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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Aug 07. 2023

나는 죽었지만, 다시 산다 #2

좆소의 현실

새벽 내내 여러 가지 고민과 생각들로 잠에 들지 못하고 아침을 맞이했다. 


 “이제 곧 출근을 해야 하는데 큰일이네” 


 평소 임관홍의 모습을 기억 속에서 찾아내기 위해 애쓰며 옷 방으로 들어갔다. 

출근할 때 입을 옷을 정하기 위해서 옷방을 둘러보다가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맘 편히 걱정 없이 살아본 적도 없고 그저 먹고살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일해왔는데, 연애도 한 번 못해보고 그 흔한 여행도 한 번 못 가봤는데 겨우 25살에 내 육체는 죽고, 내 영혼은 다른 사람 몸에 들어와 기생충 같이 붙어있다니. 


 정말 비참했다. 


 하지만 이 비참함 조차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게 내 처지다. 


 눈물을 닦아내고 욕실로 발길을 옮겼다. 


 그동안 여자로 살면서 연애도 한 번 못해본 모태솔로라, 남자의 몸을 제대로 본 적도 없는데 내가 일하던 곳의 상사의 몸이 되어 그 몸을 봐야 한다니··· 


  심지어 정말 별로라고 생각했던 남자다. 하지만 이 몸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계속해서 마주해야 하는 이제는 내 몸이니까. 


 욕실의 문을 열고 거울로 얼굴부터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임관홍의 얼굴을 거울로 보고 있자니,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어차피 다른 육체로 살 거면 좀 잘 생긴 남자로 살면 좋았으려니만 


 나이보다 훨씬 더 늙어 보이는 얼굴에, 얼마나 화를 많이 냈으면 이렇게나 험악한 인상이 되었을까 싶은 주름들, 관리되지 않아 지저분한 피부와 살이 흘러내린 듯 처진 볼, 

 턱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얼굴과 목의 경계까지. 


 마음이 착잡해졌다. 


 하지만 얼굴이 끝이 아니다. 더 큰 게 남아있다. 임관홍의 몸과 마주할 순간이다. 


 입고 있던 옷을 벗어 한쪽에 두고는 거울 앞에 서서 눈을 질끈 감았다. 


 비율이 완전히 뭉개진 전체적인 실루엣에 남자 평균키에도 한참 못 미치는 

원래의 나보다도 작은 키. 옆으로 퍼지고 한껏 튀어나온 배. 

평소에 내가 봐오던 임관홍의 모습이었다. 


 이제 눈을 뜨면 그 어떤 것으로도 가려지지 않은 임관홍의 모든 것을 봐야 한다. 

마음의 준비를 마친 뒤 눈을 떴다. 순간 기절을 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욕실에서 나와 미리 준비해 둔 옷으로 갈아입고 현관문 앞에 섰다. 


 “자 이제 정말 시작이야.” 


 잠에 들지 못해서 좀 더 일찍 집 밖을 나섰는데 뭔가 각성제를 마신 듯한 기분이었다. 

피곤함은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정신이 이상하리만큼 또렷했다. 


 영화나 드라마, 책 속에서나 보던 일이 나에게 일어나다니 실감은 나지 않았지만 

지금 내 모습만 보더라도 현실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었다. 


 임관홍은 평소에 차를 타고 다녔기에 운전을 해서 회사에 가는 것이 자연스럽겠지만 

나는 운전이 서투르기도 하고 이 정신에 운전까지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출근을 하기로 결정했다. 


 버스에 올라가 빈자리에 앉아, 창문을 살짝 열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았다.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오는 울컥하는 감정을 잠재우기 위해 잠시 눈을 감고 바람의 촉감을 느꼈다. 


 몇 정거장을 지났을까, 이른 아침에도 이 버스 안이 벌써 많은 사람들로 채워졌다. 

표정 없는 얼굴에 지쳐 보이는 어깨, 귀를 막고 있는 무선이어폰, 살짝 감긴 눈. 그동안 나는 이런 모습으로 살아왔겠지. 


 먹고사는 것이 뭐라고 내 인생 그 자체였고 가장 크고 중요한 일이었음에도 행복하지 않았다. 오늘 해치우기 급급한 과제였다. 회사 근처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살짝 떨리는 마음으로 열린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회사에 도착하니 출근 시간보다 한참 이른 시간임에도 먼저 나와서 벌써 준비를 마치고 

일을 시작하고 있는 분들이 있었다. 


 하루였다면 먼저 살갑게 인사를 건네며 아침을 시작했겠지만, 나는 지금 임관홍이다. 

주변을 신경 쓰지 않으려고 애쓰며 사람들 사이를 그냥 지나쳐 모른 척 자리에 앉았다. 


 임관홍보다 나이도 많고 경력도 오래되신 분들이지만 임관홍은 자신의 직급이 더 높다는 이유로 그분들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했다. 


 생산, 제조 팀 담당자 님들이 인사 겸 말을 걸어왔다. 


 “ 과장님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네요.” 


