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부상의 이야기
짐은 두려움이다. 두려움을 버려라!
최근에 나영석 피디님의 예능들을 정주행 하고 있다. 예전에는 예능도 엄청 챙겨보고 했는데 최근에는 거의 안 봤었는데 백수가 된 뒤로 남는 게 시간이기도 하고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인풋이 중요하다며(?) 스스로 합리화를 하면서 열심히 보는 중이다. 그중에서 정말 감명 깊게 본 예능이 있는데, 바로 스페인하숙이다. 유해진, 차승원, 배정남 세분의 케미도 케미도 다채로운 한식 요리도 참 즐거운 요소들이었지만 이게 마음에 남았던 것은 순례길을 걷다 지친 순례자들이 묵어가는 알베르게라는 숙소를 운영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었다.
어릴 때는 여행을 가는 것이 귀찮고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여행은 힘든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서 도피하는 순간이 되기도 하고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며 알아가고 예쁜 풍경을 보고 맛있는 것들을 즐기면서 행복해지기도 하고 다채로움이 공존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여행이라고 해도 설레고 좋은데, 순례길이라니. 갑자기 마음이 두근두근 거리면서 설레기 시작했다. 걷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 체력도 안 좋은 나지만 인생에서 한 번쯤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순례자들의 용기와 도전이 너무 멋있었고, 순례자 중 한 명이 어느 다른 순례자에게 들었던 말 중에서 "짐은 두려움이다. 두려움을 버려라!"라는 그 말이 내 마음을 울렸다.
평소에 잠깐 외출하는 길에도 가방 가득 짐을 챙겨서 나가는 보부상으로서, 친구와 같이 여행 갔을 때 친구는 1박 2일 여행인데 일주일 살러 가냐고 말하기도 했을 정도로 난 항상 짐이 많은 편이다. 짐이 많은 이유가 뭘까 자세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다 필요하니까 들고 가는 거라고 했었는데 사실 가방 안에 들어있던 짐들을 전부 사용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짐이 두려움이라는 그 말을 들으니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정말 많은 두려움을 들고 다녔었구나.
스스로를 걱정도 없고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착각이었구나. 이렇게 되면 어떡하지 그럼 이게 필요하겠지? 하면서 하나둘씩 담긴 시작한 가득한 짐 안에는 나의 크고 작은 두려움들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것들을 피하고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진 것들을 내려놓고 걷고 또 걷는 그 길 동안 두려움 또한 내려놓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30살이 되기 전에 내가 목표했던 것들을 꼭 이루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30살이 가까워진 지금 이 순간 이룬 게 많지는 않지만 버킷리스트에 순례길 걷기가 하나 추가되었다. 과연 나는 두려움을 많이 버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