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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빌리 Oct 10. 2021

내이름은 덤보

고속도로 위의 코끼리

  앤드류가 동생에게 나를 뺏기지 않기 위해 차창밖으로 나를 내밀었을 때, 에어컨 바람으로 잊고 있었던 한 여름의 뜨거운 공기가 나를 덮었을 때, 이내 연약한 아귀힘이 바람을 이기지 못해 나를 놓쳤을 때, 망설이지 말고 날아올랐어야 했다. 큰 귀를 펄럭이며 이곳을 유려하게 떴어야되는데 한 발 늦은 판단과 꼬마녀석들이 놀랄까 주제넘은 배려가 나를 다른 모습으로 날아오르게 한다.


우우우웅,슈슈슈슈우웅

12차선 고속도로 바닥에 귀를 바짝대고 있으면 끝없는 진동으로 귀가 남아나지 않는다. 내 귀가 유달리 커서이거나 청력이 좋아서라기보단 누구라도 고속도로 바닥에 귀를 대고 있으면 제정신을 유지하긴 힘들 것이다. 물론 제정신인 사람은 고속도로 바닥에 귀를 대고 있을 리가 없겠지만.

나를 차 밖으로 떨어뜨리곤 앤드류와 동생녀석은 많이 슬퍼했을까? 나를 위해 많이 울어주길 바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또한 청승이기도 하다. 꼬마녀석들, 얼굴이 시뻘개져서 목청을 놓아 울었겠지만 이내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나를 잊고 말았겠지. 꼬마들의 기억력은 1분을 넘지 않으니까.

누군가는 왜 날아오를 수 있다면서 고속도로 바닥에 붙어 소음때문에 괴로워하냐 물을 수 있다. 앤드류와 동생녀석의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본분의 역할을 다하며 도로바닥에 떨어지고 두어바퀴 굴러줬다. 구르다 보니 옆차선이었고,  옆차선에 뒤따라오던 차는 순식간에 내 오른쪽귀를 밟고 지나갔다. 그렇다. 삶의 비극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연달아 찾아온다. 이제 내 상황이 조금은 이해됐나?


  어느 가정집 창고 또는 폐품 수거봉지가 내 삶의 마지막 장소일줄 알았는데 고속도로 위라니 예기치 못한 삶의 마지막 장소이다. 오고 가는 차들의 끊임 없는 진동과 그에 뒤따르는 소음과 매연. 꽤나 쾌적하지 않은 마지막이다.

내가 만약 진짜 코끼리였다면 고속도로 한 복판에 있단 걸로만 로컬 뉴스 또는 중앙 뉴스의 오늘의 이슈 정도를 차지했겠지만  20여 인치 크기의 솜인형인 나에겐 어떤 관심도 와닿지 않는다.

수없이 많은 차들과 그 안의 사람들이 무관심하게 스쳐지나갈 뿐


  그저 스쳐지나가는 이들에 대해 다소간의 섭섭함을 표현했지만, 내가 감상에 젖어 하는 푸념일 뿐사실 그들은 고마운 이들이다. 왜냐면 그들은 나를 비켜 지나가줬기 때문이다. 벌써 십여회가 넘게 나를 스쳐, 비켜지나가지 않은 차들에 의해 밟혔다. 처음 몇 번 밟힐 때만 해도 나뒹굴고 튕겨나가보기도 하고 나름의 발악을 했지만, 밟힐수록 면으로 된 피부가 너덜너덜해지고 솜의 반발력도 줄어들어 체념이라도 한 듯 눅진하게 짓이겨질 뿐이다. 귀가 워낙 커서 몸에 붙어있기 힘들어서인지 귀와 머리의 봉제선이 먼저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몇번 안남았음을 직감한다. 앞으로 두어번 제대로 귀 부위를 밟힌다면 나는 이내 분리되어 마지막을 맞을 것이다. 이 멋지고 큰 귀를 끝내 날아오르는데 써보지도 못하고.


  슈우우웅 푸욱 퍽 촥 지지직

지지리 궁상을 그만 떨란 뜻이었을까 내게 남은 횟수는 두어번이 아니라 한번이었다. 달려오는SUV 차량의 왼쪽 앞바퀴에 제대로 밟힌 순간 귓가 봉제선부분부터 찢어지기 시작해 뒤통수 까지 길게 몸이 열린다. 몸이 열린 채 오른 쪽 뒷바퀴를 향해 굴러가며 내 안을 푹신푹신하게 채우던 솜들이 빠져나온다. 솜들이 차량 하부의 와류를 타고 검은색 차량 위로 솟아오른다. 새하얀 솜이 차량을 감싸고, 차 뒷자리에 타고 있던 앤드류 또래의 금발의 여자아기가 창문에 바짝 붙어 말한다. "엄마! 눈이야~~"

앞자리 보조석에 앉아있던 엄마는 딸을 쳐다보며 웃음을 보낸다.

어느 아이에게 한여름의 눈으로 기억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마지막일지도.

귀를 날개 삼아서는 아니지만 어쨋든 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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