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여자들 - 유지호

당신이 세계를 보는 시야의 일부는 항상 검게 칠해져 보이지 않는다.

by 낮의 그늘




페미니즘을 알고 난 후 나는 더욱 괴로워졌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정상인 줄 알았던 사회의 모든 궤도가 통째로 뒤집혔다. 이는 단어 몇 개, 행동거지 일부를 빼앗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지반이 있어야 그 위에 새로운 뿌리를 내릴 텐데 애초에 발을 디딜만한 땅 조차 없었다. 눈을 돌리는 곳은 모두 고여있거나 썩어있다. 뿌리를 내릴 땅은 눈을 뜬 자가 직접 일구어야 했다. 그건 몹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수도 없이 페미니즘을 놓쳤다가 다시 붙잡고는 했다. 내 안에 남은 습관이 무의식적으로 손등을 매섭게 내쳐 나도 모르게 쥐고 있던 것을 놓친 적도 있었고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모든 것을 놓아버린 적도 있었다. 함께 뜻을 이루려는 사람이 턱없이 모자라게 느껴졌고 겪어야 할 고통에 비해 세상은 아무 변화 없이 유유히 가던 길을 가는 것 같아 야속했다.




막막한 현실을 실감할 때마다 후회했다. 차라리 몰랐더라면 좋았을 걸.




중요한 것은 이런 상황을 나 혼자 겪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그동안 공고히 다져진 우리 사회의 기반을 통째로 부정한다. 인간의 기본 형태에 ‘여성’을 한 겹 덧씌움으로써 금지되는 것들이 어찌나 많은지. 그런 사회에 의존하여 살아가던 우리가 페미니즘으로 괴로워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거대한 흐름 앞에 우리는 작고 나약하고 보잘것없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더욱 채찍질하며 발버둥 쳤다고 생각한다.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잘못된 부분은 이렇게나 많고 알려야 할 부분은 그보다 더 많으며 드러나지 않은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을지에 대해 늘 생각했다. 조급했던 것이다.



이 상황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은가?’ 가부장적 가치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들은 무엇이 있을까?


<최초의 여자들>은 한 번쯤 좌절의 경험이 있는 페미니스트들을 향해 말한다.





방향성만 가지고 정의감에 페미니즘에 뛰어든 사람은 “여전히 의존하기 쉽다”. 단기적 목표에 멀리 보는 시야가 차단된 이들은 “왜곡된 자아상을 입는다”.


이후 저자 유지호는 국내의 페미니스트들에게 탈피와 재구축을 제안한다. 갓 알에서 깨고 나온 새에 비유되는 페미니스트들은 필연적으로 취약하다. 이것은 진실이다.



룩샨 게이가 <나쁜 페미니스트>에서 말했듯 우리는 인간이기에 실수할 수 있다. 잘못된 길로 들어갈 수 있다. 실패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잘못된 점을 인지하고 나아갈 방향을 비트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초의 여자들>은 페미니즘 입문서라기보다 이미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페미니스트들을 위한 책이다.






실은 꽤 오랫동안 페미니스트가 되자 마음먹었던 이유를 잊고 있었다. 내가 페미니즘을 선택한 이유는 ‘남자 다 비켜’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길을 가고 싶어서였다.


‘공학을 잘할 수 없음’, ‘결혼 후엔 직장을 영위할 수 없음’과 같은 여성의 금제는 나를 나로서 존재하지 못하도록 강제했다. 가부장적 명제에 절여져 ‘그냥저냥 회사생활하다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이후에는 전업주부로’가 꿈이었던 때도 있었다. 그때에는 그것이 여성으로서의 낭만이자 행복이었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 모두 그것이 정상이라 여겼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또 어떤가. 미약하지만 세상은 변했다. 내가 원하는 세상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엉망이지만. 어쨌든 아주 조금씩 그리고 아주 아주 천천히 세상이 변하고 있다. 그것은 또한 남성주의적 규칙이라는 가부장적 알을 깨고 끈적이는 점액질을 벗어나 아무것도 없는 무의 공간에서 스스로의 규칙을 만들어가는, 우리 최초의 여자들이 만들어낸 성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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