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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러브 Feb 23. 2024

일상으로의 초대

좋은 노래 한 곡을 들으면 시간 여행을 한 기분이 든다. 때론 공간 이동을 한 것만 같기도 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고 그저 침대 안에서 하루종일 있고 싶은 무기력한 날,  김광석의 '일어나' 노래를 들으면 진짜 이젠 일어나서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노래 한곡이 주는 힘은 생각보다 크다.


얼마 전 '비긴 어게인'에서 배우 지현우가 신해철의 '일상으로의 초대'라는 곡을 부르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풋풋한 소년미가 넘치던 배우였는데 군대를 다녀오고 나이가 드니 꽤 깊이 있는 감성과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내가 느끼기에 대부분의 배우들은 노래를 잘 한다. 일단 감정 이입을 잘 하니 노래의 감성이 풍부하고 발음이 좋으니 가사 전달력이 좋으며, 복식호흡으로 단련된 그들의 발성법은 누구보다 노래에 최적화 되어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때로는 원곡의 가수가 부를 때보다 더 진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도깨비'의 히로인 김고은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어보았다면 분명 내 말에 공감할 것이다. 그녀는 가요를 잘 부를 뿐더러 팝송도 외국인처럼 자연스럽게 부른다. 그것도 마치 그 노래가 원래 자기 노래였던 것처럼 말이다. 때때로 생각한다. 한 가지를 아주 깊이있게 잘 하는 사람은 재능이 있는 걸까 아니면 자신이 가진 '태도'가 무언가의 정점에 닿게 하는 걸까 하고 말이다. 어쨌든 다재 다능한 사람을 보면 그저 부럽다. 그리곤 스스로 생각한다. 나에게 있는 재능은 무엇일까. 나는 그 재능을 바탕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 하고 말이다.


30년을 미용사로 살아오신 둘째 형님은 50대가 시작되던 해였던가 돌연 미용실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곤 식당을 열었다. 그때 한참 예능 프로그램인 '윤식당'이 유행했는데 그걸 보면서 모티브를 얻으셨는지 자신의 성을 붙여 0식당이라고 이름도 지었다. 평소 유머러스하고 화통한 형님다운 발상이다.


미용사 일을 하면서도 홀로 되신 친정 아버지 반찬은 주로 형님이 담당하셨고, 때때로 만든 음식들을 동네 친한 지인들과 미용실 단골 고객들에게 나누어 주길 형님은 참 좋아했더랬다. 간단한 반찬도 형님의 손을 거치면 참 맛있고 정갈한 음식으로 변해 있었다. 미용사들은 손으로 하는 일에 특화되어 있고 기본적으로 센스가 있기 때문에 요리에도 꽤 재능이 있다는 것을 또 다른 미용사인 교회 자매님을 보고 알게 되었다. 그분은 무려 전라도 출신이었다. 전라도의 손맛은 그저 황홀했다.


비가 오는 저녁, 차분한 마음으로 오랜만에 신해철의 노래를 들어본다. 무려 26년 전의 노래라지만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가 않고 오히려 세련되다. 그의 당당하고 아름다웠던 삶을 추모하며, 에세이의 한 구절만큼이나 솔직하고 마음에 와 닿는 한 편의 시와 같은 가사를 음미해 본다.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고

책을 보고

생각에 잠길 때


요즘엔 뭔가 텅 빈 것 같아

지금의 난 누군가 필요한 것 같아



친굴 만나고

전화를 하고

밤새도록 깨어있을 때도

문득 자꾸만 네가 생각나

모든 시간 모든 곳에서 난 널 느껴


내게로 와 줘

내 생활 속으로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게 새로울거야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게 달라질거야


<중략>


해가 저물면

둘이 나란히

지친 몸을

서로에 기대며

그 날의 일과 주변일들을 얘기하다

조용히 잠들고 싶어


by 신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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