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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르바나 Nov 26. 2020

기청 소시집 '홍수와 나비'외

-현대시문학 20 겨울호 



현대시문학 / 20 겨울호


기청 시인/ 소시집 원고 5편  / 감상 이향숙 시인



洪水와 나비


지난 봄 하얀 꽃구름

개망초꽃 일렁이는 가벼움으로

폴폴 날던 그 흰 나비 무사할까?

긴긴 장마 폭우에


맑은 물 돌돌

사철 푸른 섬진강 화개장터,

성난 홍수에 우짜노

목까지 차오른 절망

울컥 솟구치는 눈물 우짜노


꿈인 듯 생시인 듯

거친 짐승의 울부짖음 속으로

밀어붙이는 힘, 다 쓸어간다 해도

순박한 마음씨까지야


이를테면 그렇게 밀어붙이는

머릿수의, 광란의 위력으로

민주 법치(法治)의 둑 허물어버리 듯

갈아엎고 뒤엎는 야만의 술수(術數)

그렇게 휩쓸려가지만

그렇게 이긴 듯하지만


결국 스스로 무너지고 마는

한갓 허구(虛構)의 덫이리니

똑똑히 보라는 듯

폭우가 내리는 날 나비는

범람하는 분노의, 강을 거슬러

오염되지 않은 순수, 원류(原流)를 향해


폴폴 그 여린 날개의 가벼움으로

그 열락(悅樂)에 찬 순교의

자유의지 그

영혼의 솟구침으로.



그래도 가을은



들판에 듬성듬성 쭈빗쭈빗

멋쩍게 서있는 수숫대도

예전처럼 잘 익어 고갤 푹 숙이고

길러준 농부에게 한껏 머릴 조아리던

그 풍요豊饒의 시절을 생각하며


미안한 듯 부끄러운 듯

간간이 몸을 떨며

멀찌감치 물러서서 농부의

애타는 마음을 달래주듯

어디 숨을 곳이 없어

불어오는 바람에 한숨만 날리는데


보라, 저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은 사람들

저 혼자 잘난 체 정의로운 체

모두가 손가락질해도

부끄럽기는커녕 포동포동 살이 올라

더욱 독기毒氣가 올라

모가지 꼿꼿 세우는 독뱀의 무리


보라, 저리 왁자하던 저자거리도

마스크를 눌러쓴 그림자만 서성이고

목마른 영혼들, 기웃기웃

낙엽에 실려 떠도는 이 가을,



하얀 추석(秋夕)



억새꽃 지천으로 날리는

고향언덕 혼자 선

미루나무 외롭더니

오늘 밤은 내가 미루나무 되어

바람에 윙윙 나부꼈다


이번 명절엔 고향에 오지 말거라

노모老母의 당부가 귀에 쟁쟁

가시처럼 목구멍에 걸려

명절 때만 반짝 사람냄새

외로움은 뼈마디 끝에 저려오고


옛날엔 코로나*) 타고

으쓱하며 달리던 고향 길

언젠가부터 뜸해지고

코로나 19로 멀어진 사람과

사람 사이가 잡초雜草만 무성해져

눈처럼 억새꽃이 날렸다


온라인으로 성묘를 하고

온라인으로 차례茶禮를 지내고

홈쇼핑에서 명절음식을 시켜먹고

배는 불러도 마음은 허기져서

사막을 떠도는 순례자처럼

백골白骨에 사무치는 긴 그림자여


사람냄새 그리운 중추절仲秋節은

초가지붕에 하얀 박덩이 덩실

동산에 떠오른 보름달 더덩실

천천히 오브랩 되는

그리운 얼굴 얼굴이여.



아내의 텃밭



뿌연 신새벽 아내의

텃밭에는 채 승천(昇天)하지 못한

별들이 송송


저만의 빛깔과 향기의 환한

꽃송아리로 피었다


오래전부터 꿈꾸던

전원(田園)의 꿈을 접고 아내는

메마른 콘크리트 바닥 베란다에

저만의 꿈을 심었다


들깨 고추 강낭콩이며

하얀 구절초와 산나리까지

영락없는 어린 날 추억의

고향을 불러다놓고


내가 모르는 세상의

우주를 펼치고 있다


나는 나대로 오래전부터

꿈꾸던 그 새하얀 구절초와 흠뻑

아침 이슬에 젖은 산나리의 향 내음


숨차게 살면서

자꾸만 멀어져 가는 손짓

까마득 잊은 채,


 

