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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서 Oct 18. 2024

지금 우리, 권태기인가?

당신에게 묻는 말 | 연애의 발견


“뭐해? 오늘 나 있잖아…” 내가 20대에 만나던 남자친구는 군 복무중이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가끔씩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처음엔 그의 전화가 반가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전화가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다 보니 감정의 거리가 생겼고, 그 거리는 통화 속에서 점점 더 뚜렷하게 드러났다. 그가 군 생활이 힘들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응, 그래. 나도... 별일 없어.”


내 말은 언제나 짧고 무심했다. 전화를 끊을 때쯤엔 이미 내 마음은 딴 곳에 가 있었고, 그의 이야기에 별로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때 나는 관계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랑이 그저 감정만으로 지속될 거라 자신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무심한 태도 때문이었을까. 결국 우리 사이엔 금이 가고 말았다. 그는 점점 더 외로워진 반면, 나는 그가 함께하는 시간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결국 우리 사이는 점점 멀어져 닿을 수 없는 길에 다다르고 말았다. 


그와 헤어지고 또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는 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돌아보니, 결국 관계를 지킬 의지가 부족했음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드라마의 한 대사가 내 경험과 너무 비슷해서 소름이 돋았다.


KBS 2TV <연애의 발견>에서 한여름(정유미)은 전 남자친구 강태하(문정혁)와 재회하며 이렇게 말한다.


당신 만났을 땐 사랑이 감정의 문제인 줄 알았는데, 헤어지고 나서 생각해 보니 의지의 문제더라. 이 사람을 얼마나 좋아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람을 지킬 의지가 있느냐의 문제였어.



맞다. 사랑을 시작하는 것은 감정이지만, 그 사랑의 지속에는 관계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필수 요인이다. 그러나 단지 의지로만 관계를 지키는 것은 아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 그리고 함께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 또한 관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이러한 생각은 내 주변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얼마 전, 한 친구가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도 그 사람 좋아해. 근데 자꾸 싸워. 우리가 너무 달라서 싸움이 반복돼. 이게 맞는 걸까?”


그 말을 듣고 나는 자연스럽게 내 과거를 떠올리게 되었다. 나 역시 관계를 이어가는 데 필요한 노력을 등한시했던 때가 있었으니까. 친구의 고민을 들으며 나는 물었다. “계속 싸우기만 한다면 그만둘 수도 있지 않아? 왜 계속 만나고 있는 거야?”


친구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잘 모르겠어. 근데 내가 더 노력하면 나아질 것 같아. 이 관계를 포기하기엔 그 사람이 너무 소중해.”



그 순간, 나는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한 두근거림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상대를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고,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순수한 열망이라는 것을.  친구는 갈등 속에서도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려 했고, 그 노력이 둘 사이를 끈끈하게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었다.


한 사람과 10년 넘게 만남을 이어오고 있는, 또 다른 친구도 비슷한 말을 했다. "우리는 항상 서로를 위해 조금씩 양보해. 의견 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며 이해하려고 하지. 그런 노력이 없었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할 수 없었을 거야."


지난 연애를 곱씹고,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또한, 이전과 달라졌다. 최근 새로운 사랑도 시작했다. 놀라운 점은 이제 전처럼 감정이 식는 게 두렵지 않다는 점이다. 상대방이 나를 더 사랑해주길 바라지도 않는다. 오히려 내가 이 사랑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지 고민한다.


사랑은 언제나 감정의 기복을 겪기 마련이다. 때때로 설렘과 기쁨은 흐릿해지고, 지루함과 무료함은 짙어질 지 모른다. 그때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만남을 이어갈 것인지, 아니면 각자의 길을 갈 것인지. 하지만 서로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다면, 최선을 다해 '사랑'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먼 훗날, 지금을 떠올렸을 때 아름다운 시절이었다고, 그때 우리가 한 게 '사랑'이었다고 추억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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