 평소에 대답조차 안 하고 바쁜 척하며 사람들을 무시했던 임관홍이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나는 아무리 임관홍으로 살고 있더라도 최소한의 예의조차 지키지 않는 것은 

어려웠기에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짧은 대답이라도 하기로 했다. 


 “네. 다들 일찍 오셨네요.” 


 담당자 님들의 얼굴이 한층 밝아졌다. 


 받지 않는 인사에도 한결같이 해왔던 인사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보다 젊은 사람들이 내 위로 올라가고 상사가 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런 일들은 이젠 적응이 되어서 괜찮았지만 사람대 사람으로서 무시당하는 것은 몇 번을 당해도 적응이 어려웠다. 


 “정 대리님, 최주임, 임관홍 과장님이 인사받아준 거 처음 아니야? 

이렇게 대답 한 번에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그 쉬운 걸 왜 안 해줬는지.” 


 채주임이 말하자 최주임도 고개를 끄덕였다. 


 “임 과장 평소보다 일찍 오고 인사도 받아주고 뭐 좋은 일 있나.” 


 정 대리도 평소와 다른 그의 모습이 의외였지만 워낙 감정의 기복이 큰 사람이라 어제 좋은 일이 있었겠거니 하며 넘겼다. 


 ‘내가 너무 친절했나?’ 내가 대답한 뒤에 담당자들끼리 수군거리는 걸 보니 걱정이 되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과 행동이 어떻게 비칠지 예상이 안 가는 하루였다.


***


 “임 과장! 커피 한잔 하지.” 


 여느 때와 같이 출근 후 일과의 시작은 기형석 차장과의 담배 타임 그리고 커피 한잔이었다. 


 “네, 차장님 금방 가겠습니다.” 


 평소에 기 차장 부름이라면 누구보다 빠른 임 과장이었기에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쏜살같이 일어나서 탕비실로 향했다. 


 기차장이 마실 믹스커피를 타고 내가 마실 원두커피를 내렸다. 


 기차장은 담배를 피우고 난 뒤엔 단 게 당긴다며 항상 믹스커피를 마셨고, 

가끔씩 하루에게도 커피 좀 타달라며 커피 심부름을 시키곤 했어서 그의 취향을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 커피 심부름이라니 그게 참 싫었는데, 이럴 때 도움이 되네.”


  커피 두 잔을 들고 기차장에게로 향했다. 


 “차장님 커피 드시죠.” 

 “어, 땡큐~ 맛 좋네. 하루가 타준 것 같은 맛이야.” 


 ‘갑자기 내가 타준 것 같다고? 맞지 진짜 하루인 내가 탄 거니까. 

근데 이걸 또 어떻게 안 거지···’ 


 “네? 차장님 하루 씨 생각나셔서 그런 거 아니에요?”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일부러 떠보듯이 이야기를 꺼냈다. 


 “아니 뭐, 생각난다기보다 진짜 그런 맛이 났어. 

근데 하루 사건 때문에 나 대표한테 정말 깨지게 생겼다니까··· 후..” 


 내가 죽게 된 그 일에 대해서 미안하다거나 죄책감에 시달리는 듯한 그런 모습은 

기차장에게서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그저 회사 일 중 하나로써 나의 죽음을 생각하는 듯했고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죽어버린 나의 잘못 때문에 대표님한테 한소리 들을 것 같다는 식의 말을 하며 태연하게 담배를 태우며 연기를 뿜어낼 뿐이었다. 


 “왜요? 그냥 어쩔 수 없는 사고 아니었어요? 

그게 차장님 잘못도 아니고, 크게 뭐라고 하시겠어요.” 


 콕 찌르기만 해도 속에 있는 생각들이 우수수수 떨어져 나오는 기 차장임을 알기에 

위해주는 척하며 질문을 이어나갔다. 


 “담당자니 뭐니, 책임자 운운하면서 뭐라고 하겠지. 하루가 죽은 게 내 잘못은 아니지만. 

사실, 이건 비밀인데 하루가 올라갔던 전동 레일 말이야. 그거 고장 난 거였어.” 


 응···? 이게 무슨 말이지. 나는 1년 넘게 일하면서 처음 듣는 소리였다. 


 기차장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척해왔던 걸까. 


 “진짜요? 그럼 그거 문제 되는 거 아니에요? 차장님은 고장 난 거 알고 계셨어요?” 


 흥분하면 안 되는데 이런 소리를 들으니 흥분이 돼서 나도 모르게 속사포로 질문을 뱉어냈다. 


 [“관홍아, 뭐 이런 걸로 걱정이니. 아마추어처럼 ㅋㅋㅋㅋ. 

하루 실려나가고 나서 시설 관리 한다고 하면서 이미 정리해 뒀지. 


 그리고 그거 다른 사람들도 거의 알고 있는 사실일 거야. 

하루는 들어온 지 고작 일 년이라 잘 몰랐던 것 같은데, 


 고장 때문에 누가 다친 적 있어서 다른 사람들은 거기 안 올라가려고 하고 그래가지고 

하루를 시킨 거였거든. 