지하철 오뎅 맛



새가 날아 날며 오가다

잠시 햇살 바른 언덕에 모여

보이지 않는

은총에 머릴 조아리듯


지하철 오가다 잠시

따뜻한 오뎅 국물에

인사도 없이

눈치 볼 것도 없이


서로의 고뇌를 녹인다

변해야 산다는데

낡고 헛된 것 죄다 갈아엎고

변해야 산다는데


따끈한 국물 한 모금

변하지 않는

그 맛

부산 오뎅 맛

변하지 않는, 변할 수도 없는


개혁보다 뜨거운

혁명보다 알싸한

그 맛

변함이 없는 그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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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청 신작 소시집 작품감상


시인 이향숙/ ‘범람’의 원류로 거슬러 오를 때


섬진강 서시천이 범람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틀 동안 집중호우로 쏟아진 비의 위력은

아름다운 절경 벚꽃길과 화개장터를

물속에 가두어 17개 리가 군데군데 폐허로 남았다.

‘결국 스스로 무너지고 마는 한갓 허구의 덫처럼’

물을 담는 그릇이 좁은데 물을 계속 붓는다면

그 물은 결국 넘친다는 자명한 논리이다.


‘똑똑히 보라는 듯

폭우가 내리는 날 나비는

범람하는 분노의 강을 거슬러

오염되지 않은 순수, 원류를 향해‘를 되짚으며

과연 ‘범람’은 강 밑바닥을 더 깊이 파고 인근의

지류와 지천을 정비하고 제방을 정리한다면

막을 수 있었던 재해였을까 하는 현실적인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서 때때로 맞닥뜨리는 ‘사람 사이의 범람’이

불현듯 떠올랐다.

‘보라 저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은 사람들

저 혼자 잘난 체 정의로운 체‘

라는 직설처럼 우리는 각 개인의 거슬리는

욕심이나 욕망 때문에 탐하여 마구 대하여 넘치는

‘범람’ 때문에 서로 상처받고 상처 입히는 갈등 속에 놓이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 다른 ‘범람’의 한 형태인 인간의 과욕은

물질만능주의로 환경파괴를 가져왔고

우리는 그런 결과론적 자연재앙으로 인해 유례없는 코로나 시대‘

펜데믹 쇼크에 멈추어져 있다.


‘마스크를 눌러 쓴 그림자만 서성이고 목마른 영혼들, 기웃기웃

언젠가부터 뜸해지고 코로나 19로 멀어진 사람과 사람 사이가

잡초만 무성해져‘로 함께 공감하며 마스크로 표정을 가린 사람들

속에서 막다른, 소통의 부재가 연이은 나날을 우리는 견디어 가는

중이다.

 

‘숨차게 살면서 자꾸만 멀어져가는 손짓

까마득 잊은 채로 인내하며 가는 나날보다는 우리 모두에게 이 또한 ‘지나간다’ ‘건너간다’라고 

낙관적으로 바꾸어 말하고 싶다.


코로나 블루의 우울함도 서로를 향한 배려와 공감으로 덮어주며 건너가야 하고 지나간다면, 

예측이 다소 불확실한 이 시대, 그 터널의 끝엔 빛이 들고 안개가 걷히지 않겠는가. 살아 불 만한, 

살아갈 만한 세상을 내안에서부터 꿈꿔야 하지 않겠는가.


시인은 꿈꾸는 특권을 가진 자들이다. 불안 속에서 평안을 찾아내고 부조화라는

질료를 오히려 조화로운 것으로 변환시키는 발상을 지니며

부족함과 결핍 속에서 오히려 시의 눈은 푸르고 청정하게 빛날 수도 있다.


당신의 글밭은 시인의 표현과 같이

‘폴폴 나는 흰 나비처럼‘ 분노의 강을 거슬러 가고 있는가.

마지막 보루라고 불릴 정수 같은 순수,

원류(原流)를 향해 시의 물줄기는 ‘범람’하고 있는가.


물음과 돌아봄이 여러 번 파도처럼 겹쳐지며 이명처럼 따라오는 오후,

잔잔한 저 바다의 블루가 그런 막막함조차도

떨치라는 듯 천진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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