 앉아 혼잣말을 글자로 나열한다. 순서를 이리저리 바꿔보다 등 뒤에서 나와 비슷한 이름이 불리면 깜짝 놀란다. 그런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