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짜배기 위내시경을 마치고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로 위 내부의 생생하고도 생경한 사진을 보며 의사선생님의 설명을 들었다.
“전형적인 헬리코박터균으로 인한 만성위염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정확한 것은 조직검사 결과를 통해 알 수 있으니 다시 내원하시죠.”
2주간의 기다림 끝에 건강검진결과표가 집에 도착했고 성품도 의술도 뛰어나신 의사선생님 덕분에 헬리코박터균에 의한 만성위염이 확진되었다. 내원하여 치료를 받으라는 안내와 함께말이다.
20대부터 다른 사람에 비해 소화력이 약했다. 한의원에 가면 다른 사람에 비해 위가 작은 편이고 소화력도 약한 편이니 적게 먹으라고 권고했다. 그리고 먹고 난 후에는 4시간의 시간의 텀을 두고 먹으라고 하였다. 말잘듣는 모범생처럼 나는 한의사 선생님 말씀을 잘 따르며 40대 중반까지 살아왔다.
그나마 제 몸 하나 건사하면 되었던 20대와는 달리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은 후 생긴 소중한 아기와 남편을 돌보고 살림을 하면서는 소화력이 더 떨어졌다. 특히 아이를 하루 종일 아기띠에 메고 있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소화가 안 되어서 힘들어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어깨가 뭉치면 소화가 안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물만 먹어도 체해서 뭘 먹기가 겁이 나던 시절이었다. 두 아이는 각각 3년씩 모유를 듬뿍 먹어서 그런지 우량아였다. 키와 몸무게가 상위 90 퍼센트를 넘는 튼실한 아가들이었다. 그런 아기를 아기띠로 하루 종일 메고 있기란, 게다가 아기를 메고 설거지와 청소 등의 집안일을 동시에 해 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가족력도 있었다. 엄마는 우리 삼남매를 키울 때 늘 소화불량을 달고 살았고 소화가 안되서 등을 두드리거나 마사지를 해드려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그걸 통해서 엄마가 소화가 되었다는 표시로 트림을 시원하게 하시면 미션 대 성공이었다. 40대 후반에 위내시경을 처음 하신 엄마도 위에 혹이 하나 있으며 앞으로 지켜보고 커지면 수술을 해야 한다는 소견을 받으셨다. 다행히도 그 혹은 커지지 않았고 엄마가 잘 달래서 데리고 살면 되는 수준으로 안정화되었다. 엄마의 나이 70살이 되도록 말이다.
난소 낭종 수술을 하고 치료를 받으며 휴직기간이 길어졌다. 이 기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다. 왜냐하면 복직의 시간은 저승사자처럼 슬그머니 점점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초등교사로 지내면서 학기 중에 병원에 가는 일이란 증세가 심하지 않고야 쉽지 않은 일이다. 걱정되는 부분은 미리 검사를 받고 치료를 받아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복직하고 싶었다. 그래서 큰 마음을 먹고 40대 중반에 생짜배기 위 내시경을 감행한 것이었다.
병원에 내원하자 친절하고도 젊은 의사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헬리코박터균은 한국인 두명중 한명은 가지고 있는 흔한 균입니다. 그리고 이 균을 가지고 있어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이제껏 알려져 왔지요. 그런데 근래 2-3년간의 연구결과 헬리코박터균으로 인한 만성위염환자는 위암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일반인에 비해 50퍼센트 정도 더 높은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그러니 치료를 해 보시지요.”
치료를 어떻게 하면 되는지 묻자 항생제 여섯 알을 10일간 하루 두 번씩 먹으면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한 달 후에 입으로 부는 검사를 통해 균이 남았는지 제균이 잘 되었는지를 확인한다고 하셨다. 선생님께서는 이 항생제가 다른 약보다 알이 크고 쓴 맛이 강해서, 또 항생제 알러지가 있거나 약으로 인해 설사를 오래 하는 경우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하셨다. 평소 항생제 알러지가 있냐는 질문에 없다고 하니 그렇다면 내성이 생기지 않도록 중간에 약을 쉬지 말고 10일간 지속적으로 꾸준히 먹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가족들과 음식을 매번 덜어 먹어야 하냐고 여쭈니 굳이 그럴 필요까지 없다고 하셨다. 이미 그들도 한국인의 절반의 비율로 균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이 균 자체는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헬리코박터균으로 인해 만성 위염이 이미 진행된 상태이므로 치료를 해야 하지만 말이다. 10분간의 친절한 설명을 뒤로 하고 진료실 문을 닫으며 생각했다.
‘수술도 한 내가 하루 여섯알씩 두 번 삼키는 일이 뭐 그래 대단할까. 선생님이 너무 지레 겁주시는 거 아니야?’ 하고 말이다.
첫날 선생님의 복약 지시대로 약을 잘 먹고 잤다. 그런데 새벽에 소변이 마려워 잠이 깬 건지 약의 쓴맛으로 인해 잠을 깬 건지 위에서 식도와 혀까지 쓴 맛이 올라왔다. 순간 ‘아, 선생님이 말씀하시던 게 바로 이거였구나’ 싶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그 옛날 어른들이 말씀하시던 먹어 본적도 없는 소태 씹은 맛(?)이 입 안에서 났다. 선생님은 치료를 하다가 약을 먹는 일이 너무 힘들어지면 치료를 포기해도 된다고 하셨다. 그런 사람도 꽤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평생 위암에 걸릴 확률은 2-3퍼센트이니 그 중 1퍼센트 정도 확률이 올라가는 정도니 너무 힘들면 억지로 치료할 필요는 없다고 하셨더랬다.
하지만 두 번의 진통과 출산을 견뎌낸 유부녀는 이쯤 고통쯤은 이겨 내야 한다고 마음을 먹는다. 10일간의 약을 먹고도 90프로가 완치된다는데 그 90퍼센트 안에 들어가길 매일 기도하는 마음으로, 또 병이 발견된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약을 꿀떡 삼키기로 결심했다. 향후 문제를 일으킬지도 모르는 말썽쟁이 균 따위와 앞으로 60년을 더 살고 싶지 않다는 심산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