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Essay]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빼앗겼다. 생활을, 직장을 만남을 봄을, 푸른 봄 들판을, 꿈을 희망을 미래의 오늘을,
그러나 절망하지 않는다. 그 절망 속에 숨어오는 빛을, 빛의 따뜻함 빛의 어울림 확산, 포용 관용과 자비의 너그러움, 그 신비의 힘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또 한 번 서울의 봄을 경험하고 있다. ‘빼앗긴 들’에 불어오는 훈풍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가 잠시 혼돈(混沌)에 빠지는 사이, 권력의 깃발은 정복군처럼 이 땅을 점령했다. 권력은 곧 법이요 길이요 심판이었다.
권력의 폭압에 눌려 쪽도 쓰지 못하던 야권이 주권자가, 봄볕에 깨어나기 시작했다.
야권후보 단일화로 숨죽이던 희망이 조금씩 현실화되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혹독한 시련 뒤의 각성(覺醒), 죽어도 죽지 않는 절망의 역설, ‘바람보다 먼저 일어서는’ 민초의 역설 아닌가?
온갖 거짓과 모순, 가면의 당당함 뻔뻔스러움, 거짓 정의와 거짓 평화가 장막을 덮어 질식하던 한반도의 겨울, 마침내 서울의 빙하가 풀리고 이성의 봄이 올 것인가?
자유 상식과 양심이 다시 생기를 회복할 것인가?
봄의 들판은 온갖 생명(生命)들이 움트는 터전이다. 들판을 걸어가면 싱그런 풀냄새가 난다.
생명의 향기다. 들풀 냄새 청보리 냄새 온갖 잡풀들의 냄새가 어울려 봄의 생기를 전해준다. 비로소 살아있음의 실감을 느낀다. 붉은 자운영꽃이 어우러진 논둑을 걸으면 어느새 그날 푸르름의 소년이 된다. 쟁기질하던 아버지의 땀방울 냄새, 새참을 이고 오는 어머니의 바람꽃 냄새, 김매던 누나 형들의 한숨까지 전해온다. 들은 조상의 얼이 살아 숨 쉬는 목숨의 끈이자 맥박이었다. 그런 국토의 들을, 송두리째 빼앗긴 암흑의 시대가 있었다.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밧고,/ 푸른 하울 푸른 들이 맛부튼 곳으로,
가름아 가튼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거러만 간다.//(중략)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찐 젓가슴과 가튼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어도보고, 조흔 땀조차 흘리고 십다.//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원문 중에서
이 시는 국권상실의 당대적 현실을 ‘빼앗긴 들’에 의탁하여 굴욕과 절망(絶望)의 비애를 노래했다. 토속적인 시어와 생동감 있는 표현으로 민족혼에 불을 지핀 것이다.
절망에서 희망을 암시한 것은 머지않아 맞이할 광복의 정신적 원동력이 되었다.
국토는 일시적으로 빼앗겼지만 민족의 얼(봄의 들)은 결코 꺾이지 않는다는 강력한 역설의 저항의식이 담겨있는 것이다
보다 넓은 차원에서 보면 ‘빼앗긴 들’은 우리가 겪고 있는 바로 이시대의 고난일 수 있다.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들’은 이농(離農)의 아픔으로, 개발의 대상으로만 부각되었다. 해마다 봄이 오면 들꽃이 피고 곡식이 온통 초록의 물결을 이루었다.
들은 그 자체로 풍요를 가져다주는 생명의 원천이었다. 너그럽게 받아주는 자비의 모성이었다. 그런 터전에 어느 날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서고 햇볕이 들지 않는 높은 담벼락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았다. 급기야 욕망을 극대화하는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정보를 쥔 자들이 선점하고 주민은 굿판의 구경꾼으로 밀려나는 모순과 불평등을 경험했다, 개발만능의 사고, 임기응변식 졸속 정책에다 무리하게 밀어붙인 힘의 반작용이다.
3기 신도시 투기가 부른 소시민의 허탈 분노가 각성을 흔들어 깨워는 기폭제가 되었다. 자연은 인간의 오만을 눈감지 않는다. 하지만 절체절명의 위기가 왔을 때, 치유의 묘약(妙藥)을 동시에 보내준다. 그것은 이성의 각성이며 인간 본연(自性)에 대한 회복의지인 것이다. 우리는 끝없는 탐욕의 유혹을 뿌리칠 용기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빼앗긴 들’은 시대의 고난이다. 깨어있는 이성의 회복(봄)만이 우리가 직면한 이 위기에서 구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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