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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르바나 May 11. 2019

우리는 어떻게 행복할 것인가?

-달라이라마가 던지는 메시지

[부처님 오신날 특집]


  


우리시대의 화두는 무엇인가?

-다시 붓다를 생각한다


우리는 행복한가? 우리가 사는 공동체는 행복으로 가고 있는가?

대답은 유감스럽게도 ‘아니다‘인게 현실이다

빈부의 차가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결핍은 결핍대로 넘치는

풍요는 풍요대로 고통은 증폭되고 있다  

개인이건 이익, 정치집단 할 것 없이 ‘내 것‘에만 몰두 한다

상대적 박탈감에 불만은 누적되고

분노가 분노를 낳는 우리시대의 화두는 무엇인가?-

 

우리시대의 깨어있는 세계적 지성이자 종교지도자

달라이라마에게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또 한 역사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적인’ 붓다를 통해 그가

지향하는 이상향은 어떤 것인지 그려보기로 한다,

(청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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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1]

오늘의 지성에게 던지는 달라이라마의 메시지


우리는 어떻게 행복할 것인가?


우리는 물질적인 조건만으로는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때문에 행복을 성취시켜줄 다른 방법들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종교들은 그 열망을 성취시킬 방법들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종교나 신앙과 상관없이도 우리는 그런 방법들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인간인 우리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활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실제로 현대과학도 육체와 마음의 상호관계를 점점 더 인정해가고 있습니다

마음의 자세가 육체적 건강과 행복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 지를 새롭게 이해해가는 추세입니다 인간이 갖고있는 기능 중에서 자기 뜻대로 행복을 찾고 고통을 극복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인간의 지성입니다 지성은 우리가 고통을 극복하고 행복을 찾도록 도울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 곤란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지성을 사용해서 집을 짓고 곡식을 키웁니다 지성을 통해서 근심과 두려움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지성은 과거를 기억할 수 있는 능력과 미래에 대한 예견을 가능하게 합니다 즉 좋은 일도 하고 나쁜 일도 합니다 우리는 육체적 안락만으로는 불행을 완전히 없앨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지성 때문에 만들어진 불행은 바로 그 지성에 의해서만 없앨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늬 지성을 적절히 이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성의 따뜻하고 열린 마음을 결합시켜야 합니다 우리의 합리성을 자비심, 배려하는 마음, 공유하는 마음과 결합시켜야만 합니다 그런 심성들은 지성을 강력하고 긍정적인 힘으로 변화시킵니다 마음이 더 관대해지고 넓으지먼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마음의 평정을 거의 잃지않게 됩니다 그러면 자신의행복에만 안주하지 않고 남들의 행복도 돌볼 수 있게 됩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우리의 행복과 생존은 남들과의 상호관계나 협력에 의존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긍정적인 감정들이 지성을 인도할 때믄 건설적으로 됩니다 따뜻하고 자비로운 마음은 마음의 평화를 가져오는 기반입니다 그런 기반이 없으면 마음은 항상 불안하고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


분노의 마음은 우리의 내면의 평화를 깨뜨립니다 자비심과 용서와 형제애와 만족감 극기 등은 외부세계의 평화와 내면의 평화의 기반입니다 이런 내면의 좋은 심성들을 강화시켜야만 우리는 영원한 평화를 성숙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정신적 성숙의 의미입니다 나는 그것을 ‘내면의 무장해제‘라고도 표현합니다 실제로 가정이나 직장에서 우리 내면의 무장해제는 인류에게 최우선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달라이라마의 <반야심경>(무우수 불교총서2)에서


