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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Aug 09. 2023

나는 죽었지만, 다시 산다 #3

월급쟁이

기차장과 이야기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하는 일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시간도 더디게 흐르는 것 같고 자꾸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건 아무래도 기차장과 나눴던 대화겠지. 


 이미 내 몸은 죽었고 임관홍의 몸으로는 내가 당장 뭘 어떻게 할 수가 없고 

그저 그런 상황을 바라만 보고 이런 이야기를 듣고만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원통했다. 


 엄마와 나를 무시하고 함부로 말하는 기차장의 모습도, 고장 난 레일 위에 가장 어린 나를 올려 보냈 던 것도 정말 화가 났지만, 


 제일 참기 힘들었던 것은 그래도 날 챙겨주고 위해준다고 생각했던 부장님의 진짜 모습과 그동안 힘든 하루하루를 서로 위로해 주고 함께 했던 동료들과 대리님, 주임님들 모두가 자신의 안전을 위해 나에게 진실을 숨긴 채 입을 꾹 닫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남자들도, 오래된 경력자들도 쉽지 않은 일을 생계를 위해서 참고 버티면 묵묵히 해왔던 나였다. 


 그간의 시간들을 이런 식으로 보상받는 건가. 부정적인 생각에 내 정신이 잠식당해가고 있을 때쯤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었다. 


  “관홍아, 커피 한 잔 하자.” 


  부장님께서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네 알겠습니다.” 


 기차장에게 오 부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꼴도 보기 싫어졌지만, 

지금은 개인적인 감정만으로 사람을 대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탕비실로 가서 커피 두 잔을 들고 회사 뒤편으로 향했다. 


 “부장님 커피 여기 있습니다.” 

 “어, 고맙다. 어제 술 많이 마신 것 같던데 속은 괜찮고? 

기차장이 좀 전에 너 숙취 때문에 힘든 것 같다고 하던데.”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그 짧은 순간에 기차장은 부장님께 나랑 한 이야기를 바로 옮겼다. 

다른 회사들도 거의 비슷하겠지만 이 회사의 큰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소문이 너무 빨리 돈다는 것이다. 


 당분간은 정말 말조심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닙니다. 잠깐 앉아서 쉬었더니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어제 하루 어머님 만나서 산재보상 처리해 드린다고 하고 이야기했어.” 


 정식 보상 처리도 아니면서 뻔뻔하게 말하는 오 부장을 보니 너무 역해지기 시작했다. 


 “기 차장님 말씀으로는 정식 보상은 아니라고 하던데, 아무래도 돈이 많이 드니까 그렇겠죠?” “뭐··· 아무래도 무시 못하지. 우리도 월급 쟁이니까. 

그래도 나름대로 성의 표시 했더니 어머님도 받아들이시는 것 같고 다행이야. 괜히 일 커질까 봐 조마조마했다니까.” 


 임관홍이나 기차장은 그렇다 치고 그래도 오 부장님은 조금은 다른 분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알고 챙길 줄 아는 그런 상사라고 생각했었다. 


 사람들은 끼리끼리 어울린다더니 역시나 오 부장도 그들과 다를 바가 없는 인간이었다. 


 “어머님이 다른 말씀은 없으셨어요? 하루 씨가 그렇게 돼서 많이 힘드시겠네요.” 

“다른 가족이 따로 안 계신 것 같더라고. 그래서 더 정신이 없으신가 봐. 나도 걱정했는데 별말씀 없으셨어.” 


 “네. 그나저나 전동 레일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고치려면 돈도 꽤 들고 시간도 걸릴 것 같은데···” 


[“아 그거 일단은 그대로 써야 할 것 같아. 


대표님이 이거 고장 나서 사고 난 거 아시면 난리 나거든··· 


그리고 너 말대로 돈이랑 시간도 많이 필요한데, 하루 보상건 때문에 돈이 좀 나가서. 

일단은 조용히 묻어두자.” ]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고장 난 레일 때문에 전에도 사고가 있었고 심지어 이번엔 내가 죽기까지 했는데 이걸 안 고치고 그대로 둔다고? 


