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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빌리 Sep 18. 2021

친절한 민박 Day1-1

바르셀로나에서


  방문을 열고 나오자 같은 층의 분홍과 노란색 방문이 눈에 띈다. 고개를 돌려 내가 나온 방을 보니 여기는 파란색 방문이다. 무채색의 방 내부와는 달리 초록색 대문부터 형형색색의 문을 자랑하는 집이다. 한국의 가정집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색의 조합이다. 이 곳이 스페인이기 때문인지, 일반 가정집이 아닌 민박을 하는 곳이기 때문인지, 단순 주인장의 취향인지는 알 수 없다.  


계단을 한 층 더 올라 옥상으로 향한다. 실외 원형 테이블 앞에 권사범과 다른 한 명이 앉아있다.  옥상에는 별도의 조명이 없고 테이블 위의 촛불만이 전부였기 때문에 간신히 실루엣을 알아볼 수 있는 정도다.  

나를 발견한 권사범이 말을 건넨다. 


“올라왔네요. 어서와요. 스페인에 왔으면 샹그리아 한 잔 해야지.” 


테이블 위에는 소주 댓병 사이즈의 샹그리아와 빵에 햄과 치즈 작은 토마토를 올린 타파스가 놓여져 있다. 권 사범 맞은 편에 앉은 이는 멀리서 봤을 땐 어깨까지 오는 머리로 인해 여자인가 했지만, 가까이서 보니 입주위로 수염이 거뭇거뭇 올라오고 진한 눈썹이 인상적인 나와 비슷해 보이는 연령대의 남자였다. 서로 간단한 묵례를 나누고 나는 서둘러 타파스로 허기를 채우며 그들의 대화의 청자가 됐다. 주 발화자는 긴 머리의 남자였다. 남자는 퇴사한 지 6개월여가 됐다. 일을 많이 시키고 그만큼 성과급을 많이 주기로 유명한 대기업에 다녔고, 퇴사 후 방바닥을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방바닥을 뒹굴다 두 달 전 불쑥 파리행 비행기를 끊고 그 후 유럽여행을 다니고 있다 했다.  


허기가 어느 정도 가시고 입안에 샹그리아의 달콤한 향이 감돌 때 쯤 경계가 풀리며 대화에 함께한다.  


“사표를 진짜로 내다니 쉽지 않은 결정인데 대단하네요.” 


“대단한 일인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 맘때 쯤 일이 너무 많아서 몸도 피폐해져 있었고, 원형탈모까지 왔었거든요. 지쳐 있었던 거죠. 

그러던 어느 날 선배들을 봤는데, 그 사람들 모습이 내일의 나잖아요.  

그 생각이 들자 지쳐서 멍해있던 정신이 번쩍 들고 사표를 내고 있더라고요.” 


“우와 결단에 행동까지 추진력 있으시네.”  

형식적인 감탄사를 내뱉으며 일렁이는 촛불에 비친 남자의 얼굴을 쳐다본다. 한 때 원형탈모까지 올 정도로 소진되어 있었다던 그는 여행의 피로가 비칠지언정 생기있어 보인다.  


“지금 여기 바르셀로나에서 우리가 만나서 함께 달콤한 술을 함께 나눈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어.” 

잔을 채우며 권사범이 말을 잇는다.  


권사범이 신나서 쏟아내는 바르셀로나 예찬과 산발적인 관광정보를 배경음으로 잠깐의 상념에 잠긴다. 늦을 휴가를 떠나기 전 팀장과 회사 선배들의 모습, 일부 라떼 매니아 선배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부서 선배들을 싫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내 내일이라고 까지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파티션으로 구분된 사무실 공간, 창가의 팀장 자리까지 한 파티션을 넘어갈 때까지 대락 3-4년일까? 

과장까지 3년, 차장까지 한 4년, 부장 그리고 팀장 직책까지 10여년이 지난 후 내 미래가 사무실에, 바로 내 눈 앞에 있단 생각이 미치자. 이내 아득하고 가벼운 현기증이 온다.  

달콤한 술이라 더 쉽게 취한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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