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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러브 Apr 02. 2024

마흔, 요가를 다시 시작하다

두 번째 스무살하고도 언저리에 요가를 다시 배우게 되었다. 20대 중반에 배웠던 요가를 다시 배우는 감회가 새롭기만 하다.      


근래에 어디에선가 이런 글귀를 본 적이 있다.      

‘중고등학교 때나 국영수지, 인생은 예체능이다.’     


이런 통찰력 있는 문장이 있나. 주요 과목의 성적으로 학벌과 직업이 정해질지 모를지언정, 그 이후의 인생의 즐거움과 질은 음악, 체육, 미술과 관련 있음에 절절히 동감한다. 특히나 음악과 미술은 감상으로만 남을수도 있는 영역이지만 체육은 감상에만 그쳤다가는 인생이 골(?)로 가는 수가 있다. 경험에서 나온 말이다.     


임신과 육아와 워킹맘으로 이어진 시간 속에서 의지와는 상관 없이 결혼 후 16년을 운동을 놓고 사는 동안 근육은 빠지고 그래서 늘 피곤하고 기력이 없는 상태로 오랫동안 살았더랬다. 저질 체력의 원인이 무엇인지 왜 항상 피곤한지 이유를 모른 시간이 길어졌다. 한바탕의 아픈 시간과 수술 이후에 도저히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절절한 각성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필라테스로 시작한 운동은 요가로도 이어졌다. 내가 다니는 필라테스 센터는 필라테스를 배우는 경우 요가 수업을 회당 5000원에 들을 수 있는 파격적인 혜택을 주었다. 주5회 운동을 목표로 하는 나에게는 제격이었다. 힘들어도 하기 싫어도, 가기 싫어도 매일 꾸준히 해 내는 능력이 나에게는 필요했다. 복직의 필수 요건 아닌가. 직장에는 아파도 가야하고 가기 싫어도 가야하지 않은가. 나의 상태와 여건과 기분과는 상관없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몸이 움직이도록 삶이 굴러가도록 준비하고 연습하는 일이 나에게는 꼭 필요했다.      

목요일로 잡힌 원데이 클래스의 요가수업이 시작되었다. 누가 봐도 매끈한 몸매로 탑과 레깅스를 입은 선생님은 한눈에도 멋져보였다. 선생님이 음악을 플레이하시고 동작을 시작하는 순간 나는 속으로 ‘아!’하고 탄식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무려 20년 전 즈음 요가를 배우던 시절, 늘 수업의 시작이나 마무리에 흐르던 음악. 브라이언 맥나잇의 <back at once>였다. 가사의 내용은 잘 몰라도 도입부의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흘러 나오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잠시 숨이 막힐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음악과 함께 몸이, 몸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 자세와 물고기 자세, 쟁기자세와 아기 자세...20년이나 쉬었지만 선생님이 그 동작들을 시작하자 몸이 조건반사적으로 같이 따라 움직여졌다. 아주 오래 전 기억들이 음악과 함께 소환되어 요가의 동작으로, 이름으로 기억되어 내 몸으로 재현되고 있었다. 물론 예전의 유연성과는 극명한 차이가 있었지만 말이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께서 내 옆으로 다가와 조용히 물으셨다.     


“예전에도 운동을 하셨지요? 제법 잘 따라오시네요. 마흔쯤 되어보이시는데 이제는 운동을 하셔야 해요. 저도 보기와는 다르게 나이가 많습니다. 하하”     


가까이서 본 선생님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자 매끈하고 굴곡 있는 바디라인과 달리 얼굴에는 나이의 흔적이 묻어있었다. 적어도 50대 초반은 되어 보이셨다.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동료(?)들과 함께 이리 저리 몸을 뒤틀고 버티는 동안 한시간이라는 시간은 힘겹지만 잘 흘러갔다. 내 몸에 집중하며 호흡에 집중하는 순간들은 몸도 마음도 잠시라도 가벼이 비우게 했다.  

   



이슬아 작가의 <끝내주는 인생> 속 그녀가 파주의 한 요가원에서 요가를 하던 시절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요가 선생님은 요가시간마다 케이팝을 틀어주시는 독특한 분이셨다. 케이팝 발라드의 가사를 들으며 따라하는 동작들이 얼마나 이질적이면서도 묘하던지 마지막에는 이런 저런 동작을 하다가 송장 자세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울어버리게 되었다는 이야기 말이다.      


요가를 하는 동안 부지런히 소가 되었다가 때론 물고기와 고양이가 되었다가 마지막에는 아기와 송장이 되어보며 나도 모르게 자연과 삶에 대해 느끼고 떠올리게 된다. 나 자신의 유한성과 인간이라는 정체성, 하지만 자연과 다른 인간 없이 혼자서 살수 없는 나약한 인간에 대해 나도 모르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요가를 오래 하는 사람들은 이효리처럼 뭔가 득도 아닌 득도를 하나보다고 생각해 본다.     


‘나마스떼’ 인사와 함께 오늘의 수업이 끝났다. 매일의 운동을 감당해 내는 내 자신이 되기 위해 건강한 식습관과 루틴을 이어나가보자고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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