달라이라마(텐진 가쵸) 제14대 달라이라마


티베트와 암도 지방에서 1935년 대가족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네 살의 나이에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정치적 지도자인 달라이라마의 환생자로 인정되어 즉위한 제 14대 달라이라마(본명; 텐진 가쵸)는 티베트 본토가 중국공산당에게 무력으로 점령 당한후 1959년 인도로 망명하기 전까지 전통적인 불교교육과정을 모두 마쳤다 망명후 달라이라마는 티베트에 자치권을 줄것을 세계 여론에 호소하는 한편 자비심과 상호이헤에 관한 가르침을 펴면서 세계적으로 존경받고 있다

그는 세계의 여러곳을 방문해 종교간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과학자들 정치가들과 만나 토론해왔으며, 티베트 본토의 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공로로 1989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현재 티베트의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의 달람살라에 거주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초청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정치적 이유로 아직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특집 2] 지성의 눈으로 본 붓다


[붓다는 누구인가? 불교 내부의 눈으로는 산격화에 기울어질 우려가 있다

보다 객관적인 거리에서 지성의 눈으로 바라본 붓다는 누구일까? 자유분방한 조명이 가능하지만 일부 검증되지 않은 사견(私見)이 개입할 여지도 있슴을 밝혀둔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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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가, 붓다

-불광미디어(2016.5.17) 인터뷰(일부 내용생략)

[나와 붓다] 이광수 교수


이광수 교수(부산외대 인도학부)는 역사학자다. 인도 델리대학교 대학원에서 인도 고대사를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 논문을 쉽게 풀어쓰고, 한국 사회 문제를 함께 이야기해서 쓴 책이 2013년에 나온 『슬픈 붓다』다. 그에 따르면 별로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불교 신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타 종교인은 더욱 아니다. 종교인도 아니고, 철학자도 아닌, 역사학자의 눈으로 붓다를 본다.

 

- 싯다르타의 출가 이유를 사문유관四門遊觀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데, 교수님은 이렇게 이해하는 것을 ‘역사에 무지하기 때문’으로 판단한다. 출가 이유가 사문유관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붓다는 인류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분이다. 어느 날 병들고 죽는 모습을 보고 출가했다는 것은 붓다에 대한 모독이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일 뿐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 경전에는 그렇게 기술되어 있다.


“(후대의 불교인들은) 붓다의 애민정신, 인간에 대한 존중, 사회 혁신, 사회적 고민 등의 모습을 굳이 경전에 옮길 필요가 없었다. 싯다르타가 어렸을 적부터 봤던 것은 사람들의 끔찍한 모습이다. 사람이 죽고, 병들고, 이를 누구도 돌보지 않는다. 또 위에서 군림하고, 때리고, 전쟁도 난다. 이런 모든 것들이 괴로운 것이다.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 사료를 볼 때 붓다는 제일 경계했던 것이 ‘제사’다. 제사는 블랙홀이다. 제사는 당시 최고의 의례 행위였다. 제사에 소를 바친다. 소는 제사장인 브라만에게 간다. 누가 바치는가? 평민인 바이샤다. 때문에 평민으로 생산을 담당하는 바이샤 계급들은 괴롭다. 또 바이샤가 내는 세금이 나오지 않으니까 끄샤뜨리야도 괴롭다. 붓다는 제사를 반대했고 브라만을 부정한다. 오죽했으면 평민들에게 ‘소를 뺏기지 말라’고 했겠는가. 소를 뺏기니까 가난해진다고 했다. 붓다는 모든 악의 근원은 가난, 제사, 전쟁 등에서 나오며, 사람이 재물에 대해 명민해야 한다고 했고, 재물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경전의 사문유관은 붓다가 당대 모든 사람들의 괴로움을 보면서, 그때의 마음 상태를 상징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 붓다는 왜 출가했는가?

