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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러브 Jan 10. 2024

영화 '노량'-죽음의 바다

영화와 <난중일기>와의 콜라보.

  크리스마스날 남편의 위시리스트 중 하나는 극장에서 ‘노량’을 가족과 함께 보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온 가족이 극장에 가서 본 마지막 영화는 무려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디즈니의 실사판 ‘알라딘’이었다. 평소 로맨틱 코메디를 좋아하는지라 내가 좋아하는 류의 영화는 딱히 아니지만 크리스마스의 정신인 관용을 떠올리며 남편의 제안을 쿨하게 받아들였다.     


  크리스마스 아침 10시 영화인데도 인구 20만이 채 안 되는 소도시의 극장은 빈틈없이 꽉 들어찼다. 개봉한지 5일밖에 되지 않는 올 겨울 기대작이어서 더 그런가보다. ‘노량’은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장군의 전투 3부작 중 마지막 편이다. 명량, 한산을 이어 노량이 그 마지막 대장정이었다. 평소 이순신 장군의 덕후였다고 할만큼 10년간 이순신을 연구하고 사모해온 그는 역사 시리즈로 3부를 구상하여 ‘최종병기 활’ ‘명량’ ‘봉오동 전투’ 이렇게 세 영화를 연작으로 만들었더랬다. 그런데 이순신이라는 사람에 대해 그나마 제대로 알려면 ‘명량’ 한편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순신에 대해 다시 3부작으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사극이나 역사 영화는 고증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순신 장군이 직접 기록하신 ‘난중일기’가 아주 중요한 자료가 되어주었단다. 백범이 자신의 지난날을 자녀들을 위해 회고하여 쓴 <백범일지>와는 달리 <난중일기>는 임진왜란 7년 동안 전쟁 ‘중’에 기록한 생생한 기록이다. 또한 ‘일지’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록물이라면 ‘일기’는 누구에게 보여주거나 공개하기 위한 글이 아닌 개인적인 글이라는 점에서 조금 다르다. 난중일기는 그 역사적 문학적 가치의 탁월함으로 인해 현재 국보로 지정되었고, 여러 출판사에서 한문으로 된 난중일기를 해석하여 출간되었다. 이순신은 1년마다 일기를 편철하여 기록, 보관했는데 200여년이 흐른 후 정조대에 이 기록물의 중요성을 알게 되어 이것을 한 권으로 묶어 ‘난중일기’라는 이름을 붙이고 한권의 책으로 엮어 내었다고 한다.   

   

  이순신만큼 드라마틱한 인물이 있을까.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위대한 인물을 꼽으라면 세종대왕과 이순신을 꼽을 만큼 대중의 지지와 응원을 받는 인물이다. 하지만 당대에는 청렴하고 원칙주의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바람에 그의 할아버지처럼 정치적인 시기와 모략으로 힘든 삶을 살아내야 했다. 명량에서 대승을 거둔 후 왜군이 다시 부산을 침입할 것이란 소문에 선조가 출정을 명했지만 전술상의 이유로 이를 거절했고 이로 인해 한달간 옥살이를 하며 온갖 고초를 겪는다. 왠만해선 일기를 빠지지 않고 쓰는 그였지만 그 한달간은 기록이 없고, 옥살이를 끝내던 날 그는 단 한줄로 자신의 소회를 기록한다.


‘옥문을 나왔다.’     


  무척이나 억울하기도 했겠고 말로는 다할 수 없을 고초 속에서 그는 누구하나 원망과 비난의 서릿발 어린  말 한마디 없이 아주 무미건조하게 단 한 문장으로 자신의 상황을 기술했다. 그는 자신에게는 한없이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했던 대인배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영화에서 보면 명나라의 총사령관 진린과 일본의 총사령관 고니시가 나온다. 이 두사람이 임진왜란에 대해, 그리고 적과의 싸움에 대해 안일하게 대응하고 준비하는 반면, 이순신은 모든 변수를 고려해두고 여러 가지 형태의 전술을 준비한다. 진린은 임진왜란이 이미 이긴 싸움이며 이제 이미 끝난 전쟁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순신은 왜구가 절대 쉽사리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갑작스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왜군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갈 때도 끝까지 그들을 쫒아가 응징했으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들이 언제든 다시 우리나라를 쳐들어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그의 예견은 정확했다.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난중일기 속에 기록된 그의 꿈 이야기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예지몽이 된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는 사실이다. 명량 전투 전날에는 신선이 나타나 이러저러하게 싸우면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고 알려주었고 그대로 했을 때 대승했다. 그날 그는 일기에 ‘천행이었다’라는 말로 자신의 대승을 겸허히 표현했다.  

    

  '모든 것이 자기에게 달린 것처럼 최선을 다하고, 모든 것이 하늘에 달린 것처럼 열렬하게 기도하라' 는 말을 나는 좋아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며 내가 최선을 다 할때는 온 우주가 에너지를 모아 나를 도와준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이순신에 관한 영화를 보며 진정한 리더는 어떠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다. 진정한 리더와 직업인이란 자신에게 주어질 이익과 안락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이 이끄는 구성원들을 진정 사랑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의논하며, 어려운 시기에는 모든 가능성을 염두해 두고 최선의 선택을 내리고 결정을 내린 이후에는 그저 집중해서 해 내는 것이라는 점이다. 조정의 신하들과 임금조차 전쟁 후의 일만을 생각하며 정쟁을 벌이던 중에도, 임진왜란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이 전투에서 잘 마무리를 지어야 다음을 도모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이순신의 지혜가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역사는 반복되고 우리는 역사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도모할 수 있다. 영화로만 끝내기 아쉬워 이순신이 40대 중반부터 50대 초반까지 썼다는 <난중일기>를 읽으며 그의 투철한 직업관과 직업적 윤리의식, 민중을 대하는 그의 마음, 가족에 대한 사랑, 어려움 속에서도 낭만과 삶의 소소한 기쁨을 놓치지 않았던 멋진 이순신이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했다. 역사 속 인물이 아니라 오늘날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생 선배를 만난 든든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어떤 사람으로서 어떤 리더로서, 또 어떠한 팔로워로서 살아야할지 다시금 돌아보고 생각을 재정립할 수 있었던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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