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서 Oct 22. 2024

나만 눈치 보는 줄 알았는데

혼자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 청춘시대


"첫 출근 힘들죠? 어려운 일 있으면 말해요. 도와줄게요." 사회초년생 시절, 새로운 회사로 첫 출근에 나선 날, 나만큼 긴장한 사람이 또 있을까? 긴장감에 얼어버린 채 자리에 앉은 내게 옆자리 선배가 따스하게 건넨 이 한마디를 약 10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말 덕분에 딱딱하게 굳었던 어깨에서 살짝 힘이 풀렸으니까.


그러나 출근 첫날의 따뜻한 말이 사회생활의 전부는 아니었다. 일은 점점 많아졌고, 실수도 잦아졌다. 나는 일을 잘하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적성이 맞지 않는 것인가 고민하는 순간도 자주 찾아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망칠 수는 없었다. 학교를 졸업한 이상, 다시 백수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이 회사에서 버티기로 결심했다. 다른 선택지가 있을 때까지는 말이다.


회사생활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도전을 요구했다. 크게 혼이 난 날이면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지적받을까 봐 두려워 긴장한 날도 많았다. 그럴 때 나를 버티게 해 준 것은 동료들이었다.



"이렇게 써도 괜찮을까?" 당시 한 매체에서 기사를 쓰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쓴 글에 자신이 없었다. 기획기사는 특히 어려웠다. 이슈를 취재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작업이 익숙하지 않아 실수하지 않으려 애썼다. 당시 친하게 지내던 한 동기에게 자주 도움을 요청했었는데, 그녀는 내가 걱정할 때마다 기사를 먼저 봐주며 "잘 썼어. 너무 걱정하지 마."라고 말해주었다. 그 한마디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퇴근 후에도 동료들과 나누는 대화와 맥주 한잔이 나를 다시 일어서게 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단순한 동료가 아닌, 삶을 함께 나누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위로는 동료들에게만 받은 것이 아니었다. 평소 무뚝뚝하던 상사도 어느 날, 퇴근 후 메시지를 보내왔다. 내가 실수를 하고 크게 혼이 나, 울적한 마음으로 퇴근하던 길이었다.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 상사의 메시지를 받은 순간,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마음 한구석에서 계속 스스로를 탓하고 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실수는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저 일을 배우는 과정 중 하나였을 뿐인데, 무엇 때문에 그토록 스스로를 괴롭혔을까. 


시간이 흐르며 나는 점점 회사 생활에 익숙해졌고, 업무 성과도 낼 수 있게 됐다. 이제는 내가 받은 배려와 도움을  다른 이들에게 나눠줄 차례가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신입사원 중 한 명이 상사에게 질책을 받고 풀이 죽어있는 모습을 보았다. 다가가서 말을 걸까, 아니면 혼자 있게 둘까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그녀에게 음료를 건네며 말했다. "괜찮아요? 이거 먹고 힘내요." 그 순간, 내가 받았던 위로를 다시 나누고 있음을 느꼈다. 그렇게 나 또한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한창 재밌게 본 JTBC  <청춘시대> 한 장면이 떠올랐다. 대학 신입생 은재(박혜수)가 셰어하우스에 입주한 뒤 “나만 참는 줄 알았다. 나만 불편한 줄 알았다. 나만 눈치 보는 줄 알았다”라고 말하던 장면이었다. 은재는 뒤늦게 룸메이트들 역시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러고 보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와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나보다 무례하고 난폭하고 무신경할 거라고 생각했다”라고 고백한다.



그 장면처럼 나 역시 사회초년생 시절, 회사라는 거대한 공간에서 나만 혼자 불안해하고 위축되어 있다고 여겼다. 실수를 할 때마다 나만 부족한 것 같고, 동료나 상사는 나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되었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역시 나처럼 불안한 시간을 견뎌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간이 흘러, 더 큰 성장을 위해 회사를 떠나던 그날도 잊을 수 없다. 많은 이들이 나를 배웅해 주었는데, 당시 한 선배가 건넨 작은 카드와 책 한 권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고생 많았어." 그 짧은 메시지에서 나는 그간 내가 걸어온 길이 헛되지 않았음을, 내가 나름대로 잘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드라마 속 은재처럼, 나 역시 불안과 혼란 속에서도 결국 누군가의 응원으로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나 또한 그런 누군가가 되어, 내가 받은 응원을 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렇다면 누구한테 전하면 좋을까. 대상은 정해졌다. 당신에게 내 목소리가 닿길, 건투를 빈다.


이전 10화 왜 그렇게 인증샷에 목숨 거냐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