“당대 사람들이 처해있던 사회, 경제적인 고통의 상황 속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출가했다. 세상을 버리고 출가한다는 것은 유일하게 인도에서 나온다. 당신 인도에서 제사 전통은 이미 1천 년 이상됐다. 이 제사 전통을 반대하는 이들이 주변인(marginal man)들이다. 그런데 이 제사 전통이 워낙 강고해서 깰 수 없었기 때문에 사회 밖에서 궁극을 찾고자 하는 이들이 나타난다. 바로 출가자들이다. 싯다르타는 사람들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 사회 혁명을 하거나, 사회 경제 시스템을 바꾸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당시 출가자들이 대부분 그랬다. 오히려 궁극을 찾고자 했다. 세상의 악의 뿌리, 그것에 문제를 두었다. 궁극이다. 이를 향해 극단적으로 갔던 이들은 삶 자체를 부정해 자살을 택했을 것이다. 온건하면 세상 속에서 제사 전통을 이어가는 브라만으로 간다. 궁극, 고통의 뿌리를 찾는 것이 당시 인도사회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런 흐름이었다. 우리는 세상에 불만이 있으면 세상을 때려 엎으려고 한다. 그런데 인도 사람들은 세상 안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서 세상에 고통이 나타나는데, 그 드러난 고통이 문제가 아니라, 그 고통의 근원을 문제로 본 것이다.”


- 당시 출가 수행자들은 싯다르타가 느꼈던 문제의식을 동일하게 가졌다는 것인가?

“그렇다. 그래서 사성제 중에 고苦, 집集, 멸滅에 대해서는 당시 출가자들이 동일하게 인식했다. 세상이 고통이고, 그것은 욕망이 모여 생기는 것이며,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고자 한 것이다. 붓다가 다른 출가자들과 갈라진 것이 바로 도道다. 세상이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가, 하는 문제의식은 같았지만, 그 해결의 방법을 달리한 것이다. 다른 출가자들이 극단적인 고행이나, 추론 등으로 네 번째 길을 찾으려고 했지만, 붓다는 중도中道, 팔정도의 길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붓다의 진리의 핵심은 중도인 것이다.”


- 붓다의 중도는 무엇인가?

“수행적 의미에서 중도는 극좌적 고행, 카스트에 집착하는 극우적 모습을 버리고, 팔정도로 가는 것이다. 사회적 의미로 볼 때 붓다는 사회 바깥으로 나간 출가자들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사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챙긴다. 자비심인데, 결국 이것이 대승불교로 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의 색깔과 기본 지평이 나타나는 대목이다.”


- 붓다는 무엇을 깨달은 것인가?

“연기緣起다. 모든 것은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 생성하고 소멸하기에 어떤 것이든 혼자 존재할 수 없고, 반드시 원인과 결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 깨달은 자로서 붓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역사적인 장면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붓다의 제자인 아난다가 여성을 승가 안으로 받아들이자고 제안한 장면이다. 여기서 붓다의 뛰어남은 권위의 카리스마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말이 맞네, 하고 아난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당시 인도사회는 강고한 카스트 가운데 출가할 때 종을 데리고 오는 경우도 많았고, 또 수드라 계급도 출가했다. 그런데 여성은 아니었다. 사람의 축에 속하지 않았다. 승가에 여성의 출가를 허락한 것은 혁명적인 것이다.”


-불교에 근본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고 했다. 어떤 의미인가?

“붓다는 ‘나의 길만이 길이다.’라고 하지 않았다. 붓다에게 근본(fundamental)은 있을 수 없다. 기준이 없다. 그저 붓다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각자 알아서 가는 것이다. 붓다는 세상 모든 것은 영원한 것이 없고, 늘 변한다는 것을 인식한 분이다. 세상 밖에 있는 출가자들은 이에 따라 각자 길을 찾으려고 한다. 그런데 세상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를 모른다. 때문에 붓다는 강력한 왕권, 전륜성왕이 형성되어야 브라만에 대항할 수 있다고 봤다. 붓다는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지 못하게 되어야 한다고 했다. 붓다는 사회의 안정과 유지를 위해 왕권을 도와줬다. 국가의 올바른 정립을 바란 것이다. 그래야 브라만으로부터 대중들이 (재물을) 빼앗기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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