 그럼 또 나를 대신해서 누군가 이 레일 위로 올라가야 할 텐데 이런 상황에서 누가 거기를 올라가겠냐고. 그리고 생명과 직결된 것에 돈과 시간이 아까워서 못하겠다고, 대표에게 혼날까 봐 묻어두자는 말이 진정 인간의 입에서 나올 수가 있는 말인가. 


 이들은 인간이 아니다. 짐승이다··· 


***


 오 부장은 생산, 제조 담당자인 정대리, 최주임, 채주임을 회의실로 불러냈다. 


 “여러분 어제는 함께하던 동료에게 안타까운 일이 생겼지만, 이 회사에 남은 저희는 그럼에도 일을 해야 하니 하루의 빈자리를 대신해서 원료 배합을 담당하실 분을 지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표정이 어두워진 채주임이 오 부장의 말을 이어받았다. 


[ “부장님 저희는 사람이지 기계가 아닙니다. 어제 그런 일이 생겼는데 그 위험한 레일에 누가 올라가려고 하겠습니까. 


 그리고 저와 최주임은 하루가 떨어지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기까지 했고 그 뒤로 온몸이 떨리고 속은 계속 안 좋은데도 밤늦게까지 잔업하느라 쉬지도 못하고, 하루 장례식장도 못 갔습니다. 


 오늘도 간신히 출근했어요.” ]


  어제 고장 난 레일이 흔들리면서 그 위에 올라가 있던 하루가 원료 통 안으로 떨어졌다.

 배합된 원료를 확인하러 제조실로 들어간 순간 그 모습을 목격했다.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그 뒤엔 충격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굳어버렸다. 


 내가 지른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며 최주임이 달려왔다.


 나는 목구멍에서 막혀서 제대로 나오지 않는 소리를 최선을 다해 밖으로 내보내며 말했다.


  “하루··· 하루가··· 원료통 안으로 떨어졌어···” 

 “뭐? 무슨 일이야. 왜 그러고 서있어. 얼른 구급차 부르고 하루 꺼내야지!” 


 최주임이 급하게 사람들을 데리러 나갔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그 통 안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사람들이 제조실 안으로 하나 둘 들어왔고 원료통을 확인하러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크고 넓은 원료통 안에 빠진 하루는 통 안 깊숙한 곳까지 빠져버렸는지 보이지도 않고 통은 너무 깊어서 직접 꺼내기에는 위험하다며 하나 둘 물러나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시간을 허비해 버려서, 하루가 통 안에 빠져버린지 한참이 지나서야 구급차가 도착했다. 


 구급대원들이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혹시 직원분께서 통 안으로 떨어진 지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있을까요?”

 “대략 30분 정도 지난 것 같아요···” 

“일반 물도 아닌데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서 상황이 안 좋습니다.” 


 이 모든 일이 내 탓인 것만 같아서 자꾸만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루가 떨어졌을 때 빠르게 구급차를 불렀다면 어땠을까, 

위험하니까 조심하라고 걱정이라도 해줬으면 달라졌을까, 

아니 하루가 처음 입사했을 때 그 레일이 고장 난 레일이라고 말해줬다면··· 흑.. 흐윽...


 하루는 구급대원들에 의해 구조되었지만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후였고, 그렇게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


 [“채주임, 그건 어쩔 수 없는 사고였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누가 죽었다고 해서 두 손 놓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여기는 회사고 남은 사람들은 일을 해야죠. 못하겠으면 당분간 쉬시던지 정 안 되겠으면 그만두시던지 하세요.” ]


 오 부장은 하루의 죽음은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니고 회사 일이 더 중요한 일이라는 듯 이야기했고 같은 공간에서 같이 일하는 우리들의 충격과 불안함에 대한 배려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과 부당한 지시에도 나는 그만두지 못하는 한 가족의 엄마였다. 


 나에게는 사랑스러운 딸과 아들, 두 아이가 있었고 아이들을 생각하면 이런 회사더라도 그만둘 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정대리가 오 부장에게 질문했다.


  “부장님 그러면 원료 배합은 누가 담당하게 되는 건가요? 전동 레일은 언제 고쳐지는 걸까요.” 


[“당장 레일을 고치는 건 힘들 것 같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인원도 빠진 상황에 보상금 때문에 지출이 꽤 컸어요. 

