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직장에서의 내 별명은 ‘웰빙’이었다. 퇴근을 하면 요가, 재저사이즈, 방송댄스 등의 운동을 배워가는 것을 갱신해가며 주 2-3회는 꾸준히 운동을 다녔고 직장을 다니며 대학원에도 진학하여 석사 학위도 받았다. 1교시 끝나고 10분 사이에 잠깐의 티타임때 나와 비슷한 또래의 선생님들은 종종 아침을 못먹고 왔다며 컵라면을 먹었지만, 자취를 해도 매일 아침을 챙겨 먹고 오는 나는 다른 사람이 먹는다는 이유로 배고프지 않는데도 간식을 먹거나 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시절의 나는 ‘well-being'이었다.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는 운동을 위한 시간을 내기가 참 쉽지 않았다. 그래도 잠들기전 10분 정도의 스트레칭과 아이가 어느 정도 커서는 낮잠 시간에 1시간 정도의 산책은 꾸준히 이어 나갔더랬다.
문제는 둘째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부터였다. 아이 한 명을 키우는 것과 아이 두명을 키우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원래는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먹던 나였는데, 둘째를 낳아 키우면서부터는 시간이 없어 아침을 거르기 일쑤였다. 언젠가 같은 아파트에 살던 언니들이 밥 한번 같이 먹자며 밥을 사주셨는데, 두 분다 하루에 두끼만 먹는다길래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너도 둘째 낳아 봐라. 그 때가 되면 우리 마음을 알거다.”라고 말했다. 둘째를 낳아 키우면서 왜 그 언니들이 그 말을 했는지 몸으로 알게 되었다. 도대체 그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얼만큼의 부지런함과 정성으로 우리를 낳아 키웠는지 대단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운동은 생각하지도 못한채로 결혼 후 16년이 흘렀다. 내가 예상하는 휴직 기간의 데드라인이 다가올수록 도저히 이런 저질체력으로는 안되겠다 싶었다. 친구가 필라테스를 하고 난 이후부터는 코어 근육을 단련해서 그런지 화장실을 가지 않아도 두시간은 거뜬하며 때로는 세 시간도 가능하다는 말에 바로 ‘이거다!’ 싶었다.
때마침 자주 들르지도 않는 맘카페에서 우리집 근처의 필라테스 학원에서 이벤트 수강생을 선착순으로 모집한다는 공지를 보았다. 7대 1 기구 필라테스 수강권을 7주에 25만원 정도에 끊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전화를 해서 문의해보니 수강 전에는 원데이 클레스를 한 두 번 정도 해서 기구 위에서 운동하는 법을 간단히 배워서 7대 1 수업에 들어가야 잘 따라올 수 있다는 안내를 덧붙이셨다. 기구 필라테스라는 운동은 나에게 너무 생소한데다가 오랜만에 운동을 다시 시작하다보니 꾸준히 운동 나갈 자신이 아직은 없어 선착순이 소진 될 듯하면 미리 전화를 주십사 하고 전화번호를 남겼더랬다.
며칠 전 필라테스 학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이번 주 목요일이 이벤트가 끝나는 날이니 수강 생각이 있으면 주 2회로 11시 반으로 등록하라는 내용이었다. 좋다. 벌써 개학이 다가오고 있으니 개학 전에 1대 1 수업을 두 번 정도 들으면 개학 후에는 7대 일 수업에 투입될 수 있을 것 같았다 .
지금 사는 아파트에 무려 9년을 살았는데 걸어서 10분 정도에 그렇게 깔끔한 필라테스 학원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도 신기했다. 그렇다. 두 아이 키우며 직장 다니며, 퇴근하면 아이들 씻기고 밥해먹이고 나면 그저 나도 모르게 쓰러져 자는데 그런 걸 둘러 볼 몸과 마음의 여유가 어디 있었으랴. 하지만 이렇게 좋은 기회에 요가와 필라테스를 함께 하는 학원을 알아두었으니 복직 후에도 체력만 된다면 계속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20대 중반 정도의 회색 레깅스를 입은 선생님과의 수업은 즐거웠다. 내 몸과 근육에 오롯이 집중해 보는 시간이 도대체 얼마만인가. 윗배, 중간배, 아랫배에 힘을 주어서 내 몸을 밀어 올리고 기구를 밀어 내는 등의 동작을 하며 내 몸에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은 힐링 그 자체였다.
<느리게 나이드는 습관>의 정희원 선생님은 나이가 들수록 근력과 유연성이 중요하므로 근력운동과 스트레칭을 할 수 있는 요가나 필라테스를 전문가에게 배울 것을 권고하셨다. 나이가 들수록 매 해 1퍼센트 정도의 근육이 빠지는데 근력이 없으면 나이가 들수록 체력이 떨어지고 결국 낙상 등의 사고로 누워서 지내게 되는 경우가 많이 생기게 된다고 말이다. 게다가 누워서 지내게 되면 무려 하루에 1퍼센트의 근육이 빠진다는 것이다. 늘 걸을 수 있는 몸의 상태를 유지하라고, 자신의 몸에 맞게 가능한 많이 걸으라는 말씀도 빼놓지 않으셨더랬다. 근육은 연금과도 같은 것이며 건강한 몸을 가지게 되면 나중에 간병인을 쓰지 않아도 되니 산술적으로 수십억을 아끼는 것과 같은 효과라고 말이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필라테스를 추천해주었던 친구 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지야, 나 오늘 1대 1 필라테스 수업하고 돌아오는 길이야.”
“아 진짜? 진짜 기분 좋지?”
“응, 너무 좋아. 진짜 힐링되더라.”
이 기분을 그대로 유지해서 적어도 복직 전 반 년간은 꾸준히 이 운동을 배우고 익혀볼 생각이다. 벌써 필라테스를 시작한지 2주 정도가 되었다. 몸으로 배우는 데에는 남보다 늦는 데다가, 시간이 있을 때 제대로 배워두고 싶어서 할인권 대신 1대 1로 등록해 주 3회 코스로 나가고 있다. 내 몸의 상태에 따라 진도를 맞춰 배우니 더욱 좋다.
"좋았어요!"
"자알~~ 했어요"
"바로 그거에요!"
"좋은데요?"
선생님의 피드백을 들으며 결혼 후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다정하고 적절하게 피드백을 해 준 이가 또 있었던가 생각하게 된다. 아마 어릴 때 부모님으로부터 이후로는 없었던 것 같다.
늘 자녀들에게, 주변이들에게, 학생들에게 좋은 피드백을 주려고 노력했지 내가 그런 피드백을 필요로 하고 갈망했는지 미처 몰랐다. 나보다 스무살 쯤은 어려 보이는 다정하고 예쁜 필라테스 선생님을 보며, 나 역시 이런 친절하고 적절한 피드백을 해 주는 따사로운 교사가 되고싶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된다. 여러 모로 좋아진 이 운동을 하러 오늘도 나는 운동화 끈을 질끈 매고 집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