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르바나 Sep 04. 2019

마구 흔들어 깨우는 빗소리, 가을 장마

가을 장마

-기청 (시인 비평가)



때늦은 가을 장마

축 늘어져 헝클어진 대추나무 가지

마구 흔들어 깨우는 빗소리

멈추고 서서


돌아보라! 돌아보아라!!

앞만 보고 달려왔다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허걱대며 가쁜 숨 몰아쉬며

때로 이름 없는

잡초(雜草) 아픈


모가지 짓밟고 뭉개면서

내 목숨 하나

내 피붙이 내 편만 전부라는

그 지독한 무명(無明)의 어둠에 갇혀

텅 빈 허공의

 

충만(充滿)을 알지 못한 채

다람쥐 채바퀴만 굴리며

내가 밟고 올라선

그 자리


누군가의 탄식인 것을

내가 뺏은 물 한 모금

누군가의

목숨인 것을 애써

눈 감고 부정하고 변명하던 위선


때 늦은 가을 장마

그 죽음보다 부끄러운 위선(僞善)을

헛되고 헛된 야누스의 가면(假面)을

부패한 양심의 뼈조각을


축 늘어진 대추나무 흔들어 깨우듯

마구 흔들어 깨우는

영혼의 빗소리.


출전/ 실시간 미발표작


///////// 창과 窓 ////////////



때늦은 후회의 눈물처럼 가을 장마가 대치를 적신다. 

늙은 대추나무, 풍요와 안락의 축 늘어진 대추나무 헝클어진

낮잠을 깨우는듯, 이 시대의 마비된 양심, 무감각 무명의 어리석음을 

깨우려는듯.

참으로 오늘을 탄식한다. 명백한 어둠을 어둠이라 하지 못하고

마땅히 주검 이어야할 시신을 영웅으로 칭송한다.

****

모순에서 모순으로 이어지는 혼란은 모든 기존 가치체계를

무너뜨린다. 급기야 개인의 정체성마저 흔들리고 무너진다.

우주의 시작이요 종말인 카오스의 혼돈 속에서

마치 허깨비처럼 허우적거리는, 몽환(夢幻)의 영화를 보는 듯,

대중은 현실을 현실로 느끼지 못한다.

****

오래된 영화 쿼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가 생각나는 시절.

189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폴란드 작가 헨리크 시엔키에비치가 쓴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로 기독교인들의 사랑과 찬사를 받았다.

베드로는 폭군 네로의핍박과 탄압을 피해 로마를 빠져나오는 길목에서 부활한 

에수를 만난다. 그는 예수의 옷깃을 붙잡고 물었다. “도미네 쿼바디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는 베드로에게 말했다. “네가 십자가를 지지 않기 위해 도망가는 로마로 다시 

한 번 십자가를 지러간다.“ 베드로는 결국 로마로 돌아가 순교의 길을 택한다.

****

우리는 우리의 미래에게 물어본다. “도미네 쿼바디스!!”

매거진의 이전글 서시(序詩)-윤동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