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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서 Sep 05. 2024

사라진 아들

"넌 결코 실패자가 아니야." 

김 할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이 걱정으로 더 깊어졌다. 30대 아들 영호와 며칠째 연락이 되지 않아서였다. 할아버지의 한숨 소리가 골목을 타고 흘러갔다. 


"영호야, 어디 있느냐..."


그 한숨이 마침 지나가던 민지의 귀에 꽂혔다. 그녀는 최근 폐기하기로 결심했던, 감정 주파수 탐지기를 문득 떠올렸다.


"아, 맞다! 그거!"


민지는 집으로 달려가 먼지 쌓인 상자를 뒤졌고, 얼마 되지 않아 감정 주파수 탐지기를 찾을 수 있었다. 


'후, 버리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녀가 기기를 툭툭 치자, 기계가 삐빅거리며 켜졌다. 화면에는 "펌웨어 업데이트가 필요합니다"라는 메시지가 떴다. 


"아, 몰라. 그냥 무시해." 민지는 '업데이트 무시' 버튼을 누른 뒤 김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할아버지, 제가 영호 아저씨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걸로요!"


김 할아버지는 민지의 손에 들린 기괴한 물건을 의심스럽게 바라봤다.


"그게 뭐여, 고철덩어리?"

"아니에요, 할아버지. 이건 감정 주파수 탐지기예요.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어요."

"허허,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할아버지는 민지의 말이 조금도 이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별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민지를 따라 나섰다.


*

둘은 동네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주파수 탐지기는 이따금 "삐비빅" 하고 울렸지만, 그때마다 동네 고양이나 술 취한 아저씨를 가리킬 뿐이었다.


"아이고, 이거 쓸모없는 것 아니여?"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할아버지!"


그때 갑자기 기계가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화면에는 빨간색 점이 깜빡거렸다.


"찾았다!"


민지와 할아버지는 신호를 따라 허름한 원룸 건물 앞에 도착했다.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라 3층 끝방 앞에 섰다.


"영호야! 거기 있느냐?" 할아버지의 떨리는 목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방 안에서 움찔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민지는 감정주파수탐지기를 문에 가까이 대보았다. 화면에 짙은 회색 안개 같은 것이 뒤덮인 채 간간이 파란 섬광이 번쩍였다.


"할아버지, 영호 아저씨가 많이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요. 하지만 희망도 있어요."


할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문을 두드렸다.


"아들아, 내가 널 얼마나 찾았는지 아느냐? 무슨 일이 있어도 네가 내 아들이란 건 변하지 않아."


문 안쪽에서 희미한 흐느낌 소리가 들렸다. 감정 주파수 탐지기의 화면이 갑자기 밝아졌다. 회색 안개 사이로 

노란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영호야, 열어다오. 나랑 얘기 좀 하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때 민지의 감정주파수탐지기에서 부드러운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화면은 이제 푸른빛과 노란빛이 춤추듯 어우러지고 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문이 열렸다. 영호의 핏기 없는 얼굴이 나타났다. 그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뺨에는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아버지... 저는..." 영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할아버지는 말없이 아들을 끌어안았다. 그 순간 감정주파수탐지기의 화면이 갑자기 눈부신 빛으로 가득 찼다. 민지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


"아버지, 저는 실패자예요. 회사에서 잘리고, 빚까지 지고... 아버지 얼굴에 먹칠을 했어요."

할아버지는 아들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그래, 다 말해보거라. 아버지가 다 들어줄게."

영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저...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너무 무서워요, 아버지."


감정주파수탐지기의 화면이 계속해서 변화했다. 이제는 따뜻한 주황빛이 화면 전체를 감싸고 있었고, 그 위로 작은 초록색 점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영호의 어깨를 잡고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들아, 듣거라. 넌 결코 실패자가 아니야. 넘어졌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다시 일어서는 거지."


"하지만 아버지, 제가 어떻게..."

"함께 해결해 보자. 애비가 항상 네 곁에 있을게."


그 순간, 감정주파수탐지기에서 경쾌한 종소리가 울렸다. 화면은 이제 밝은 초록색으로 가득 찼고, 그 위로 금빛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민지가 놀라서 외쳤다. "와, 이건 제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색이에요! 영호 아저씨, 희망이 샘솟고 있어요!"


영호와 할아버지가 동시에 민지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의문과 함께 작은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


"저... 그러니까..." 민지는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제 감정 주파수 탐지기가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세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 웃음소리와 함께, 감정주파수탐지기의 화면은 무지개빛으로 물들어갔다.


민지는 문득 깨달았다. 기계가 탐지한 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이었고, 이해였으며, 용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희망이었다.


"자, 이제 집에 가자." 할아버지가 말했다. "오늘 저녁은 내가 사마."


그들이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할 때, 갑자기 감정주파수탐지기에서 '삐빅' 소리가 났다. 민지가 화면을 들여다보니 붉은 글씨로 메시지가 떠 있었다.


[배터리 잔량 1% 남음. 긴급 충전 필요.]


민지가 손가락을 재빨리 움직여 몇 가지 명령을 입력했다. 화면이 깜빡이더니 이내 정상으로 돌아왔다.

영호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 "민지야, 방금 뭐였어? 그리고 넌 어떻게 그걸 고친 거야?"


민지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영호는 놀라고 말았는데....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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