 난 너도 대충은 아는 줄 알았는데 아예 몰랐구나.” ]


 “아. 네, 뭐··· 저도 들어온 거 하루 씨랑 비슷하기도 하고, 

멀쩡한 레일에서 어떻게 떨어지지 해서 문제가 있었나 생각하긴 했어요.” 


 너무 놀라서 주저앉을 뻔했지만 흔들리는 다리를 간신히 손으로 잡고 대충 얼버무렸다. 


 “관홍아 왜 이렇게 다리를 떨어. 몸이 안 좋아?” 

 “아.. 아뇨. 어제 하루 씨 장례식장에서 술을 좀 많이 마셨더니 숙취가 좀 있는 듯해요. 

저도 이제 나이가 슬슬 그런가 봐요.” 


“네가 벌써부터 무슨 나이타령이야 ㅋㅋㅋㅋ. 

근데 어제 오 부장님이 말해준 건데, 김전무님이 하루 어머님한테 산재보상 해준다고 하셨나 봐.” 


 어제 현재, 영의 공간에서 보였던 장면은 꿈이 아니라 사실이 맞았나 보다. 

이걸 기뻐해야 하는 건가··· 


 “여기 원래 산재처리나 이런 거 잘 안 해주지 않아요? 갑자기 왜 그런 결정을 하셨대요.” 


 처음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제조, 생산 담당자인 대리님과 주임님들 그리고 다른 동료분들을 통해서 이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전에 직원들이 일을 하다가 사고가 나거나 부당 해고를 당하거나 했을 때도 그 사람에게 보상다운 보상은 커녕 거지취급을 했고 그런 일을 당한 사람들이 소송을 걸었을 때도 돈으로 전부 해결해 버렸다는 이야기를 말이다. 


 그냥 그 돈으로 보상이라도 해줬으면 그 사람들도 소송까지는 안 갔을 텐데.라고 생각했었었다.


  “내가 부장님한테 고장 난 거 대충 정리해서 수습하긴 했는데 

이번 건은 하루가 죽어버려서 괜히 가족들이 일 크게 만들면 조사 나오고 이런저런 문제 생길 테니까 돈이라도 몇 푼 찔러줘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거든.” 


 기차장은 내가 죽은 일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오히려 내가 죽었다는 사실보다 자신에게 생길 문제에 대한 걱정에 돈으로 해결할 생각뿐이었다.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한 사람의 목숨을 그저 돈 몇 푼으로 해결하려고 하다니, 

파렴치한 짐승 같은 기차장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이런 일과 이런 생각들을 임 과장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떠들어 대는 꼴도 이제는 도저히 보고 있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나 자신을 위해서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나의 죽음에 대한 모든 진실과 그 이면을 파헤쳐야 한다. 작은 이야기도 놓칠 수 없었고 알아낼 수 있는 건 최대한 다 알아내야 했다. 


 “부장님은 뭐라셨는데요? 산재보상 처리도 사망까지 가면 금액이 꽤 크지 않아요? 

바로 허락하신 거예요?” 


 [ “아 정식으로 산재보상 처리해 주는 건 아니지. 

돈이 얼만데~ 그냥 어머님한테 말만 그런 식으로 하고 돈 조금 드렸더니 신경 써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랬다는데? ㅋㅋㅋㅋ 


 하루도 알바나 전전하다가 여자애가 제조팀으로 들어온다고 하길래 세상물정 잘 모르는 애구나 싶었는데, 어머님도 비슷한 것 같더라고. 이런 것도 잘 모르는 것 같고.” ]


 기차장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엄마까지도 깎아내리면서 막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나의 죽음 앞에서도 그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걸 즐기는 듯했고 안줏거리 정도로 여기는 듯했다. 


 이런 말을 저런 짐승 같은 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찌껄이면서 재밌다는 듯 웃기까지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화가 나는 것을 넘어서서 억울하고 원통함에 눈물까지 차오르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런 사람 밑에서 말도 안 되는 환경에서 더 말도 안 되는 회사를 내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도 열심히 일하며 다녔던 걸까. 나의 순수함과 열정이 이제는 너무 바보 같아 보이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멍청하게 살았니, 하루야.”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아니면 표정관리에 실패한 내 모습을 본 건지 기차장이 가까이 다가왔다. 


 “숙취 있다더니 진짜 심한가 본데? 관홍이 너 지금 얼굴이 진짜 빨개. 그리고 혼자 중얼거리는 거 보니까 정신도 없는 것 같고. 피곤하면 일찍 정리하고 들어가서 쉬어~” 


 “아닙니다. 힘들어도 일은 해야죠.” 

 “일은 무슨, 어차피 밑에 애들이 다 할 건데 ㅋㅋㅋㅋ 

뭐, 굳이 집에 안 가도 쉬엄쉬엄 하는 척하면 되긴 하지. 연차 아까우니까.” 


 그렇다. 잊고 있었다. 이 회사 상사들은 허구한 날 담배나 피고 커피 마시며 떠들거나 자리에 앉아서 주식이나 보고 있는 사람들이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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