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죽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엄마에게 회사의 잘못은 아니지만 일을 하는 중에 생긴 사건이니
산재보상을 해주겠다고 너무 안타깝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 모습이 보이는 거지?
이게 말로만 듣던 영혼이 분리되는 유체이탈인가? 무슨 상황인 거지?
하고 있는데
뭔가 기시감이 느껴져서 꿈인 건가, 아니면 가위눌림 인가 싶어서
어서 빨리 깨어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눈을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어디인지 모를 공간 속에 갇혀서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고
곧, 이건 내가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 달았다.
내 육체는 억울하게 죽었는데 영혼은 죽지도 못하고 여기 갇혀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건가 싶어서 너무 화가 나고 속이 답답해졌다.
그때 갑자기 내가 앉아있는 공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펑하고 터져버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영혼은 죽지도 못한다고 불평했더니 영혼까지 죽는 건가 싶어
무서워 눈을 질끈 감았다.
어디선가 기분 좋은 향기가 나더니 온몸이 따뜻해지기 시작했고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내 앞에는 어떤 빛나는 물체가 있었는데 그 물체가 나를 감싸 안고 지켜주고 있었다.
하루도 안 되는 사이에 너무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지쳐가고 있을 무렵 느낀 따스함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을 닦아내자 빛나는 물체의 모습이 점차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그 물체는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너는 다시 살고 싶니?”
다시 살고 싶냐니.. 역시나 내가 죽은 건가.
“글쎄, 내가 죽은 거야?”
그가 말하기를
[“아직은 반반?이랄까? 너의 선택에 따라서 미래가 달라질 거야.
지금은 현재의 공간 속이고 너는 과거의 공간에서는 죽었지만,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몰라.
그러니 지금부터의 선택이 아주 중요하단 것만 알아 둬.” ]
그는 계속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말만 늘어놓았다.
하지만 뭔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는 것은 나도 알 수 있었다.
“살고 싶어. 하지만 지금처럼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그건 싫어. 다시 살게 되면 과거로 돌아가는 거야?”
그는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건가?
너는 다시 살게 된다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거야.
현재에서 미래를 결정하게 되는 거지. 네가 사는 것을 택한다면
너는 네가 죽은 현재로 가서 살게 될 거야.” ]
내가 죽었는데 내가 죽은 현재에 가서 살게 된다고?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인가.
“내가 죽었는데, 어떻게 내가 죽은 현재에서 살 수 있다는 거야?
말이 전혀 안 되는 걸?”
[“아 맞다. 내가 이걸 말 안 했구나?
너는 현재 지금 이 시점으로 가서 살게 되지만 네가 아니라 다른 인물이 되어 살아갈 거야.
대신 그 인물의 영혼은 잠시동안 우리가 보관할 거고,
너의 선택에 따라서 너의 미래도 달라지지만 네가 택한 인물의 미래도
함께 달라지게 될 거야.
그리고 그냥 살게 해주는 건 아니고, 미션이 하나 있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내가 죽은 걸 보면서 살아야 한다고?
내가 죽어서 미친 건가. 아님 요즘 드라마를 많이 봤더니 꿈을 드라마처럼 꾸게 된 건가?
하지만, 꿈이던 아니던 일단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나려면 뭐든 해야겠다는 생각에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미션이라고? 그게 뭔데?”
[“네가 억울하게 죽었기 때문에 너에게 이런 기회를 주는 거야.
하지만 다시 사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잖아?
네가 미션을 성공한다면 너에게 미래가 주어질 것이고,
실패한다면 너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될 거야.
그리고 널 대신했던 사람의 영은 다시 현재로 돌아가겠지만,
네가 살아온 그의 과거는 그대로 이어져서 그 사람의 미래는 바뀌게 돼.
그러니 신중하게 선택하는 게 중요하겠지?” ]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음이 정말 심란해졌다.
