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덕질의 원천은 어디에서 왔는가.
아빠 vs 엄마
BTS에 빠져 지낸 2년을 뒤로하고 아이는 또다시 NCT의 광팬이 되었다. BTS의 멤버들이 흔히 말하는 군백기를 가지게 되면서 팀으로 활동을 꽤 오랫동안 쉬는 동안 딸아이도 휴덕을 하게 되었다. 그리곤 새로운 오빠들이 어느새 소녀의 마음에 살포시 들어온 것이었다.
어느날 딸아이가 물었다.
“엄마, 내가 이렇게 덕질을 하는거는 엄마 아니면 아빠한테서 온거같은데... 엄마는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야?”
“엄마? 음...엄마는 성시경을 좋아하지.”
그렇다. 내가 음식을 만들때나 빨래를 널 때, 집안 구석 구석 먼지를 닦을 때 거실 오디오에는 거의 예외없이 성시경의 CD가 오디오에서 바쁘게 돌아간다. 딸아이의 질문에 내가 도대체 언제부터 성시경을 좋아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성시경이 데뷔한지도 무려 25주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나는 그의 1집에 있는 곡 ‘내게 오는 길’부 터 그의 음악을 사랑해왔다. 성시경은 쉽지 않은 노래를 너무도 편안하게 그것도 독보적인 미성으로 부른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의 노래가 참으로 쉽게만 들린다. 하지만 직접 불러보면 성시경의 노래만큼 어려운 노래도 없다. 그는 노래의 음역대가 넓으면서도 감성의 풍부함, 가사 전달력 등 어느 하나 뒤지지 않는다. 나는 성시경이 영미권에 태어났다면 유례없는 세계적인 팝가수가 되었을 거라 자신한다.
그런 성시경 역시 여느 가수들과 마찬가지로 코로나로 인해 불가피하게 가수로서의 활동을 꽤 오래 쉬어야만 했다. 그 오랜 시간 후에 그는 조금은 새로운 행보를 시작했다. ‘성식영’이라는 이름으로 유튜브를 시작한 것이다. 그의 유튜브는 콘텐츠가 다양한 편인데 ‘먹을텐데’가 조회수도 높고 꽤 인상 깊었다. 그는 평소 미식가와 대식가로 알려져 있다. 자신이 평소 자주 다니는 맛집을 매니저와 카메라맨 두명만 대동하고 가서 혼자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담는다. 그의 성격답게 오버하는 멘트 따윈 전혀 없다. 그저 맛의 깊이와 고유함이 표정과 미간에서 드러날 뿐이다. 가끔 “야~~”하는 추임새는 ‘아 진짜 저 집은 맛집이구나’하는 확신을 더해준다.
그는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서 요리를 잘 하는 남자이다.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더니 그 맛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내본다. 그의 요리법과 레시피를 따라하면 꽤 근사한 요리가 나온다. 그는 요리의 기본을 잘 알고 있었고 재료 손질법도 능숙했다. 한해 두해 요리를 한 솜씨가 아니었다. 특히 떡볶이를 할때는 떡을 한번 데쳐 말랑말랑하게 만들고 데칠 때 소금과 설탕을 넣어서 밑간을 빨아들이도록 한다는 꿀팁은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방법이었다. 그의 설명과 레시피를 천천히 따라하다보면 맛은 물론이거니와 꽤 다양한 음식을 고급진 방법으로 즐길수 있었다. 성시경의 음악 팬들이 성시경의 레시피 팬으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코로나로 인해 음악활동을 그저 중단하고 있는 대신 그는 다양한 방식의 시도를 했다. 세션맨들이 각자 자신의 파트를 녹음해서 보내주면 그 악기들에 자신의 목소리를 얹어 노래를 부르는 새로운 방식이었다. 자신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지만 90년대에 함께 활동하던 가수들과 듀엣곡을 부르기도 하고 잊혀진 옛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리곤 연말에는 그 대선배들과 함께 콘서트 무대에 함께 올라 멋진 무대를 선사하기도 했더랬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성시경의 ‘Winter wonderland ’앨범을 거실 오디오에 틀어둔다. 이 CD 하나만 있으면 크리스마스 기분을 흠뻑 느낄수 있다. 중고등학교 때 시향 학생 오케스트라에서 수석 바이올리니스트를 했고 지금은 직장인 오케스트라에서 여전히 수석 바이올리니스트를 하고 있는 내 친구 현지가 강추해 준 음반이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MP3와 오디오는 소리의 파동이 다르기 때문에 음악의 느낌도 소리도 다르단다. 실제로 핸드폰의 유튜브 뮤직으로 듣는 그의 음악과 오디오로 듣는 그의 음악은 느낌이 꽤 많이 다르다. 오디로로 듣는 편이 훨씬 소리가 풍부하면서도 섬세하다.
성시경은 지금도 일본어 노래를 보다 잘 부르기 위해 매일 두시간씩 일본어 공부를 한다. 노래의 절반은 가사이기에 그 나라 말을 제대로 알아야 그 감정을 잘 살려 듣는 사람이 편안하게 음미하며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평소 친분이 있거나 좋아하는 사람을 게스트로 모시고 인터뷰하는 ‘만날텐데’라는 새로운 콘텐츠도 진행 중이다.
그를 보며 생각한다. 그는 완성형 가수인가 노력형 가수인가. 1집 내게 오는 길을 부를 때부터 지금과 별반 차이가 없는 음색, 완성도를 생각하면 그는 분명 타고난 가수이다. 하지만 25년간 발라드의 황제의 타이틀을 놓지 않으면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고 시도하는 그를 보면 그저 아티스트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기획자이자 크리에이터의 모습이기도 하다.
오늘도 나는 하루의 고단함을 성시경의 콘텐츠를 소비하며 씻어낸다. 때로는 지금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세련된 성시경의 오래된 옛 노래들이며 때로는 ‘만날텐데’이다. 그의 최근 인터뷰영상을 보며 정우성이 주연한 영화 ‘서울의 봄’이 보고 싶어졌다.
그를 보며 나의 삶의 행보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교직에 있으면서 크리에이터로서 사는 삶은 얼마나 다채로울까. 대신 삶이 글이 되도록 좋은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일 것이다. 오늘도 크리에이터적인 발상과 마인드를 가져보기 위해 성시경이라는 아티스트이자 선배 크리에이터를 좀 더 탐구해야 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딸아이의 덕질은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 맞지 싶다.
*군백기: 입대로 인한 공백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