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프롤로그, 헌법은 왜 진화해야 하는가

시민이 다시 쓰는 일기

by 소선

“이 연재가 출발한 바탕, 제가 쓴 공민주의 헌법 초안_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soseon/141


"이 글은 개인의 의견을 담은 에세이로, 법이나 제도의 기준으로 읽히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이가 잠든 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 바닥은 정말 안전한가.”

내가 딛고 있는 이 구조가 무너진다면, 아이는 어떤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까.

그 순간 헌법이 떠올랐다.


그 물음은 곧 나 자신을 향한 질문이 되었다.

나는 왜 헌법을 쓰려 했을까.

그 물음은 결국 나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

삶이 위태롭다는 느낌이 들 때, 사람은 본능적으로 구조를 의심하게 된다.

이대로 괜찮은가. 이 구조는 과연 우리를 지탱할 수 있는가.


헌법은 일상의 바닥이다.

우리는 그 바닥 위에서 일하고, 사랑하고, 아이를 키우고, 늙어간다.

하지만 정작 그 바닥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더 나아가 묻는다.

그 바닥을 지금, 다시 깔아야 할 필요는 없을까.


나는 헌법을 법률가의 언어가 아닌 시민의 언어로 다시 써보고 싶었다.

단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자리에서부터 새롭게 말해보고 싶었다.

지금의 헌법은 민주주의의 틀을 지키기에는 충분할지 몰라도,

민주주의의 생명을 유지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우리는 매일같이 “민주주의 국가”에 산다고 배우지만, 그 민주주의가 나의 삶에 어떤 실질을 주는지는 점점 더 불투명해진다.

정치는 대표자들의 일이 되고, 권력은 투표일 사이에 증발한다.

거대한 정당과 소수의 엘리트가 국정을 좌우하는 구조, 참여는 간헐적이고, 감시는 불완전하며, 책임은 흐릿하다.

그 사이에서 시민은 점점 피로해진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시민은 단지 유권자가 아니다.

시민은 ‘국가의 구성자’이고, ‘헌법의 공동 저자’여야 한다.

그래서 나는 헌법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한 개인이 감히 헌법을 쓴다는 것, 그 불가능해 보이는 시도를 시작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절실함.


공민주의 헌법 초안은 이런 물음에서 출발했다.

이 헌법은 선언이 아니다. 제안이며, 요청이며, 질문이다.

지금까지의 헌법이 “권력의 설계도”였다면, 나는 그것을 “삶의 계약서”로 바꾸고 싶었다.


공민주의란 자유민주주의를 계승하면서도, 그 한계를 넘어서는 이념이다.

대표를 뽑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참여를 통해 정책과 법을 결정하고, 단지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결과의 정의에까지 이르는 분배 구조를 고민하며,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는 사회적 연대를 헌법의 중심에 둔다.


공민주의 헌법 초안은 국민발안제, 국민소환제, 기본배당제 같은 제도를 통해 주권의 실질화를 시도한다.

이러한 조항들은 시민을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통치의 주체로 복귀시키는 장치다.


우리는 권력을 한 번에 위임하고 손 떼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매 사안마다 우리의 손길을 통해 권력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공민주의의 철학이다.


공민주의 헌법 초안의 또 다른 핵심은 ‘분배 정의’이다.

기본배당제라는 개념은 단순한 복지가 아니다.

그것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공동체의 부에 대해 ‘기본적인 지분’을 갖고 있다는 선언이다.

이 지분은 국가가 국민에게 시혜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함께 유지해온 대가이자 권리이다.


이 제도는 현금의 이전을 넘어서,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시장에서 밀려난 사람도, 돌봄과 생존에 시간을 쓰는 사람도, 이 사회의 일부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구조.

그것이 공민주의가 지향하는 바이다.


공민주의 헌법은 또한 ‘지속가능성’을 하나의 권리로 제안한다.

이제 헌법은 현재 세대만의 것이 아니다.

기후 위기, 자원 고갈, 생태계 파괴는 다음 세대의 생존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헌법은 ‘다음 세대의 권리’를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책임으로 명시해야 한다.


‘디지털 포용’, ‘정보 접근권’, ‘신기술의 윤리’ 같은 조항들도 마찬가지다.

기술은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그로 인해 배제되는 이가 없도록 국가는 설계하고 감시하고 개입해야 한다.


나는 이 초안을 쓰면서, 끊임없이 불안했다.

‘내가 이럴 자격이 있는가’, ‘이건 너무 과한 건 아닐까’, 그 모든 의심은 여전히 내 안에 있다.


하지만 생각해본다.

헌법은 누구의 것인가.

국회와 대통령과 법률가들만의 것일까.

헌법은 결국, 우리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


시민 한 사람이 헌법을 다시 쓰는 이 일은 거창한 혁명이 아니다.

다만 나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사회가 조금 더 인간답고, 조금 덜 불안한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그 간절한 마음으로 이 작업을 계속해왔다.


이것이 완성된 헌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던지는 질문은 진지하다.


우리는 정말로, 지금의 제도가 우리 삶을 지탱해주고 있다고 믿을 수 있는가.

우리는 시민으로서, 지금의 헌법 위에 계속 살아도 괜찮은가.

그리고, 우리는 헌법을 다시 쓸 준비가 되어 있는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