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시 산책
내가 어떤 연유로 문학이란 ‘주인 없는 빈집’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는지
내 자신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문학이란 빈집에 거미줄 친 낡은 빈방에 나는 도적처럼 기어들었다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고 방세도 내지 않는 빈방에서 나는 그럭저럭 용케도 살아남았다.
그 시절, 내가 도시로 유학을 와서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 추운 겨울 날, 그녀는 내게 구겨진 편지 한 장을
건네주었다 향기가 나는 편지지에 깨알 같은 글씨가 적혀있었다 자세히 보니 무슨 싯구가 적혀 있었다
사실 그 때 나는 시가 뭔지 알지 못했다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훨씬 나중에 안일이지만
그 싯구는 기욤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 아래서‘라는 시였다 시에 눈뜨는 계기가 되었는지 모른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전문
다분히 이국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신비감마저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퇴폐적인
‘사랑 시’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현실 도피적이고 부정적 이미지가 주조를 이룬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나는 다른 각도에서 이해하고 싶다 단순히 현실도피적인 것을 넘어 새로운 이상향을
모색하는 희망의 노래로 보고 싶은 것이다.
사랑을 초월한 구원(救援)의 이상향
시적 자아는 현실의 고난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나타샤’와 ‘마가리’를 제시 한다 ‘나타샤’는
내(화자)가 지향하는, 흠모하고 사랑해 마지않는 대상이지만 구체적인 연인은 아니다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이상형의 모습일 뿐이다 그녀와 함께 나는 떠나고자 한다
‘마가리’는 강원도 이름 없는 산골 일수 있고, 내가 지향하는 미지의 이상향일 수 있다
현실적 고난과 번뇌를 잠재울 수 있는 곳, 오직 무한한 사랑과 신뢰가 존재하는 그들만의 낙원일
수도 있다 ,
제목의 어휘가 이 시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나’와 ‘나타샤’는 주인공, ‘흰 당나귀’는
주인공과 서로를 이어주는 매개물이다 그들의 관계는 대등한 관계이고
평등과 극진한 사랑을 암시 한다 특히 배경인 ‘흰 눈’과 ‘흰 당나귀’는 순수와 신비감을 더해주는
요소로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시는 세속적인 의미의 사랑을 초월한
구원(救援)의 청원인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