담당은 일단 돌아가면서 하는 걸로 하시죠.” ]


 정대리와 최주임, 채주임은 알겠다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회의실에서 부장님이 먼저 나오셨으나 대리님과 주임님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떡하지, 갑자기 궁금해하면서 물어보는 건 임관홍스럽지 않은데.”


 평소의 임관홍이라면 신경도 안 썼겠지만, 

과연 부장님이 어떤 말을 했으며 앞으로 이 회사의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고 배분될지 알아야 했다.


 단순한 궁금증을 넘어 이건 내게 또 다른 생사가 걸린 일이었다. 


 뒷 일이 어떻게 되던지 일단은 어떠한 수확을 하기 위해 땅을 파헤쳐보기로 결심한 후 회의실 문을 열었다.


 “대리님, 주임님들 무슨 문제 있으세요? 다들 안 나오시고 심각해 보이시길래 와봤습니다.”


 최주임이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되물어왔다. 


 “임 과장님은 어쩐 일이세요? 평소에 남한테 별로 관심 없으신 줄 알았는데.”

 “어제 일도 있고 해서 혹시나 싶어서 여쭤보는 겁니다.” 


 동료의 죽음이 흔한 일은 아니니까 이렇게 둘러대면 모두들 의심하지는 않을 듯했다. 


 채주임은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과장님도 이렇게 걱정하시고 궁금해하시는데, 부장님은 그렇지 않으신가 봐요. 

어쩜 이렇게도 태평하시고 평안하신 지. 진짜 상관없는 남 이야기 하듯이 말씀하시더라고요. 


 저는 1년 넘게 함께한 하루가 가족 같고 제 딸 같아서 마음이 안 좋은데.” ]


 정대리도 말을 보탰다. 


 [“우리 모두가 함께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면서 하루를 떠나보내기 위한 시간도, 

잠시 쉴 시간도 필요한데 어제도 잔업한다고 11시가 넘어서야 회사를 나왔어요. 


 하루 장례식장도 못 가보고 오늘도 다들 겨우겨우 회사를 나왔을 텐데, 하루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시면서 그 같은 길을 우리가 걷게 하시려나 봐요.” ]


 혹시나 가 역시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묻어두자는 오 부장의 말은 크고 작은 문제들을 드러내지 말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지내자는 뜻이었고, 그 안에는 고장 난 레일과 열악한 작업 환경 또한 이야기 꺼내지 말고 일이나 하라는 의미가 담겨있었던 것이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회사를 그만둘 수 없는 이유가 모두에게 있었기에 적들에 의해 둘러싸여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에서 앞으로 갈수록 뒤로 갈 수도 없을 노릇이었다. 


 최주임이 정적을 깨며 말했다.


  [“나는 사실··· 무서워. 지금도 평소처럼 일하기도 힘들고, 

하루가 죽은 곳을 보는 것만으로도 미칠 것만 같은데 그 자리에 내가 올라가서 일을 한다고 하면.. 혹시나 나도 하루처럼 되어버리진 않을까. 


 그럼 남은 우리 가족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내 머릿속은 이런 생각들로 가득해서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데, 이것도 내 맘대로 하기가 어렵고.” ]


  “저도 생각을 좀 해보겠습니다.” 


 함부로 말을 꺼낼 수 없는 분위기였고 진지함이었다. 그들의 애환과 고민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이해하기 때문에 더더욱 안타까웠다. 


 그러나 지금 나는 임관홍이다.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더라도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고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그렇게 회의실을 나와 자리로 와 앉았다. 


 하루의 몸은 죽고 임관홍의 몸으로 다시 살기 시작한 뒤로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진실이나 숨은 뜻을 얻기 위해 그들을 관찰하고 주의 깊게 바라보면서 그동안 나의 힘듦만을 생각하며 살아왔구나. 싶었다. 각자마다의 고민과 힘듦이 있는 법인데, 그걸 몰랐다. 


 가만히 앉아서 기회를 기다리기만 하지 않고 용기 내서 회의실로 들어갔던 일도 결국에는 나에게 실이 아니라 득이 되었다. 앞으로 나는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대화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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