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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의 그늘 Feb 23. 2023

도서관 가는 일기: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23.01.15




소위 N번방 사건이라고 불리는 범죄는 이제 잘 알려져 있다. 아마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보도를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 단어를 보았을 때 한 순간도 분노하거나 좌절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도가니처럼 들끓던 분노는 지난 2년 간 점점 사그라들었고, 책을 다시 읽기 전에는, 정말 부끄럽지만, 생계와 더불어 수많은 사회 문제 중 하나로만 남아있었던 참이었다.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 추적단 불꽃으로 알려진 대학생 기자단  명의 N번방 추적기이다.

그러니까 그들의 기록인 것이다.


내 마음속 N번방 사건은 닉네임으로 알려진 몇 명의 가해자와 솜방망이 처벌, 사회 절반의 무관심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N번방이라는 말을 떠올릴 때마다 그 3가지 사실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그 때문에 매번 분노한다. 분노하는 것이 지겨워서 눈을 돌리고 마음을 닫을 때도 있었다. 세상은 변하지 않으니까. 이런 쓰레기 같은 세상은 멸망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행위의 전부였다.


어떻게 그 생각에 이렇게 오랫동안 매몰되어 있을 수 있었을까? 읽는 내내 ‘불꽃’은 내 죄책감에 불을 붙이고 타닥타닥 피어오르게 했다.




불꽃은 ‘ ‘익명의  사람이 번갈아가며 추적 과정을 서술한다. 완전히 추적(나는 수사 기록이라고 부르고 싶지만) 기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어떻게 ‘우리 되었는지에 대한 회고도 포함되어 있다. 2장은  사람의 에세이라고   있겠다.


그래서 지나치게 사건에 몰입하여 소비하려고 하는 내 뇌의 도파민을 차단하고 그들 역시 ‘우리’ 임을 알려준다. 우리는 서로 알지 못하지만, 하나의 공감대를 공유함으로써 연결된다. 그 연대는 사건을 ‘이슈’로 만들어 자극적으로 소비하려고 하는 나를 잠시 멈춰 세우고,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마구잡이로 분노하는 것 외에 또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게 해 준다.


책을 읽는 동안 내가 N번방 사건에 대해 몰라도 진짜 모르고 있었다는 반성을 했다. 그동안 나는 무엇에 대해 분노했던 걸까? 어쩌면 무결한 사람으로서 ‘분노하는 나’에 몰입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일례로 ‘N번방 방지법’이 통과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그것이 ‘n번방 방지법’으로 불리기에는 어폐가 있다는 사실 또한 이번에야 알았다. 통과된 법은 딥페이크를 이용한 불법 행위 처벌 강화와 관련된 내용이며, 따라서 ‘n번방 방지법’이라는 이름 대신 ‘딥페이크 처벌강화법’으로 정정되어야 한다.


이 부분을 읽고 n번방 방지법을 검색하자마자 ‘제2의 피해 왜 막지 못하나’라는 제목을 단 기사들이 줄줄이 나왔다. 입법부가 n번방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읽지 못했거나, 국민의 뜨거운 관심을 압박으로 느껴 졸속으로 처리된 것이 분명했다. 내가, 우리가 조금 더 관심이 있었다면 달랐을까? 제2의 피해 사실도, 그것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마저 이제야 알았다는 점이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N번방 사건은 몇몇의 영영 지옥불에 불타야 할 쓰레기들이 피해자를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한’ 범죄이지만 그것뿐만이 아니다. 그것을 자신들만의 향락으로 이용한 텔레그램 소비자들과, 이를 단순한 이슈로 만들어 각자의 입맛에 맞게 이용하려 했던 사회가 맞물려 동작한 사회적 사건이다. 함께 고쳐야 할 문제인 것이다.


‘나 혼자 즐기는 것까지 처벌할 것이냐?’, ‘생각하는 것까지 처벌할 수는 없지 않으냐?’라고 말했다던 국회의원을 검색해 이름을 알아냈다. 속으로 욕설을 바가지로 퍼부었지만 생략한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비단 이 국회의원 몇 명에게만 손가락질하고 끝낼 수 있는 문제일까?


불꽃은 이 책을 통해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여기 방법이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이 있다. 바로 관심을 갖는 것이다.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범죄를 예방하고 피해자를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우리’가 연대하여 지속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인용된 피해자들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한때 ‘핫했던 이슈너머에서 실질적 보호를 받지 못한  잊히는 것이다. 그다음에는 더욱 진화한 범죄 가해자들이 나타날 거고 사회는 또다시 잠깐 시끄럽다가 잦아들겠지. 아이러니하게도, 피해자와 추적단이 걱정하는  상황은 가해자들이 가장 반기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러니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행동해야 한다. 가만히 앉아서 잊어버리면 가해자를 돕는 꼴이다. 며칠 전 읽었던 라인하르트 할러의 <악의 얼굴은 바뀌고 있다>의 구절을 인용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선하다면 그것은 문화의 결실이다.”
- 악의 얼굴은 바뀌고 있다


문화는 누가 만드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들이다. ‘불’과 ‘단’ 두 사람이 연대가 N번방의 수많은 가해자들을 잡아냈다. 보다 많은 우리가 된다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진 않을지 생각해 본다.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또 무엇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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