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고 아름다운 ‘솔로나라 16기’를 보고
인간 군상의 총 집합체로구나.
예전에 ‘돌싱글즈’를 추천해 준 친구에게 말했다.
“이제 볼만한게 없어.”
“ 아, 그래? 나는 솔로도 재밌어. 16기도 돌싱글즈 편인데 엄청 재밌어. 한 번 봐봐.”
결혼 후 남편과 함께 취미 생활을 가졌으면 하고 바래왔지만 워낙 성향의 차이가 커서 함께 할만한 활동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코로나 기간에는 사람을 피해 근처에 있는 절을 많이 갔고, 가까운 산으로 등산도 꽤 했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끝나고 남편이 뭔가 더 바빠지면서 주 1회 데이트 같은 활동을 꽤 오래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번은 함께 재미있는 예능을 같이 보기로 합의했다. 남편은 ‘무한도전’같은 예능을 좋아하는데 나는 그렇지가 않다. 예능 취향이 우리는 꽤 많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고 이혼이라는 아픔을 겪으며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으려 하는 돌싱들의 이야기는 출연자의 나이대가 비슷해서인지 결혼이라는 쉽지만은 않은 생활을 경험해보았다는 공통분모 때문인지 우리 같은 보통의 부부에게도 많은 공감이 되었다.
나는 솔로의 컨셉은 여자 총 여섯 명, 남자 총 여섯 명으로 이루어져 각자 가명이 주어진다. 이름도 비슷하게 영숙, 영자, 정숙, 현숙 뭐 이런 식이다. 남자 출연진의 이름도 비슷하기로는 만만치 않다. 영수, 영식, 영철, 상철. 이름을 잘 못 외우는 편이긴 하지만 한 반에 30명의 이름을 외우고 살아서 그런지 총 열 두 명의 이름을 기억하는 일이 나에게는 별스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출연자수가 많으면 이름도 얼굴도 매칭을 잘 못하고 기억을 잘 못하는 남편은 꽤 머리를 써가며(?)이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본다.
경상도에서 20년 이상을 살아온지라 경상도 출신의 출연자가 나오면 그들이 반갑고 그들의 사투리가 유독 재미있다. 나도 사투리를 꽤 오래 쓰며 살았는데 충청도에서 15년 살면서 이제는 사투리가 들리면 귀에서 뭔가 탁탁하고 걸린다. 뭔가 친숙하면서 다른 이물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충청도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경상도 말도 충청도 말도 이제 어느 쪽도 원어민 수준의(?) 구사력이 안 되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독특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사이는 뭐니뭐니 해도 영숙, 상철 커플이었다. 영숙은 대구 출신의 아이가 한명있는 무용과 교수 출신의 돌싱 출연자였다. 그녀는 지적이고 차분한 외모와는 달리 걸출한 경상도 사투리로 남자를 휘어잡았다. 반면 상철은 부산 출신의 시카고에 사는 비행기 회사의 공급망 분석가였다. 누가 보기에도 오타쿠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 남자는 아이 없이 이혼한 돌싱이었고 인형 모으기를 좋아하고 애니매에션 보기를 좋아하는 덕후였다. 한국에서 출연한 다른 출연진들과 달리 지구 반대편 미국에서 먼길을 날아와서 그런지, 커플이 되어 솔로나라를 탈출하려는 욕망이 아주 강한 남자였다. 그런데 그 욕망이 결국 어느 여자의 마음도 사로잡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고야 말 줄이야.
오일간 진행되는 데이트 기간 동안 거의 사일 간을 데이트한 영숙을 두고 그는 영자와의 만남을 타진해 본다. 그녀가 달리기를 잘하는 모습에서 반했다나. 그런 상철을 본 영숙은 속이 터지고, 마지막 선택에서 자신을 선택할거냐고 수십 번 무한재생 하는 상철에게 마지막 날 영숙은 말 그대로 고함을 지른다.
“상철이 이 자슥아! 누가 소설을 뒤에서부터 읽는다 하대. 느그 동네 미국에서는 그리 하드나? 여기는 한국이라고 몇 번 얘기 하노?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상철, 누구보다 상철과 있을 때 웃을 수 있고 행복했다. 내가 내리는 결정이 나만을 위한 결정이 아니라 상철을 위해 많이 고민한 결과라는 것을 알아주길 바래.“
결국 고민 끝에 상철은 영숙을 선택했지만 영숙은 상철을 선택하지 않았다. 물론 영자도 상철을 선택하지 않았다. 상대방에게 무한 정성과 무한신뢰를 주어도 자녀가 있는 상황에서, 거리가 있는 상황에서 게다가 공중파 방송에서 공개된 자리에서 상대방 남자를 내남자로 선택하는 것은 여성 출연자들에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12명의 출연진 사이에서서 본인에게 확인되지 않고 심증으로 여겨진 말들은 연기처럼 퍼져나가고, ‘카더라’ 통신으로 공고해만 보이던 커플은 오해와 불안 속에 와해되어 버린다. 그 와해됨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 누가 도대체 이런 소문을 만들어내었는지 왜 그런 말들을 했는지 뒤늦게 캐묻고 확인하러 다니지만 이미 돌아선 상대편의 마음은 소용이 없다. 어떤 조직에서나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한 조직을 얼마나 쉽사리 그리고 허무하게 무너지게 할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래서 이 프로그램을 인간 군상의 및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다큐 아닌 다큐 같은 프로그램이라고 하나보다.
‘나는 솔로 16기 마지막 편’에서 결국 두 커플이 매칭이 되었다. 실시간 방송으로 본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이 끝난 후 몇 달이 지나서 보았기 때문에 현재 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못내 궁금했다. 그런데 기사를 검색해보니 그 후가 더 놀라웠다. 상철은 영숙과 또 다른 남자 출연진인 영철을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할 것임을 언급했다. 그리고 어렵게 매칭이 된 두 커플은 결국 현커(현재커플)로 남지 못하고 헤어졌단다.
엔딩을 지켜보며 남편과 둘이서 우리는 늙어서도 안 되고 외모가 특출 나지도 않고 직업 마저 평범하니 우리 같은 사람은 '나는 솔로 돌싱글즈편'에 나갈(?) 생각일랑 하덜 말고 그저 열심히 사이좋게 잘 살아보자며 의기투합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