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있어도 괜찮다는 말은 그 누구에게도 듣지 못했지만 차 마시다 보면 여기 있어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차로 오감을 채우면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잿빛 세상에 빛이 들어온다.
그늘에 빛을, 잡음에 고요를, 무색무취의 나날에 색과 향기를.
차 마시고 향 사르다 보면 왜 이것들이 禪이랑 연결돼있는지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세상과 한없이 단절되면서도 긴밀하게 이어져 있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아도 그런 것쯤 괜찮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삶에 소외되는 느낌이 들지 않게 해 준다.
여기에 존재한다, 는 감각은 의외로 중요한 것이라 무게중심을 잡게 도와준다.
나에게 차 마시는 건 쉼표가 아니라 마침표를 찍는 일. 마음에 방점을 찍고 앞으로 써나갈 일을 그리게 되는 일.
차는 나를 살게 하고 향은 나를 숨 쉬게 해.
말하자면 차랑 향은 나라는 인간이 풍선처럼 저 멀리 떠오르려고 하면 잡아주는 손 같은 것. 세상에 발 딛고 서 있게 해주는 것.
기호식품에, 좋아하는 것에 구원 좀 받으면 어떤가. 그게 내 구원인데.
그러니까 오늘도 차를 마시고 향을 피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