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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러브 Mar 20. 2024

마흔, 친구를 만나다.

방학이 끝나기 전 어느날 친구 씨에게 전화가 왔다. 아침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나 개학 전에 니 얼굴 보러 가고 싶은데 시간 돼?"

때마침 아침 운동을 나가던 터라 함께 산책하며 얼굴이라도 볼까 싶어 좋다고 하였다. 뚜벅이인 나를 위해 언제나 집앞에서 보자고 하는 그녀는 내사랑 선생이다. 우리는 내가 마지막으로 근무하던 학교에서 동학년 교사로 만났다. 나는 2학년 담임이었고, 그녀는 사서 교사로 1년간 함께 근무하게 되어 우리학년에 소속되었더랬다. 학번이 같다는 이유로 우리는 서로에게 금새 끌렸다. 어디 학번만 같다고 끌렸을까. 우리는 서로에게 그저 끌렸던 것 같다.


작년 초 그녀에게 오는 전화를 못받은 적이 있었더랬다. 나도 수술 후 치료중이라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어 전화가 온지 무려 2달이 지나서야 콜백을 했다.


"안부전화 한 거지? 별일 없이 잘 지내지?"

"나 수술했어."

"응?? 뭐라고?"

"나 배가 너무 아파서 응급실 갔다가 정밀검사하래서 했는데 대장암이었더라고. 대장암 2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실비 청구하러 2년만에 그 병원 갔다가 그 소식을 안거 있지. 왜 병원 전화 안받았냐고 하시더라. 나야 스팸 전화인줄만 알았지. 수술은 잘 끝났고, 다행히 항암치료는 안해도 된대서 학교 쉬면서 잘 지내고 있어."


세상에나. 결혼해서 두 아이를 키우는 나와 달리, 미혼에 아직 부모님 밑에서 사는데다가 평소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 쿨한 성격이라 건강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 줄로만 알았다. 늘 나에 비해 에너지가 넘쳤고 건강했기 때문이다. 마흔이라는 나이는 미혼이자 비혼인 그녀에게도 예외일 수는 없었나보다.



그녀의 소식을 듣고도 치료를 받느라 누군가를 만날 엄두를 여전히 내지 못했는데, 올해 새롭게 일을 다시 시작하려고 개학 전에 내 얼굴을 보러 오겠다던 그녀였다. 매일의 루틴으로  는 시골길을 우리는 함께 걸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통통했던 모습은 오간데 없이 살이 쫙 빠져 있었다. 무려 7킬로가 빠졌다고 했다.


"수술 하느라 힘들어서 살이 많이 빠진거야?"

"아니, 3년 전부터 입맛이 없고 밥을 이전보다 반정도 밖에 못먹겠드라고. 그게 병의 증상인지 몰랐네. 나이드니 입맛없어 절로 다이어트 시켜준다고 좋아했지 뭐야. 지나고 보니 그게 암의 신호였더라고."


여전히 쿨한 그녀는 덤덤하게, 자신의 일이 아닌 그저 남의 일처럼 읊조렸다. 그래도 이렇게 다시 건강해진 모습으로 3개월 전에는 무려 쌍수까지?! 하고 온 그녀를 보며 나는 그저 너무 반갑고 좋았다. 물론 마음 한켠은 아팠지만 말이다.


100세 시대를 생각하면 이제 마흔은 청춘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실제 내가 느끼는, 주변 사람들을 통해 느끼는 마흔은 어쩔 수 없이 꺾이는 나이다. 체력도 꺾이고 건강도 꺾인다. 기억력도 예전같지 않으며 에너지도 그전같지 않다고 느낀다. 이 시기를 잘 보내야 남은 중년기와 노년기를 잘 보낼 것임을 직감으로 알게 되는 시기이기도 다.


오늘  기간제 교사 면접을 보고 왔다는 그녀의 말에, 아이들을 좋아하는 그녀가 올해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기를 마음속 깊이 나직하게 기도하게 된다. 그녀도 나도 올 한해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 그전의 싱그러운 모습을 다시 맛볼 수 있을까. 중년의 물음표이자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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