나 스스로도 내가 책임지지 못했는데, 다른 사람으로 살면서
나와 그 사람 두 명을 책임져야 하고 지켜내야 하다니,
그냥 삶을 포기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혼자 있을 엄마와 하고 싶은 것도 못해보고 억울하게 죽어버린
소중한 내 육체를 위해서라도 선택을 해야만 한다.
결국 잠시동안의 고민 끝에 나는 다시 살기로 결정했다.
“나 결정했어. 다시 살 거야.”
[“그래, 신중해야겠지만 억울하게 죽은 생을 이렇게 끝내기에는 정말 아쉬운 일이지. 앞으로 네가 수행해야 할 미션에 대해서 알려 줄게.
너는 일단 너 말고 다른 누군가로 살 것인지를 먼저 정해야 하고
그 이후에는 네가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그 이면에 대해서 진실을 찾아내야 해.
그리고 중요한 미션이 하나 더 있는데 이건 차차 알려주도록 하지.” ]
“그래 알겠어. 대신 누구로 살 것인지 생각할 시간을 좀 줘.
아무나 선택할 수는 없잖아.”
아무래도 정말 꿈은 아닌 것 같아서 진지하게 생각을 해야겠다고 느꼈고
순식간에 몰아친 이 상황 속에서 너무 지쳤기 때문에 쉴 시간도 필요했다.
그러나 더 이상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을 줄 수는 있는데 최대한 빨리 결정하는 게 좋을 거야.
네가 그렇게 고민하는 동안에도 현재의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거든.”
“뭐? 무슨 말이야?! 여기 있는 동안은 시간이 멈추고 그런 거 아니야?
드라마에서는 그러던데...”
그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루야 이건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야.
그리고 시간은 함부로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점점 지금 나의 현실이 허구가 아니라 실재라는 것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도대체 나 말고 누구로 살아야 하는 걸까.
내가 죽게 된 사건 이면에는 어떤 진실이 숨겨져 있는 걸까.
나는 나뿐만 아니라 내가 선택한 사람과 이 상황들을 책임질 수 있을까.
그리고 모든 미션들을 수행해 내고 본래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다시 돌아간다면 제대로 살아낼 수 있을 것인가.
끊임없는 생각의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내려왔다.
이제는 진짜 결정을 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를 불러냈다.
“저기... 나 이제 결정했어.”
“오? 생각보다 빨리 결정했네? 그래서 누구로 살기로 했니?”
누구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한 결과,
누군가의 삶을 내가 대신 산다는 것과 그 이후의 삶이 나로 인해 변한다는 결괏값을
따져봤을 때 그 사람의 삶을 내가 한동안 빼앗아 간다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약간이지만 죄책감을 덜어낼 인물이면서도 사건의 진상을 파헤칠 수 있을 만한
인물이어야만 했다.
“내가 선택한 사람은... 바로 임관홍이야.”
“음... 그 사람을 선택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거야?”
“글쎄, 나도 차차 알려주도록 할게.
아 그보다도 난 너를 뭐라고 불러야 하지? 그리고 정확하게 너의 정체가 뭐야...?”
생각해 보니 그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어떤 역할을 하는 존재인지,
이름이 무엇인지 조차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중요한 걸 말을 안 했군. 내 이름은 today, 오늘이야.
내가 누군지 내 정체에 대해서 알려주려면 일단 이 이 세계 곧 공간에 대해서 말해줘야 알 수 있을 테니 설명해 줄게.
지금 네가 있는 공간은 아까도 언급하긴 했지만 현재의 공간이야.
공간은 크게 과거의 공간과 현재의 공간, 그리고 미래의 공간으로 나뉘어.
그리고 각 공간들은 살아있는 사람들이 기거하는 육체의 공간과
너와 같이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영혼이나 그 사람들이 택한 사람들의 영혼을 보관하는 영혼의 공간으로 나뉘지.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겠지?”]
육체와 영혼의 공간이라니 그동안은 상상해보지도 못했던 분야였다.
