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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어.

그림책 <미움>을 읽고.

by 소소러브

근래에 정말 오랜만에 영화를 한 편 보았다.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였다. 힐링 영화로도 불리며 관객수 100만명을 넘게 돌파한 이 영화를 보면 마음에 남는 무수한 대사가 있다. 그 중에서도 엄마로 분한 문소리가 어린 딸아이에게 들려주는 말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딸아이가 엄마에게 “나 왕따 당하는 것 같아”라고 말하자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쿨내 풀풀 풍기며 이렇게 말한다.


“네가 속상해 하거나 화가나서 반응하면 그건 친구들이 바라는 거야. 그러니까 아무렇지 않은 듯 친구들을 대해. 그게 진짜 복수야.”


딸아이는 엄마가 위로도 안 해준다며 눈을 흘기며 서운해 했지만 아마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상대방의 반응에 ‘그대로’ ‘즉각적으로’ ‘똑같이’ 반응하는 것이 절대 문제 해결에 있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온통 까만색으로 가득찬 배경색 위에 단발머리를 한 여자아이가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젓가락을 들고 있다. 목에는 생선 가시가 걸려 있고 ‘꼴도 보기 싫어’라고 씌여 있다. 그림책 ‘미움’의 표지이다. 친구의 ‘너 같은거 꼴도 보기 싫어’ 이 한마디에 주인공은 밥 먹을 때도 잘 때도 놀 때도 온통 그 생각 뿐이다. 친구를 생각하며 나도 똑같이 미워해 주겠다고 다짐한 듯이 무얼 해도 ‘꼴도 보기 싫어’ 하는 생각 뿐이다.

살다보면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에 빠지곤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미움의 대상이 아주 가까운 사이라는 것이다. 부부 사이, 부모 자식 사이, 절친한 친구 사이 꼭 이렇게 소중한 관계에서 ‘미움’이라는 감정의 댓가를 혹독히 치르게 된다. 그런 미움의 감정이 나를 잠식시키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히브리 말로 ‘미워한다’는 말은 글자 그대로 상대방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덜 사랑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말이라는 것은 감정을 정확히 담아내지 못하는 것 일진데 다른 나라 말을 번역할 때는 오죽하랴.

우리는 흔히 ‘네가 미워’라고 말하지만 그 말을 정확히 표현해 본다면 다양한 감정이 혼재함을 알 수 있다.


‘너의 말과 행동 때문에 속상했어.’

‘너랑 놀고 얘기하고 싶은데 너는 안 그런 것 같아서 자존심 상했어.’

‘네가 내 마음을 몰라줘서 무시당하는 것 같아 서운했어.’ 등 말이다.

아마 우리가 흔히 네가 밉다고 표현할 때는 사실은 ‘나는 너를 생각하고, 배려하고, 심지어 여전히 좋아하고 있는데 지금 우리의 상황이, 우리의 상태가 이전만큼 좋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본질은 좋아한다는 것이다. 정말 밉다면 그 사람을 굳이 떠올려서 혼자서 지지고 볶고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밉다고 할 때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는 것. 나에게 미움의 감정을 말로든 표정으로든 행동으로든 표현할 때 상대방의 마음을 한 번 더 읽어주는 것. 그럴 수 있을 때 우리는 다시 상대방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고 다시금 그와 더불어 행복할 수 있다. 감정은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일렁이는 그 무엇 일테지만, 감정에 대한 반응은 결국엔 내가 ‘선택’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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