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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한 Mar 12. 2020

글이 안써지면 연필을 사자

― 욕망의 근거를 찾아 부유하는 자의 방문기

글이 안써진다고 연필을 산다니, '목수는 연장탓 안한다'지만, 나는 아직 내공이 부족한 탓인지 연필(나의 글쓰기 연장)을 찾을 때가 많다. 


어릴 적부터 편지를 쓰거나, 책을 읽다가 연필로 밑줄을 서걱(종이와 연필이 맞닿으면서 내는 소리) 쳐가면서 눈으로 쫓아 읽는 걸 좋아했다. 그러다보니 기념품샵에서 연필을 즐겨사게됐고, 어딜가든 특이한 문구샵이 있으면 꼭 들르게 됐.


어릴적 지방에 명절되야 오는 서울 할아버지댁에 오면 반드시 가는 필수코스가 광화문 교보문고 핫트랙스였으니, 어릴 적부터 문구류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것 같다.






그렇게 평소 나의 취향을 종종 이야기할 때가 있는데, 나의 취향을 잘 알고 있는 지인으로부터 '오발, 가봤어요? 한번 가봐요'라는 말을 듣고 한참이 지나서야 방문하게 됐다.


제한된 영업시간,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다보니, 일부러 찾아오지 않으면 오기 힘든 비밀스러운 공간에 자리잡고 있었다. (물론 그 점도 내 마음에 들었)


ⓒsohyun yoon


계단을 오르면서도 '여기 맞나...'하는 심정으로 한 발 한 발 내딛었다. 그렇게 올라가다보니 왼편에 자그마한 문이 나를 맞이했고, 나는 그 좁은 문을 밀고 오발에 발을 들였다. 첫 인상은 3초만에 결정된다고들 하지만, 오발에는 예외적인 말인 듯 하다.


ⓒsohyun yoon


큰 창을 통해 비치는 햇살에 곳곳에 비치된 문구류(연필, 노트 뿐 아니라 다양한 오브제들)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문구샵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큐레이션 공간에 가까웠다.


ⓒsohyun yoon


오발은 '디자이너 김수랑이 운영하는 문구점'이다. 각종 필기구와 노트, 도장, 편지지, 우리집 책상 서랍에 있는 친숙한 문구류로 가득 채워져있다. 이곳에서 취급하는 모든 제품들은 김수랑 대표이 직접 선택하여 들여온 것들로, 그의 취향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sohyun yoon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데서 특별함을 느낀다. 여기에 있는 물건들은 처음에 김 대표가 '갖고 싶은 물건을 모아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꾸민 공간은 역시나 멋스러움이 있다. 


ⓒsohyun yoon


실내를 둘러보다가 촤르륵 펼쳐져 있는 연필들을 보다가, '이 연필들은 어떻게 다를까'하는 궁금증에 김 대표에게 물으니, 오발에는 300여 개가 넘는 연필이 있어서 그립감, 굵기, 진한 정도, 등 여러가지를 이야기해주면, 그에 맞는 제품을 추천해줄 수 있다고 답해주었다.


연필을 고르는 데 있어서 이렇게까지 세심한 기준들이 있는줄 몰랐던 나로서는, 좀 더 연필을 공부해가야겠다는 다짐 아닌 다짐을 하게 해줬고, 연필처럼 일상과 밀접한 필기구야말로 좀 더 나 자신이 좋아하는 타입이 무엇인지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도 하게 해주었다.  


ⓒsohyun yoon


오발에 큐레이션된 필기구, 노트, 오브제들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햇살 좋은 날 이곳에 직접 방문해보면 알게 될 것이다. 오발의 커다란 유리 천장으로 비치는 햇살을 머리맡에 두고 잠시 멈춰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햇살을 좀 더 오롯하게 느낄 수 있는 순간들. 잠깐을 멈춰설 수 있게 하는 시간. 이러한 순간까지가 오발이 선사하는 것 아닐까 싶었다.


첫 방문자를 위한 Tip. 가격이 따로 표기되어있지 않아서, 제품을 가져가 물으면 가격을 확인해준다. 가격을 듣고 구입을 결정하면 되기 때문에 크게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되는 편.




연필의 흑심이 종이에 닿을 때의 서걱한 느낌이 좋다. 그리고 연필을 손에 잡으면 왠지 뭐라도 남길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리고 '그것이 마음에 안들더라도 지우면 되지'하고 긴장한 마음을 조금 말랑말랑하게 풀어준다. 연필은 그렇게 내게 가벼운 마음을 먹게 해주면서 동시에 '뭔가 적고 싶어지게끔'해준다.  


무언가 막힐 땐, 잠시 연필을 들고 일단 뭐라도 쓴 다음에 생각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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