좆소의 현실
새벽 내내 여러 가지 고민과 생각들로 잠에 들지 못하고 아침을 맞이했다.
“이제 곧 출근을 해야 하는데 큰일이네”
평소 임관홍의 모습을 기억 속에서 찾아내기 위해 애쓰며 옷 방으로 들어갔다.
출근할 때 입을 옷을 정하기 위해서 옷방을 둘러보다가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맘 편히 걱정 없이 살아본 적도 없고 그저 먹고살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일해왔는데, 연애도 한 번 못해보고 그 흔한 여행도 한 번 못 가봤는데 겨우 25살에 내 육체는 죽고, 내 영혼은 다른 사람 몸에 들어와 기생충 같이 붙어있다니.
정말 비참했다.
하지만 이 비참함 조차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게 내 처지다.
눈물을 닦아내고 욕실로 발길을 옮겼다.
그동안 여자로 살면서 연애도 한 번 못해본 모태솔로라, 남자의 몸을 제대로 본 적도 없는데 내가 일하던 곳의 상사의 몸이 되어 그 몸을 봐야 한다니···
심지어 정말 별로라고 생각했던 남자다. 하지만 이 몸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계속해서 마주해야 하는 이제는 내 몸이니까.
욕실의 문을 열고 거울로 얼굴부터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임관홍의 얼굴을 거울로 보고 있자니,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어차피 다른 육체로 살 거면 좀 잘 생긴 남자로 살면 좋았으려니만
나이보다 훨씬 더 늙어 보이는 얼굴에, 얼마나 화를 많이 냈으면 이렇게나 험악한 인상이 되었을까 싶은 주름들, 관리되지 않아 지저분한 피부와 살이 흘러내린 듯 처진 볼,
턱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얼굴과 목의 경계까지.
마음이 착잡해졌다.
하지만 얼굴이 끝이 아니다. 더 큰 게 남아있다. 임관홍의 몸과 마주할 순간이다.
입고 있던 옷을 벗어 한쪽에 두고는 거울 앞에 서서 눈을 질끈 감았다.
비율이 완전히 뭉개진 전체적인 실루엣에 남자 평균키에도 한참 못 미치는
원래의 나보다도 작은 키. 옆으로 퍼지고 한껏 튀어나온 배.
평소에 내가 봐오던 임관홍의 모습이었다.
이제 눈을 뜨면 그 어떤 것으로도 가려지지 않은 임관홍의 모든 것을 봐야 한다.
마음의 준비를 마친 뒤 눈을 떴다. 순간 기절을 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욕실에서 나와 미리 준비해 둔 옷으로 갈아입고 현관문 앞에 섰다.
“자 이제 정말 시작이야.”
잠에 들지 못해서 좀 더 일찍 집 밖을 나섰는데 뭔가 각성제를 마신 듯한 기분이었다.
피곤함은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정신이 이상하리만큼 또렷했다.
영화나 드라마, 책 속에서나 보던 일이 나에게 일어나다니 실감은 나지 않았지만
지금 내 모습만 보더라도 현실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었다.
임관홍은 평소에 차를 타고 다녔기에 운전을 해서 회사에 가는 것이 자연스럽겠지만
나는 운전이 서투르기도 하고 이 정신에 운전까지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출근을 하기로 결정했다.
버스에 올라가 빈자리에 앉아, 창문을 살짝 열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았다.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오는 울컥하는 감정을 잠재우기 위해 잠시 눈을 감고 바람의 촉감을 느꼈다.
몇 정거장을 지났을까, 이른 아침에도 이 버스 안이 벌써 많은 사람들로 채워졌다.
표정 없는 얼굴에 지쳐 보이는 어깨, 귀를 막고 있는 무선이어폰, 살짝 감긴 눈. 그동안 나는 이런 모습으로 살아왔겠지.
먹고사는 것이 뭐라고 내 인생 그 자체였고 가장 크고 중요한 일이었음에도 행복하지 않았다. 오늘 해치우기 급급한 과제였다. 회사 근처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살짝 떨리는 마음으로 열린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