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건 사진뿐이니까요. | 디어마이프렌즈
"사진 찍자! 다들 모여봐." 모임이 끝날 즈음이면 어김없이 누군가 이렇게 외친다. 친구들이든, 연인이든, 우리는 늘 마지막 순간을 사진으로 남긴다. 누군가는 카메라 렌즈를 보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또 누군가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어색함을 감추려 한다.
그렇게 "하나, 둘, 셋!" 카운트다운에 맞춰 사진이 찍히는 순간, 우리는 포즈와 표정을 고정한 채 카메라 렌즈를 바라본다. 마치 그 순간을 영원히 붙잡고 싶어하는 듯한 몸짓이, 그 짧은 찰나의 행위가 결국 지나가버릴 시간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것처럼.
"남는 건 사진뿐이라잖아."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 역시 그 말에 동의한다. 지나고 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이 오직 그때 찍어둔 사진을 통해서만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아서다. 그 순간의 공기, 소리, 웃음소리마저 사진을 통해 재생되는 게 아닐까?
한 예로, 몇 년 전 친구들과 한겨울의 부산 바다를 거닐며 인근의 포토부스에서 찍었던 사진을 떠올리면, 해변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과 짭짤한 바다 내음이 코끝에 맴도는 것 같다. 강렬한 붉은 조명 아래에서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찍었던 그 사진 속, 우리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웃음을 나누며 벅찬 순간을 함께하고 있었다. 지나버린 시간 앞에서 나는 사진을 보며 과거의 나와 다시 마주한다.
찰칵, 셔터 소리와 함께 사진이 완성되는 순간에도 시간은 흐른다. 이 순간은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까. 사진을 찍는 그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그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마치 손에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시간은 지나버리고 남는 것은 그저 사진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어 그 순간을 붙잡으려고 애쓰는 게 아닐까.
문득 tvN <디어마이프렌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친구들 사진 찍을 때 보니, 오늘 지금이 자신들에게는 가장 젊은 한때더라고"라는, 나이든 희자(김혜자)의 말은 내게도 유효하다. 나는 지금의 삶을 충분히 누리고 있는 걸까. 나이가 들어 주름이 깊어지고 더는 젊지 않은 내 얼굴을 마주하게 되면, 나는 오늘의 나를 어떻게 떠올릴까. 그때가 좋았지 하면서 돌아가고 싶어할까. 아니면 고개를 저으면서 현실에 만족하고 있을까.
아마도 그때의 나는 현재에 만족하면서도 과거를 그리워할 것이다. 지금도 때로는 옛날의 나를 떠올리며 그리워하니까. 그럴 때면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며 추억에 잠긴다. 이제는 조금 희미해져버린 그 시절의 공기와 냄새, 소리가 사진 한 장으로 되살아난다. 과거의 사진을 보며 그 시절 나와 함께했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누군가는 여전히 내 곁에 있지만 또 누군가는 사진 속에만 남아 더는 닿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사진을 보면서 사람과의 인연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레 변해가는 관계들, 어떤 만남은 더 깊어지고, 또 어떤 사이는 점점 멀어져간다. 다음에 또 만나자는 말이 그저 예의상 하는 말로 끝날지, 아니면 그 말이 불씨가 되어 또 한 번의 만남으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관계가 이어지기 위해서는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하다. 서로의 마음이 닿아야 가능한 일이니까. 모든 것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은 때로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변화는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의 삶을 잘 살고 있는 걸까? 내 삶을 충분히 즐기고 있는 걸까? 때로는 자신에게 묻는다.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일과 걱정, 불안 속에서 내가 진정 나다운 삶을 살고 있는지. 바쁜 하루를 보내다 보면 가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만큼 정신이 없을 때가 많기에 더더욱 묻는 질문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시간들도 결국 내가 만들어가는 인생의 조각이자 추억이 될 것임을 이제는 안다. 지난 날의 나처럼, 지금 이 순간의 나 또한 언젠가는 추억이 되어 사진 속에 머무르겠지. 그러니 더는 주저하지 않고, 오늘을 온전히 살아보려 한다. 지금 이 순간, 나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