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소러브 Mar 27. 2024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

고백하건데 요리하는 남자를 좋아한다. 요리를 직접 하는 남자도 멋지지만 요리 자체에 관심이 있는 남자이기만 해도 꽤 매력적이다. 먹을 줄만 아는 남자는 별로다. 우리 집에는 요리에 관심이 있는 남자 한 명과 요리에 관심이 1도 없는 남자가 각각 한명씩 살고 있다. 나이든 남자는 요리에 관심이 없고 어린 남자는 요리에 관심이 많다. 이것은 때때로 나를 어렵고도 힘들게 한다.     


일단 요리에 관심이 많은 어린 남자는 시시때때로 

“엄마, 오늘 빵 만들자"

"엄마, 오늘 쿠키 만들자"

"엄마! 오늘 저녁 메뉴는 뭐야?"

    

하고 틈나는 대로 요리와 관련된 질문을 하고 요리할 궁리를 한다. 물론 이 어린남자가 요리를 하기 위해서는 베이킹 할 재료들을 찾아주어야 하고 뒷정리를 도와주어야 하는 일들이 따른다. 요리를 좋아하는 남자는 아직 혼자 요리하기에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조리 도구들과 재료들이 어디에 들어앉아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리에 관심이 1도 없는 남자는 더 문제다. 이 남자는 요리 재료와 도구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할뿐더러 요리라는 세계에 관심조차 없다. 자신이 요리할 일 따위야 현생에서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 남자는 무려 대학 4년간 자취한 이력이 있다. 나는 이 남자가 그 기간동안 죽지 않고 살아 있는게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남자는 밥을 지을 줄 모른다. 사실 요리의 가장 기본은 밥짓기 아니던가. 육아휴직 기간동안 문화센터에서 요리강좌를 등록해서 잠깐 배운 적이 있었더랬다. 서울에서 친히 충남 변방의 작은 소도시에 적어도 왕복 3-4시간은 걸려 요리를 가르쳐 주러 오시던 선생님은 항상 오늘의 요리를 시작하기 전에 한 명의 자원자를 받아 밥을 짓게 했다. 그리고 그 날의 요리를 완성하여 밥과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거나 자신이 만든 음식을 싸가도록 했다. 요리를 배운 날은 집에 가서 따로 요리를 하지 않아도 되어서 너무 좋았다. 그리고 함께 요리를 배우는 동기들과 밥을 나누어 먹는 따뜻한 분위기도 참 좋았더랬다. 그렇다. 요리란 단순히 부엌 노동 이상의 무언가인 것이다.     


나는 나에게 음식을 차려 주는 사람에게 단박에 마음을 열게 된다. 이건 비단 나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닐 것이다. 음식을 만든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요 사랑이다. 마음을 나누는 데에, 내 마음을 전하는데에 정성어린 음식만한 것은 없다. 그래서 나는 매일 삼시세끼를 차려내는 순간이 곤혹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 시간만큼은 정성과 창의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려고 노력한다. 백마디 말보다 내 밥상을 건네 받는 사람은 내 마음을 본능적으로, 감각적으로 알아차릴 테니까 말이다.      


남편이 요리에 관심을 가져보도록 하기 위해 문화센터에서 한시적으로 열었던 ‘남자 요리 클래스’ 같은 류의 강좌에 등록을 시켜본적도 있었더랬다. 남편은 호기롭게 남색 스트라이프 앞치마를 사더니, 두 번의 강의 참석 이후로는 더는 어렵겠다며 난색을 표했다. 자기가 매주 새로운 요리를 배워서 해줄테니 그 강의를 들으러 가지 않으면 안되겠냐고 말이다. 그곳에는 온갖 60대 아저씨들밖에 없으며 자기같은 젊은이는 하나도 없으며, 자신이 인터넷을 보고 더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런 호언 장담에 넘어가는 게 아니었다. 남편은 나를 꾀어낸 다음 강의도 가지 않았을뿐더러 주 1회의 요리도 해주지 않았다. 한편으론 마음 속에서 서운함과 알 수 없는 화가 조금 차올랐다. 하지만 하라는 대로 다 하면 그게 사람이냐.’ 고 말씀하시던 어른들 말씀을 생각하며 감정을 주워삼켰더랬다.      


된장국에 고춧가루나 고추장을 조금 넣어보면 맛이 달라진다는 것을 아는 남자는 나에게 여전히 멋있다. 우리 아빠가 그런 남자였기 때문인지도 르겠다. 아빠는 음식의 맛, 음악과 미술의 맛, 문학의 맛을 아는 남자였다. 그런 남자는 대부분 세상에 열려 있고 다양한 사람들에게도 열려 있다. 무엇보다 센스가 있다. 함께 이야기 나눌 거리도 넘쳐난다.     


이제 50대 초반의 아저씨가 된 남편에게 요리 배우기를 계속 권하기는 쉽지가 않다. 이미 그는 이전보다 훅 떨어진 저질 체력을 회복하고자 주 3회의 운동을 다니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그는 요리와는 전혀 상관 없는 운동과 스포츠를 사랑하는 남자이고 그래서 축구와 크로스핏과 농구를 돌려가며 질리지 않고도 다양한 근육을 사용하는 남자인 것이다.   

   

어린 남자를 잘 길러 미래의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는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이전 03화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