그저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버텨내기에 급급했고 바쁜 일상을 보내고
집에 도착한 순간, 일을 나가지 않는 하루에도 나는 나에 대해서 생각하고 고민하며
나만의 꿈을 꾸는 그런 것들이야말로 사치였고
먹고사는 일인 생계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축적하고
또다시 일어설 체력을 비축하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가장 크고 거의 유일했던 나의 문제인 생계를 빼고 나서 다른 생각을 하게 된 건
어릴 적 이후로 처음인 듯했다.
정말 머리가 아프고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이것과 별개로
뭔가 두근거리고 설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음으로는 와닿지 않지만 머리로는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중이야.”
“육체와 영혼의 공간으로 나누어지긴 하지만 둘 다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이어지고 있고, 시간을 멈출 수는 없어.
똑같이 시간이 흐르고 있고 계속 흘러간다는 말이지.”
“시간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아예 없는 거야?”
[“원칙적으로는 불가능 하지만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야.
그렇다고 무조건 가능한 것도 아니지.
그리고 네가 육체의 공간으로 가게 되면 나와의 소통이
지금처럼 활발하게 쉽게 되지는 않을 거야.
아무래도 공간이 분리되어 있으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소통이 가능한데?”
점점 내가 누군가의 육체로 들어가서 나로 살 순간이,
현실이 다가오는 듯했고 그로 인해 불안감과 걱정 때문에 자꾸만 질문도 많아졌다.
[“우리의 소통은 하루 한 번 12시 자정 정각에 가능하고
주어지는 시간은 10분뿐이야.
그러니 이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그날 소통은 불가능한 거지.
그리고 계속 말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으니,
이젠 정말 임관홍의 몸으로 들어가야 할 거야.
시간이 없으니까 나에 대한 소개는 잠시 미뤄둘게.
이야기하게 될 시간이 있을 거야.” ]
현실 세계에서도 쉽게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모든 일에는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이 있고 대가 없이
그냥 주어지는 것은 없는 듯하다.
지켜야 할 것들과 해내야 할 것들이 나의 어깨 위에 올라와 짓누르는 듯했다.
하지만 이젠 정말 가야 할 때가 다가왔다.
“그래 그러지.”
[“하루, 저길 봐. 지금 막 임관홍이 집에 도착했어.
오늘 너의 장례식장에서 술을 꽤나 마셨으니 아마 정신없을 거야.
그의 영혼을 빼내오고 너의 영혼이 그의 몸으로 들어가려면 이런 타이밍이 중요하거든.
마침 딱 맞는 타이밍이야.
이걸 줄 테니까 마시고 나면 잠시 몽롱해지면서 의식이 없어질 거야.
그리고 곧 그의 몸으로 들어가게 되지.”]
오늘이 나에게 게임에서나 보던 포션 같은 물약을 건네주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물약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러자 정말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이 순간이 아득해지는 듯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으악...! 뭐지. 임관홍 과장의 몸에 들어온 건가?’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원래 내 육체로 지낼 때와는 모든 것이 달랐고 낯설었다.
몸의 감촉과 움직임, 내쉬는 숨의 깊이까지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성별... 여자로 25년을 살아온 내가 하루아침에 35년 산 남자가 되어버리다니.
앞으로 임관홍의 육체로 살아가면서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일단은 바뀌어 버린 성별에 적응하는 것이 먼저였다.
다른 사람들이 느끼기에 너무 달라지면 아무래도 내가 하는 행동에 의심을 받을 테니까. 그다음은 성격이다.
모든 미션을 완수할 때까지 최대한 본래의 임관홍처럼 지내야 한다.
원래의 '나' 새 하루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
그리고 마지막은 미션완수. 임관홍으로 지내면서 내가 어떻게 해서 죽게 되었는지
사건의 진실과 이면을 파헤치고 마주해야 한다.
과연 이 모든 것들을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불안감이 몰려올 때쯤 날이 밝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