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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Oct 27. 2024

나는 죽었지만, 다시 산다 #3-2

월급쟁이

***


 [“채주임, 그건 어쩔 수 없는 사고였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누가 죽었다고 해서 두 손 놓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여기는 회사고 남은 사람들은 일을 해야죠. 못하겠으면 당분간 쉬시던지 정 안 되겠으면 그만두시던지 하세요.” ]


 오 부장은 하루의 죽음은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니고 회사 일이 더 중요한 일이라는 듯 이야기했고 같은 공간에서 같이 일하는 우리들의 충격과 불안함에 대한 배려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과 부당한 지시에도 나는 그만두지 못하는 한 가족의 엄마였다. 


 나에게는 사랑스러운 딸과 아들, 두 아이가 있었고 아이들을 생각하면 이런 회사더라도 그만둘 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정대리가 오 부장에게 질문했다.


  “부장님 그러면 원료 배합은 누가 담당하게 되는 건가요? 전동 레일은 언제 고쳐지는 걸까요.” 


[“당장 레일을 고치는 건 힘들 것 같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인원도 빠진 상황에 보상금 때문에 지출이 꽤 컸어요. 

담당은 일단 돌아가면서 하는 걸로 하시죠.” ]


 정대리와 최주임, 채주임은 알겠다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회의실에서 부장님이 먼저 나오셨으나 대리님과 주임님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떡하지, 갑자기 궁금해하면서 물어보는 건 임관홍스럽지 않은데.”


 평소의 임관홍이라면 신경도 안 썼겠지만, 

과연 부장님이 어떤 말을 했으며 앞으로 이 회사의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고 배분될지 알아야 했다.


 단순한 궁금증을 넘어 이건 내게 또 다른 생사가 걸린 일이었다. 


 뒷 일이 어떻게 되던지 일단은 어떠한 수확을 하기 위해 땅을 파헤쳐보기로 결심한 후 회의실 문을 열었다.


 “대리님, 주임님들 무슨 문제 있으세요? 다들 안 나오시고 심각해 보이시길래 와봤습니다.”


 최주임이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되물어왔다. 


 “임 과장님은 어쩐 일이세요? 평소에 남한테 별로 관심 없으신 줄 알았는데.”

 “어제 일도 있고 해서 혹시나 싶어서 여쭤보는 겁니다.” 


 동료의 죽음이 흔한 일은 아니니까 이렇게 둘러대면 모두들 의심하지는 않을 듯했다. 


 채주임은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과장님도 이렇게 걱정하시고 궁금해하시는데, 부장님은 그렇지 않으신가 봐요. 

어쩜 이렇게도 태평하시고 평안하신 지. 진짜 상관없는 남 이야기 하듯이 말씀하시더라고요. 


 저는 1년 넘게 함께한 하루가 가족 같고 제 딸 같아서 마음이 안 좋은데.” ]


 정대리도 말을 보탰다. 


 [“우리 모두가 함께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면서 하루를 떠나보내기 위한 시간도, 

잠시 쉴 시간도 필요한데 어제도 잔업한다고 11시가 넘어서야 회사를 나왔어요. 


 하루 장례식장도 못 가보고 오늘도 다들 겨우겨우 회사를 나왔을 텐데, 하루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시면서 그 같은 길을 우리가 걷게 하시려나 봐요.” ]


 혹시나 가 역시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묻어두자는 오 부장의 말은 크고 작은 문제들을 드러내지 말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지내자는 뜻이었고, 그 안에는 고장 난 레일과 열악한 작업 환경 또한 이야기 꺼내지 말고 일이나 하라는 의미가 담겨있었던 것이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회사를 그만둘 수 없는 이유가 모두에게 있었기에 적들에 의해 둘러싸여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에서 앞으로 갈수록 뒤로 갈 수도 없을 노릇이었다. 


 최주임이 정적을 깨며 말했다.


  [“나는 사실··· 무서워. 지금도 평소처럼 일하기도 힘들고, 

하루가 죽은 곳을 보는 것만으로도 미칠 것만 같은데 그 자리에 내가 올라가서 일을 한다고 하면.. 혹시나 나도 하루처럼 되어버리진 않을까. 


 그럼 남은 우리 가족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내 머릿속은 이런 생각들로 가득해서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데, 이것도 내 맘대로 하기가 어렵고.” ]


  “저도 생각을 좀 해보겠습니다.” 


 함부로 말을 꺼낼 수 없는 분위기였고 진지함이었다. 그들의 애환과 고민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이해하기 때문에 더더욱 안타까웠다. 


 그러나 지금 나는 임관홍이다.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더라도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고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그렇게 회의실을 나와 자리로 와 앉았다. 


 하루의 몸은 죽고 임관홍의 몸으로 다시 살기 시작한 뒤로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진실이나 숨은 뜻을 얻기 위해 그들을 관찰하고 주의 깊게 바라보면서 그동안 나의 힘듦만을 생각하며 살아왔구나. 싶었다. 각자마다의 고민과 힘듦이 있는 법인데, 그걸 몰랐다. 


 가만히 앉아서 기회를 기다리기만 하지 않고 용기 내서 회의실로 들어갔던 일도 결국에는 나에게 실이 아니라 득이 되었다. 앞으로 나는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대화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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