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설이 끝났는데 왜 난 떡국이 먹고싶을까.
내가 향수병을 달래는 방법
이상하다. 설연휴가 끝나자 마자 명절 때 미처 먹지 못한 명절 음식이 먹고 싶다. 신정에는 먹었지만 구정에는 먹지 못한 떡국과, 동그랑땡, 맛살과 단무지를 넣어 납작하게 부친 전이 먹고 싶다. 명절마다 시댁에는 가지만 친정에는 가지 못한 내 마음 속 알 수 없는 향수병이 또 도진게다.
명절에 시댁을 먼저 가고 친정을 뒤에가는 암묵적인 룰은 도대체 언제부터 생긴걸까. 나같은 저질체력에게는 이미 시댁에서 명절을 지내고 나면 친정에 내려갈 힘이 부친다. 명절 당일 차례를 마치고 나면 이미 차가 막힐 시간이며 그 시간에 충청도에서 경상도로 출발해봤자 도로에서 기본으로 왕복 10시간은 보내야 한다. 그렇게 시댁식구들만 만나고 친정식구들을 만나지 못하는 명절이 길어지면서 명절이 다가오면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이유없이 눈물이 나는 증상이 매년 반복되어왔다.
음식으로 향수를 달래볼까 하고 시장에 있는 전 집을 여러군데 둘러보았지만 집에서 만든 음식과는 무언가 다른 느낌이다. 한 개에 천원하는 전에서 알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나를 위해 만든 정성어린 음식이 아니라 개 당 얼마에 이름 붙여진 아이들을 보며 저걸로는 내 심리적 허기를 달래긴 무리겠구나 싶었다. 괜찮다. 이제 주부 15년차에 이 정도 음식이면 내 손으로 뚝딱 만들수 있다. 대신 체력의 한계상 하루에 한가지씩만 만들어 먹는 걸로.
오늘은 떡국이다. 어떤 쇠고기도 괜찮지만 양지로 하면 더 맛있다. 신선한 고기는 핏물을 빼지 않아도 맛있다지만 부지런하지 못한 주부인 나는 냉장고에서 며칠 밤을 지샌 쇠고기를 꺼내 30분에서 한시간 정도 찬 물에 담가 핏물을 뺀다. 핏물을 빼내야 깔끔한 국물 맛을 얻을 수 있다.
떡국 떡도 미리 불려 둔다. 적어도 30분에서 한시간 정도는 불려 두어야 보들보들 야들야들한 떡국과 만날 수 있다. 마트에서 파는 공장에서 나온 떡국보다는 떡집에서 갓 나온 떡으로 해야 부드럽다는 꿀팁도 더한다. 가래떡은 어느정도 말린 음식이기 때문에 오래 말린 것일수록 아무리 불리고 끓여도 갓나온 떡의 보드라움이 나올 수는 없더라. 요리의 50퍼센트는 재료 선정에서 시작됨을 주부 15년 차쯤에야 터득해 간다.
미리 불려둔 떡은 물기를 빼 내고 국간장이나 까나리 액젓 한 숟가락을 넣어 버무려 둔다. 국물의 간은 맞지만 떡은 심심한 떡국을 많이 먹어보았을 것이다. 음식은 뭐든지 밑간이 잘 베면 기본적으로 맛있다. 자. 이제 웬만한 준비는 끝났다. 냄비에 적당량의 물을 넣고 쇠고기도 같이 넣어 센불에 팔팔 끓인다. 물이 끓으면 중불로 불을 줄여 20분 정도 더 끓여준다. 거품처럼 올라오는 것들은 불순물이라 걷어내어주면 더 깔끔한 맛의 국물을 즐길 수 있다.
육수가 준비되면 아까 밑간을 해둔 떡을 넣고 떡이 떠오를 때까지 끓인다. 그런 후 간마늘 작은 한스푼을 넣고 파와 후추 톡톡해서 마무리 한다.
항상 떡국을 끓일 때마다 어느정도 양을 해야 할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근래에 밥그릇에 떡을 깎아 담으면 그게 바로 1인분임을 알게 되었다. 무게로 치자면 150그램이다. 앞으로는 떡국으로 손님 치레를 하게 될 때 이 계량법을 평생 우려먹을 작정이다.
쇠고기를 넣어도, 새우를 넣어도 맛있는 떡국. 물론 이 두 개 다 같이 넣으면 얼마나 맛있게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멸치 다시마로 육수를 빼고 끓인 떡국도 꽤 먹을만 하다. 계란 지단을 부쳐 얇게 썰고 김가루 까지 얹어주면 화룡점정, 요리 끝이다.
떡국 한 그릇으로 새해 기분도 내고, 나이 한 살도 더 먹고 새롭게 시작되는 음력 한 해를 어떻게 더 잘 살아볼지 궁리도 해 가며 온 가족 오손도손 둘러앉아 나누어 먹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